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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일 대표 '나경원 스페셜' 29
이름: action7


등록일: 2020-03-28 20:06
조회수: 11669 / 추천수: 90




1.

일제강점기 철도공무원을 하던 정희영이라는 사람은 해방 후에 미군정 포고령에 의해 공무원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1963년 퇴직 후 삼화건설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상당한 부를 축적한다. 


그 과정에서 매입해서 소유하고 있던 용산구의 그레이스 빌딩을 건축허가 조건이 아님에도 호텔로 개소해서 사용하다가 당국에 의해 발각되어 입건되기도 했다. 


그레이스 호텔은 외국인 상대 매춘행위로 적발된 일류호텔 13곳 중 하나이기도 했다. 


2.

이 그레이스 호텔의 주요한 용도 중에 하나는 군사독재시절 공안기관들의 조사실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그레이스 호텔 뿐만 아니라 서울 주요 호텔들이 비슷한 용도로 많이 활용되었다. 


호텔이 조사실로 이용된 이유는 체포 후 48시간 이내에 영장을 신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특히 진술조서를 주요한 법적 증거로 삼았기 때문에 기관이 아닌 외부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취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부에서의 진술은 체포가 아닌 자발적인 증언으로 몰아가기 위한 수단이었고 실제 문제가 되면 그런 식으로 해결했다. 인권이 보호받지 못한 시대라 가능했던 것이다.


3.

1987년 서울대 박종철 열사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하다가 사망했다. 사고사로 은폐하려던 공안당국의 시도를 막은 것은 당시 중앙대 용산병원 내과 의사였던 오연상 박사였다. 


기자에게 박종철 죽음의 진실을 알린 오연상은 공안경찰들에게 끌려갔다. 박종철 죽음에 대한 의사의 소견을 바꾸기를 강요 받기 위해서이다.


그때 오연상 의사가 끌려가 취조를 받던 장소가 바로 그레이스 호텔이었다. 


오연상은 공안경찰들에게 같은 질문은 100번 넘게 받으면서 고초를 겪었지만 끝내 자신의 의사로서의 양심을 버리지 않았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과 오연상 의사의 신념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질 수 있었고 대통령 직선제를 가능케 했다. 


4.

삼화건설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그레이스 호텔을 공안 취조실로 제공했던 정희영은 1974년 강서구 내발산동에 학교법인 홍신학원을 설립한다. 


초대 이사장은 설립자인 정희영이었고 80년대 이후 이사장은 그의 사위였던 나채성이다. 


나채성은 나경원의 부친이다.


1987년 나경원이 서울대 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 박종철 군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하다가 사망했고, 그의 죽음의 진실을 알렸던 중앙대 병원 오연상은 그의 외가에서 소유하고 공안당국에 제공한 그레이스 호텔에서 구금되어 취조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5.

나는 80년대 흥신학원 산하 H고를 다녔는데 나경원의 부친 나채성이 당시 학교장이었다. 


군인 출신 나채성은 월 1~2회씩 전교생을 대상으로 열병식(사열)을 했다. 그 열병식 준비를 위해 교련시간의 수업강도는 군사훈련을 방불케 할 정도로 타이트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고등학교에서 매월 열병식을 하다는 것 자체가 80년대 임에도 대단히 과격한 발상이었다. 


또한 내가 고등학교 재학시절 H고는 신축을 하고 있었다. 기존 학교 옆에 있는 작은 야산을 깎아서 새로 건축하는 작업이었는데 이때 학생들이 사역에 종종 동원되었다. 


군대에서도 대민지원 봉사를 나가면 라면이라도 끓여주는데 이 시절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사역에 동원되고도 아무런 불평을 할 수가 없었다. 학생들의 인권 따위는 눈꼽만큼도 없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6.

그런 조부와 부친 밑에서 성장 배경을 가진 나경원은 26세에 결혼 30세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연수원을 거쳐 96년부터 판사생활을 시작했고, 2002년 9월 판사를 사직하여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여성특별보좌관’이라는 신분으로 전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추측컨데 96년 정치에 입문한 판사 출신 추미애가 당시 재선에 성공하고 총재비서까지 하면서 한참 떠오르는 여성정치인이 되자 이에 대항하는 인물로 판사출신 나경원을 영입한 것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집안 배경이 외조부는 일제강점기 공무원이었고 공안취조실로 제공한 호텔의 소유자였으며 부친은 군인 출신 사학재단 이사장이니 반공 이념에도 맞는지라 한나라당에서 보기에 여러모로 적합한 인물이었다.


7.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본격적인 정치인의 삶을 시작한 나경원은 이후 보기 드문 친일 극우 정치인으로 자리잡는다. 그녀의 행적을 대강만 살펴봐도 놀라운 일 투성이다.


우선 2004년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1945년 패전 후 일본은 평화헌법에 의해 (전쟁을 할 수 있는) 군대를 가질 수 없었다. 오직 방어만 할 수 있는 자위대만 존재할 뿐 공식적인 군대가 없는 것이다. 


