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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트래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입니다.
2019년 가을 덕유산 1박2일 육구종주 1일차 (10.21.~10.22.) 34
분류: 산행후기
이름: 최고의장비=체력


등록일: 2019-10-23 22:15
조회수: 2599 / 추천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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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가을(10월 21일 ~ 22일) 덕유산 육구종주



탐방코스 국공지도 기준 총 31km

1일차: 육십령 - 할미봉(3.9km) - 서봉(3.1km) - 봉황봉(남덕유산)(1.2km) - 삿갓봉(4.3km) - 삿갓재대피소(1.0km) 국공지도 기준 총 13.5km
2일차: 삿갓재 - 불영봉(무룡산) - 대기봉(칠이남쪽대기봉, 거북바위) - 동엽령(6,2km) - 백암봉(2.2km) - 중봉(1.0km) - 향적봉(1.1km) - 칠봉(3.5km) - 구천동 탐방지원센터(3.5km) 국공지도 기준 총 17.5km 



교통편 

1일차: 대전복합터미널까지 자차 이동 - 용전동 공영주차장 주차(주차비 선불 1일 6,500원) - 서상버스터미널까지 버스로 이동(7:10AM 버스, 약1시간25분 소요) - 육십령까지 택시로 이동(택시비 9,000 ~ 12,000원)
2일차: 구천동 임시버스터미널 - 대전복합터미널까지 버스로 이동(7:10 PM 버스 약 1시간35분 소요) - 자차 회수 및 귀가



날씨 및 복장

1일차: 맑음, 청명+산들바람. 여름바지에 얇은 긴팔티
2일차: 맑고 구름 약간, 오전에 거샌 바람. 오전엔 후드달린 자켓 추가. 오후엔 다시 얇은 긴팔티.



오랜기간 숙제처럼 남아있던 육구종주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교통편 등 그간 육구행을 가로막았던 여러 문제 등으로 선뜻 시간을 내지 못하였습니다만, 이번에 산행을 감행할 수 있었던 계기는 사실 건강보험에서 제공하는 정기건강검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감기에 걸린 것이 몇년 전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평소 어느 정도 건강에 자신이 있던터라 그간 건강검진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커피를 여러 잔 마신 날 살짝 속이 쓰린 것이 마음에 걸렸고 생애 처음 접해보는 내시경이라는 신물물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여 친구 녀석과 동행하여 동네 종합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전전날 과음을 한 것이 내심 마음에 걸리기는 하였으나, 위장내시경을 받다가 트림과 기침이 심하게 나면서 호흡이 막혀 질식사할 뻔 한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신경쓰이는 것 없이 검진을 잘 마쳤습니다. 친구녀석은 내시경이 식도를 통과하자마자 호흡곤란이 와서 의사에게 내시경진단불가 의견을 듣고 포기했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받아 본 검진경과는 저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간은 재검사를 받으라는 소견이 적혀있었고, 위장 전정부 대만이란 곳에서 염증이 발견되었으며, 혈압은 고혈압 전단계에 특히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비만이라는 결과. 세상에나 마상에나, 내가 비만이라니... 
심뇌혈관질환 예방을 위해서는 10kg를 감량해야한다는 충격적인 의사의 소견에 망연자신, 할 말을 잊었습니다.
장수를 바라지는 않았어도 사는 동안은 건강하게 살고 싶었는데, 신체 곳곳에서 이렇듯 여러가지 위험신호가 발생하고 있었다니.
그동안 몸을 챙기지 않고 함부로 굴렸던 자신을 반성하며 생활패턴을 돌아보게 되면서 많은 고민과 함께 해결책에 골몰하였습니다.
결론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다소 하드한 다이어트와 빡센 운동으로 귀결되었고, 전 바로 다음날부터 1일1식과 아침 운동을 병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밥은 하루에 저녁 한끼만 먹었고, 점심과 저녁은 고구마와 끓인 우유로 대체하였습니다.
커피를 끊었고 대체재로 블랙티와 천마차 그리고 야쿠르트를 커피생각이 날 때마다 들이켰습니다. 
술은 2019년 올해의 남은 날 동안은 일체 입에 대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신체활동인 운동은 아침마다 20km를 목표로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첫 날은 무릎에 무리가 와서 10km지점에서 포기. 시행착오 끝에 20km 완주에 성공하였을 때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제 예상과 달리 달리기 운동이 생각만큼의 체중감량 효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불과 5~6년 전만 하더라도 하프마라톤을 뛰고나면 즉시 1~2kg의 체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700g선에서 그치는 것이었습니다.
내 몸이 그만 달리기에 적응하고 말았구나, 제 판단은 그랬습니다. 물론 달리기를 계속하면 언젠가는 빠지겠지만, 급한 제 성격 탓에 체중기를 내려다보면서 울화통이 치밀었습니다. 이렇게는 안되겠다.

그렇게 해서 생각해 낸 것이 장시간의 산행입니다.
20km를 2시간에 뛰는 것 보다 10시간에 걸쳐 걷는 것이 체중감량에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당시에는 몸무게에 신경을 쓰진 않았지만, 지리산 설악산 소백산 등의 여러 종주코스를 완주하고 나면 반드시 상당한 체중감량의 결과를 보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생각의자연스러운 흐름으로 한동안 여러 사정으로 묵혀두었던 덕유산 육구종주에의 욕구가 다시금 꿈틀거렸던 것입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자싶어 그날로 삿갓재대피소에 예약을 하고, 배낭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중량불변의 법칙

스틱의 촉을 교체하였습니다. 한 5년 썼더니 촉끝이 둥그스레하니 닳아버려서 돌을 짚으면 쭉쭉 미끄러져서 가끔 위험한 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촉 가격은 6천원 정도, 배송비 포함해서 1만원 안쪽으로 소요되었으나 결과는 역시 대만족, 갈길 참 잘했단 생각입니다. 촉갈이 할 때 기존 촉을 뜨거운 물에 담그라느니, 드라이기로 지지라느니 설명이 되어있지만 경험상 그런 것으로는 장기간 사용해온 촉 제거는 난망합니다. 그냥 과감하게 칼로 썰어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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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을 적당히 잘 싼 것 같다 생각하고 무게를 재니 늘 그렇듯 약 15kg정도(14.7kg)가 나오네요.

좀 무겁게 싼 것 같다 생각하고 쟤보면 15kg, 이번에 가볍게 잘 싼 것 같다 해도 막상 쟤보면 또 15kg.
오늘도 장고 끝에 넣을 것 넣고 뺄 것 배고 나름 잘 꾸린 것 같았는데 역시나 결과는 매한가지네요. 
중량불변의 법칙이 적용되는가 봅니다.
이제는 제 몸이 15kg 배낭에 최적화된 느낌입니다. 급경사나 밧줄구간에서 좀 엉금엉금대기는 해도.

 
 
육십령까지의 교통편에 대하여

그간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입니다. 차를 가져가기로 합니다.
1. 일단 대전복합터미널까지 자차로 이동하였습니다.
2. 대전복합터미널 주변의 주차장에 주차를 하였습니다. (주차비 6,500원)
3. 서상터미널까지 버스로 이동하였습니다.(9,500원)
4. 육십령까지 택시로 이동하였습니다.(12,000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달리 가신 분들도 계십니다. 
대전역-대전복합-장계로 해서 가는 방법 (배가님 게시글 참조: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climb&page=17&divpage=20&search_type=name&keyword=%B9%E8%B0%A1&no=70127)
대전역-대전복합-서상으로 가는 방법 (산을마시는새님 게시글 참조: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climb&page=1&divpage=20&search_type=sub_memo&keyword=%B4%F6%C0%AF%BB%EA&no=104507)

 
 
대전복합터미널 

현지인(?)분들이라면 대전터미널 주변에서 무료로 주차할만한 공간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정보 좀 주십셔~ 굽신굽신)
저는 터미널에서 몇백미터 떨어진 용전동 공영주차장(대전 동구 용전동 143-22)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터미널 바로 옆에도 주차장이 있기는 하나 종일주차가 10,000원으로 요금이 만만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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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전동 공영주차장 이용시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1일 주차가 6,500원이라고 되어있기는 하나 '선불시'라는 조건이 붙어있어서, 선불로 하지 않으시면 주차장 관리하시는 분이 돈을 더 내라 요구합니다. 새벽시간에는 관리자가 자리에 없습니다. 따라서 위 사진에 보이는 계좌번호로 미리 선입금을 한 후, 휴대폰으로 차량번호와 입차출차 날짜와 시각을 문자로 보내시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5시에 도착을 했는데, 관리자가 없어 그대로 차를 대고 나중에 구청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구청직원은 그냥 하루 당 6,500원씩 계산해서 나갈 때 지불하면 된다고 하여 그렇게 하마 하였는데, 나중에 주차장 관리자분이 전화를 해서 여차져차 따지길래 그냥 요금 좀 더내고 마무리했습니다. 다음에 이용할 때는 위의 방법으로 하기로 했고요.   