그 방어적 개념의 자위대 성격을 바꾸기 위한 평화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지금 아베를 포함한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염원이다. 그런 성격의 행사에 대한민국 초선 국회의원이 참석한다는 것은 친일파로 보여지는 시선에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나 다름 없다. 


8.

2008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나경원은 자위대 행사 참석에 대한 비난을 “자위대 행사인지 모르고 참석했고 현장에서 뒤늦게 알고 뒤돌아 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나경원의 해명은 거짓이었다. 당시 행사에 입장하던 나경원에게 기자가 어떤 행사인지 묻자 ‘자위대 행사’라고 답변했던 것이 공개된 것이다. 


부적절한 행동에 이은 납득 안가는 해명은 이후 그녀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 패턴이 나경원의 정치 역정에서 자주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9.

2015년 박근혜 정부는 일제에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 협상을 피해자들의 의지를 반영하지 않고 타결했고 나경원은 “외교적으로 잘 된 협상이었다”고 논평했다. 


위안부 합의의 가장 큰 쟁점은 ‘일본 정부가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인정 하는지’의 이슈였고 위안부 할머니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일본정부의 책임 있는 사과’였지만 이 협상의 결과에는 그런 내용이 빠져 있었다. 


협상과정에서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협상이 끝난 후에야 통보하는 형태가 되었다. 이는 일본정부와 가까웠던 박근혜 정부의 졸속 외교 협상의 결과였던 것이다. 


10.

2019년 위안부 피해자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분이었던 김복동 할머니가 작고했고 나경원은 그 빈소를 찾았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외교적으로 의미가 있다”


왜 나경원은 가지 않아도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김복동 할머니 빈소에 굳이 찾아가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가슴을 후비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11.

2018년 10월에 한국 대법원의 일본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일본 기업이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있었고 2019년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일본 기자가 그 문제를 질문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이것은 한국정부가 만들어낸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 불행했던 오랜 역사 때문에 만들어지고 있는 문제다. 일본이 불만을 표시할 수 있지만 한국 사법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를 정치적 공방 소재로 삼고 미래지향적인 관계까지 훼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의 이런 답변에 대해 나경원의 논평은 다음과 같았다.


“일본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거 아니냐?”


이 강제징용배상 문제로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재하는 무역전쟁을 일으켰고 한국도 거기에 대응을 했는데 그때마다 나경원은 ‘일본을 자극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반복한다. 


12.

나경원은 2019년 3월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 서훈자들을 전수 조사하겠다’는 입장에 반대하면서 또 하나의 초대형 언급을 했다.


“친일 독립유공자를 가려내겠다는데 이는 우파=친일 프레임을 씌우려는 것이다. 해방 후에 반민특위로 국민이 분열되었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 발언은 나경원이 그 동안 의심받고 있던 친일 역사관에 대해 완벽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녀의 별명이 나베가 된 것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13.

나경원은 현재 두 자녀에 대한 입시비리문제로 11번의 고발을 당한 상태이다. 뉴스타파와 MBC 스트레이트 취재의 힘이 컸다. 


이 과정에서 아들 김현조 군이 입학한 예일대 학장 마빈 천과의 친분 정황이 드러났는데 마빈 천의 장인이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의 사촌동생 안세희라는 것이 밝혀졌다. 


안세희는 80년대 전두환 신군부의 부역하면서 민주주의를 말살하는데 앞장 섰던 정치활동규제법, 언론통제법, 국가보안법 개정안, 노동법 개정안, 집시법 개정안, 대통령 간선제 등을 만들어 낸 국가보위입법회의의 의원이었다.


마빈 천과 나경원이 어떻게 친분을 맺게 되었는지는 그 선대가 가지고 있는 행적과 나경원이 가지고 있는 역사관 등을 보면 충분히 유추가 가능해 보인다. 


14.

이번에 나경원은 5선에 도전하는 중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녀가 5선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극구 반대하기 때문이다. 


가족 일가의 배경부터 정치인으로 보여준 모습을 볼 때 나경원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되기에 부적절한 부분이 너무 많다. 친일 반공을 모토로 한 극우정당에서 왜곡된 역사관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발전을 막는 일은 이제는 국민들이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15.

다행히 동작 을에는 이수진이라는 대단히 훌륭한 후보가 출마했고 현재까지 여론조사를 보면 이수진 후보가 충분하게 앞서고 있다. 


동작 을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나경원은 이제 그만 국회에서 내보내 주도록 하자. 선거가 끝나면 11번의 고발에 대한 수사도 받아야 하니 국회의원직을 그만 두어도 충분히 바쁠 것이다.


Ps. 

이 글의 상당 소스는 ‘곰곰이’라는 유투버의 방송을 보면서 얻었고 나는 간단하게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해외 인문학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조승연 작가와 더불어 내가 감탄하면서 보는 유투버 중 한 명인데 방대한 지식과 그것을 쉽게 풀어내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ps2

제목이 나경원 스페셜인데 나는 그녀 집안과 정치인 나경원의 역사관 위주로 다뤘고 본문에 빠진 그녀의 놓치기 행적은 다른 분들이 댓글로 남겨 놓으면 그 또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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