대전복합터미널(서관)에서 서상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하루에 딱 한 대 있습니다. 
출발시각은 오전 7시10분이고, 요금은 9,500원, 소요시간은 약 1시간25분입니다. 주의하실 부분은 이 버스가 지리산 백무동으로 가는 버스라 터미널 안내판에 '서상'이 안보이실 겁니다. 23번 승강장에 정차를 하니 승강장 번호를 보고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등버스라 자리가 널널합니다. 부족한 잠을 보충하시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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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이라 터미널 내외에 식사할 곳은 충분합니다. 제 경우는 터미널 서관 맞은편의 김밥천국에서 육개장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용 꼬마김밥(3,000원)을 포장해 나왔습니다. 밥도 넉넉히 퍼 주고 반찬이 셀프인데 무말랭이, 김무침, 달걀간장조림, 김치 등으로 괜찮은 구성이었습니다. 
터미널 안의 TV앞 의자에 앉아 시간 좀 죽이다가 23번 승강장에서 버스에 탑승, 피곤함에 곯아 떨어졌습니다. 탈 때 기사님에게 서상가시냐고 물어서인지, 서상에 도착하니 기사님이 알려주시네요. 



서상버스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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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터미널에서는 저와 아주머니 한 분이 내렸습니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산객은 저 혼자뿐이군요.
서상에서 육십령까지는 약 6.4km 거리입니다.
터미널 근처에 주차해있는 택시 옆에 서성거리니 기사님이 헐레벌떡 뛰어옵니다. 육십령까지 12,000원 요구합니다. 6km에 만이원천은 좀 세다 싶습니다. 모 산행기에서는 9,000원에 갔다 하는데, 실랑이하기 싫어 오케이하고 올라탑니다. 관광지에서의 적당한 바가지는 팁개념으로 생각해야 마음이 평안하지 않겠습니까.(그리미님의 댓글을 참조하여 정정합니다. 택시비 9,000원은 장계에서 육십령 구간 요금이라고 합니다.)



육십령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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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령에서 내려다 본 장수입니다. 안개라 해야할지 운해라 해야할지. 암튼 들머리부터 멋진 장관을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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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애옹거리며 달라 붙습니다. 꼬리가 구부러진 것이 태어난 이래로 섭생이 온전치 못했던 것 같습니다.
배낭 속 먹거리를 머리 속에 떠올려 보았으나 딱히 녀석에게 건네줄 먹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쉽지만 아무 것도 못 주고 자리를 피하고 말았습니다.



육십령-할미봉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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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보이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이정표가 나옵니다. 배가님 산행기를 보면 이 지점에서 등산객들에 의해 이정표가 가려져 오른쪽으로 돌아가셨다지요. 왼쪽 남덕유산 방향으로 가셔야 합니다.  
긴 시간 혼산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맨 보조가방에서 가만히 방울을 꺼내어 배낭 뒤에 매답니다. 지난 계방산 멧돼지 사건 이후로 혼산을 할 때면 늘 방울을 달고 다녔습니다. 은은한 소리가 저는 듣기 좋네요.(물론 함산을 하거나 탐방객이 잦은 구간에서는 방울소리를 꺼려하는 분들을 배려하여 떼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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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봉 오르는 길에 내려다 본 장수. 마치 창밖으로 먼 곳을 조망하는 느낌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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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올라가니 조망이 훤하게 터진 뷰포인트가 나왔습니다. 하늘색을 보시지요. 등산객에게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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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애가 좋아보이는 바위 3형제. 



할미봉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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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봉(1,026m)에 도착합니다. 정상석 글씨가 빨간색이라 밤에 보면 섬뜩하다던데, 낮에 보니 자그마하니 귀엽네요. 서체(궁서체)가 별로이기는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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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봉 뒤편에 누군가 아이들을 추모하는 리본을 걸어두고 가셨군요. 추운 바다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이들을 할미봉 할미가 따뜻하게 품어주십사한 것은 아닌지.
할미봉에 앉아 따뜻한 아침볕을 즐기며 잠시 쉬었습니다. 2km에 한 번 앉아주고, 4km에 한 번 신발끈을 풀고 먹어 주고.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가을 기온에 이따금씩 살랑이며 소슬바람이 불어주니 더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As good as it gets.



할미봉 - 서봉 가는 길

이번 종주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었습니다. 오르막이 꽤 길더군요. 
등산(登山)이 원래 오르는 일이니, 등산객이 되어 오르막이 힘들다 불평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요. 아마 서봉에서 식사를 하겠다는 욕심에 물로 입만 축이며 행동식 보충도 없이 쉬지 않고 진행한 것이 문제였나 봅니다. 서봉에 거의 다다른 지점에서는 정말 힘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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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바위, 일명 남근석, 속칭 X바위라 불리우는 바위가 있군요. 이런걸 볼 때면, 그 옛날 변강쇠시리즈가 생각나곤 합니다.

서봉가는 길의 망가진 탐방로는 속히 손을 보아야할 것 같아 보였습니다. 듣기에 관리책임 소재가 불분명하여 방치되고 있다던데, 이대로 두었다가는 겨울철 탐방객에게 때에 따라 상당한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덕유는 겨울덕유가 아닐까요. 다만, 겨울철 덕유산 종주산행은 가급적 이 구간을 피해 육구가 아닌 영각을 들머리로 한 '영구'로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이 구간을 고집할 이유가 없지않나 싶습니다. 물론, 봄/여름/가을철 산행에서 이 정도 장애는 산행 중간의 별미로 즐길만한 약간의 스릴에 불과하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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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춰 숨을 고르며 사방을 둘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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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은 저 멀리 아직은 아득해 보이는 곳에 있고, 저는 주위를 둘러보며 산 속의 정취를 찾습니다. 멀리는 누른듯 붉은 듯 가끔 잿빛인 숲이 보이고, 지척에는 가을 정취에 어울리는 억새가 하늘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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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까지 차오르니 당하지 못하고, 이내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고는 다시 갈 길을 올려다 봅니다. 
10월임에도 한 낯에는 날이 점점 뜨거워집니다. 가을답지 않은 날씨에 투덜거릴 찰라, 시원한 가을 바람이 불어와 열기를 식혀줍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누그러진 마음에 다시 심기일전하여 길을 재촉해 봅니다. 5시 조금 넘어 아침을 든 후 먹은 것이 없어 무척 배가 고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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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으로 오늘의 점심터인 서봉이 보입니다. 우측으로는 그 다음 쉼터인 봉황봉(남덕유산)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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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쉬어갈 걸 그랬습니다. 4km에 한 번은 신발끈을 풀려 했는데 기어이 고집을 부려 강행을 한 터라, 어느 순간부터인가 힘과 호흡이 받쳐주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옵니다. 그럼에도 고지가 눈 앞이다라는 생각으로 무리를 하며 극기상진(克己常進)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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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드니 눈 앞에 서봉이 보입니다. 자, 이제 드디어 쉴 수 있습니다.



서봉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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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고대하던 서봉에 도착합니다. 
웅장한 바위에 올라서니, 주변이 떠들썩합니다. 한 무리의 탐방객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거니 서거니 하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혼산을 하던 중 돌연 사람들을 마주치니 반갑기 그지 업습니다.
"안녕하세요!" 큰 목청으로 아는 체를 하니, 친구사이인 듯한 무리 중 한 분이 배낭에서 막걸리를 뽑아내서는 큼직한 놋쇠잔에 한 잔 말아주십니다. 가뭄 끝에 단비라, 꿀맛 이런 꿀맛이 없습니다. 옆에 계신 친구분은 깍은 사과를 건네십니다. 오가며 평생 단 한 번 마주칠 인연에 이런 정을 나누어주시니, 고맙기 그지 없습니다. 산행지우는 도처에 있군요. 선현의 말씀대로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게 마련인가 봅니다.(덕불고필유린 德不孤必有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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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걸어온 길 (우) 가야할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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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걸어온 길 (우) 가야할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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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탐방객 무리의 분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문득 제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배가 고파 쓰러질 지경이었다는 기억이 떠오릅니다. 부리나케 편평한 바위에 걸터앉아, 아침에 터미널 앞 김밥천국에서 포장해 온 꼬마김밥을 꺼내 허겁지겁 씹어 삼켰습니다. 8시간의 혹독한 산행만에 맛보는 탄수화물입니다. 뱃속에 넣자마자 밥통의 위력(胃力)이 총가동되어 김밥의 구성물에 함유된 모든 영양분을 마치 문어의 빨판처럼 모조리 빨아들이는 느낌입니다. 기분이 급격히 좋아졌습니다. 

왁자지껄 한바탕 포토타임을 나누던 객들이 하나둘 떠나고 저는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신발끈을 풀고 벌렁 대자로 누워 휴대폰을 꺼내 비행기 모드를 해제합니다. 부재중 전화와 단톡방을 확인하니, 통화가 않된다며 저를 찾는 후배와 산에 간 것 같다고 답변하는 친구들의 대화가 눈에 들어오네요. 가만히 누운 채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후배와 한참 동안 통화를 합니다. 최근 새로 치킨집을 개업한 후배는 낮에는 전단지일을 하며 투잡으로 열심히 사는 녀석입니다. 사는게 녹록치 않은지 힘든 내색을 하면서 자기도 운동 좀 하고 산에도 좀 다니고 싶다는 얘기를 합니다. 또다른 친구녀석 근황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통화가 길어집니다. 허리띠 끌러놓고 여유를 부리며 한 시간여를 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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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 - 봉황봉(남덕유산) 가는 길

넉넉히 휴식을 취한 후 가벼워진 몸으로 봉황봉(남덕유산)을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서봉 이후로는 그렇게 힘들게 느낀 구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다 할 깔딱고개도 없거니와 서봉에서 충분히 쉬어준 까닭인 것 같습니다. 덕유산 육구종주는 총 10개의 봉우리를 오릅니다. 오늘 1일차에 그 중 4개의 봉우리(할미봉-서봉-봉황봉-삿갓봉)를 지나고, 내일 2일차에 나머지 6개의 봉우리(불영봉-대기봉-백암봉-중봉-향적봉-칠봉)를 넘습니다. 힘들었던 구간은 역시 할미봉-서봉 구간 정도였던 것 같고, 다른 구간에서 대동소이하게 무난했던 것 같습니다. 첫날 살짝 고생 좀 시키고, 그 다음엔 주~욱 천국을 보여주는 그런 코스인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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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구 첫날 걸었던 길은 대부분 부드러운 육산이었습니다. 종주 전 구간 중 칠봉에서의 하산길 1km를 제외하고는 줄곧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간 주로 골산에서 굴러먹다 보니, 육산 좋은 걸 체감하겠더군요. 발과 관절 등이 한결 편한 것이 과연 '배려가 있는 산'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덕유산에 대한 일설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덕유산으로 피신해 왔는데 왜병이 지날 때면 짙은 안개가 드리워 산속에 사람이 숨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침에 그 안개 덕에 많은 사람들의 전쟁의 참화를 면할 수 있었던 바, '덕이 있는 넉넉한 산'이라 하여 덕유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죠. 각 산마다 저마다의 고유한 성격이 있다면 과연 덕유산은 덕과 배려가 넉넉한 산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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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봉이 보입니다. 오늘의 세번째 봉우리에 다 와 가는군요.



봉황봉(남덕유산)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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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봉(1,507m)에 도착합니다. 서봉에서 4~50분 정도 걸린 것 같네요. 
봉황봉은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에서 남쪽으로 약 15km 지점에 위치한 덕유산의 제2의 고봉인데, 향적봉이 백두대간에서 약간 비켜 나 있는 반면 봉황봉은 백두대간의 분수령을 이루므로 백두대간 종주팀들에게는 오히려 향적봉보다 더 의미있는 산이 된다고 합니다.
(봉황봉에 대해 마땅히 쓸 것이 없어 한국의 산하에서 몇 자 베껴 적었습니다. 출처 - http://www.koreasanha.net/san/namdeogyu.htm)

서봉에서 충분히 쉬었으므로, 봉황봉에서는 인증샷을 찍고 잠시 조망을 감상하다가 이내 길을 나섭니다.



봉황봉 - 삿갓봉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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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멀리 보이는 삿갓봉을 가슴에 품고 길을 재촉해 봅니다. 가야할 길은 아직 먼데 시간이 여유롭지 못하군요. 아무래도 대피소 직원분께 전화 한 통 받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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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재(월성치)를 지나며 잠시 혼란에 빠집니다. 
국공지도를 보면 월성재로부터 삿갓재대피소까지는 3.9km가 넘는 거리로 표기되어 있는데, 월성재 이정표에는 당당하게 2.9km라고 표시되어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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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봉을 향해 부지런히 걷는 사이, 어느새 그림자가 길어졌습니다. 대피소에서 연락이 올지 모를 시각이라 휴대폰의 비행기모드를 해제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피소에서 확인문자가 오기에, '네, 지금 가고 있습니다.'라고 답문을 보냅니다.  



삿갓봉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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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 삿갓봉에 도착합니다. 성취감과 뿌듯함이 사진에서도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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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여유를 부린 모양입니다. 날이 어느새 어둑어둑해집니다. 그러나 그리 서둘 것도 없습니다. 이제 다 온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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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앉아있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대피소의 입소시간에 대기위해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킵니다. 


삿갓봉 - 삿갓재대피소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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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재대피소 가는 길에 해가 지는군요. 이렇게 해서 이번 육구종주 첫날의 일몰은 삿갓재에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문득 서북능선 귀때기청봉에서 혼자 맞이한 일몰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그때는 남은 너덜지대를 가물가물한 헤드렌턴에 의지해 홀로 걸어내야한다는 현실에 공포감이 앞섰는데, 그와는 다르게 오늘은 아무래도 여유가 있군요. 느긋이 일몰의 광경을 음미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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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다시 혼돈의 카오스에 빠지게 한 두 개의 이정표. 
분명 삿갓봉까지 0.3km 표지를 보고 삿갓봉에 올라갔다가 다시 0.3km를 걸어내려와서 삿갓재대피소 방향으로 0.1km를 더 걸었는데, 삿갓봉은 0.1km거리에 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삿갓봉에 다른 사잇길이 있다는 의미인가? 조금 전의 삿갓재대피소 2.9km 이정표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미님의 댓글을 참조하여 정정합니다. 삿갓봉과 대피소 간 우회길 외에 바로 통하는 길이 있다고 합니다.) 

 
 
삿갓재대피소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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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마감시간을 10분 도과하여 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참 뿌듯한 하루였네요.

대피소 시설은 연화봉대피소와 더불어 감히 최고급(?)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슬리퍼가 제공되는 것과 무엇보다도 침상이 독립적으로 시설되어있는 부분은 압권입니다. 충전할 콘센트도 넉넉하고, 좀 멀기는 해도(60m 아래) 샘터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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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장시간의 공복으로 토라진 속을 달래기 위해 목살을 좀 구웠습니다. 와사비 맛나는 요상한 채소와 함께 게눈 감추듯 쓸어 담았네요. 갓뚜기 매운맛의 얼큰한 국물로 마무리를 하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배가 오지게 불러 바로 잠들 수 없는 상태인지라, 다른 입소객과 담소를 나누거나 휴대폰으로 놓친 시대의 정보를 따라가거나 하며 시간을 때우다가 9시쯤 수면안대와 귀마개로 무장하고 잠자리에 들어 앗!하는 사이에 골아떨어졌습니다.

저는 이번 육구종주의 이 첫날의 산행이 참 즐거웠습니다. 호젓했던 아침 산행부터, 다소 무리하느라 고생스럽긴 했으나 서봉에 올라 만끽했던 조망하며, 봉황봉과 삿갓봉 역시 정말 멋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이 다음 날 이어질 산행에 비하면 그 맛보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아! 덕유산은 참으로 덕과 배려가 충만한 참 젠틀하고 아름다운 산이었던 것입니다.
 
To be continued
 
p.s. 이 게시글은 정보제공을 주목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확인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본 게시글은 작성자에 의해 2019-10-24 19:33: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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