뽐뿌
정치글을 포함하여 모든 주제를 자유롭게 공유하는 공간입니다.[정치자유게시판 이용규칙]
(기밀)비밀 문서들의 공개로 이젠 드러나는 6.25비극역사.04편.
이름:  김경찬


등록일: 2020-01-21 20:40
조회수: 308 / 추천수: 0




03편에서 이어서~~

 

 

 

[6.25전쟁 개시 전 소련의 한반도 정책]

 

 

 

 

러시아제국은 시베리아 진출을 통하여 한반도와 국경을 맞대게 되면서 안보, 통상측면에서 한반도에 접근, 관계를 증진하고 영향력 행사를 시도하였으나 한반도에 대한 관심 수준은 對中國과 對日本 관계에서의 地政學的 價値 이상을 넘지 않았다.

 

1876년부터 1904년 기간 중 한반도에 대한 日·露간의 지배권 다툼 역사를 보더라도 러시아는 만일 일본측이 한반도를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한반도 전체를 포기할 수는 있으나 19세기 후반부터 영향권을 확대해온 滿洲에 대하여는 전쟁을 피해 가면서 포기할 의향이 없었다.

 

만주가 극동에서의 러시아 국가이익의 1차적 목표라면 한반도는 부차적이었다.

 

공개된 소련 비밀문서들을 보더라도 1945년2월 얄타회담으로부터 김일성을 모스크바로 불러 남침문제를 구체적으로 상세히 협의한 1950년 4월 前까지 스탈린은 ‘한반도 전체’에 대한 영향권 확보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1개 국가가 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갖는 것을 방지하는 勢力均衡者 위치를 유지하는 러시아제국 말기의 한반도정책을 그대로 답습하였으며 미국이 세계 제2차대전 終戰 처리의 일환으로 한반도내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하여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잠정적으로 분단할 것을 제의한 것을 수락함으로써 이 목표를 달성하려 하였다.

 

스탈린은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對日 參戰條件으로 사할린 남부와 쿠릴열도에 대한 지배, 東淸鐵道·旅順(군항)·大連(상항)의 임차 및 외몽고에서의 현상유지를 제시하였지만 한반도에 대하여는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고 미국이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만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대통령에게서 확인하고 동 대통령이 제의한 美··中 三國 代表에 의한 신탁통치안에 동의하였다. 3개국에 의한 신탁통치야 말로 제정 러시아 이래 한반도에 대한 전통적 정책과 일치되는 것이었다.

 

포츠담회담에 대비하기 위한 참고자료로 1945년 6월 소련 외무성 극동2과가 작성한 문서는 얄타회담 후 수개월간 한반도문제에 대한 소련의 의도를 나타내는 좋은 예이다.

 

동 문서는 역사적으로 한반도가 열강의 각축장이었으며 대륙으로의 일본세력 확장을 위한 교두보이었음에 비추어 극동 소련의 안보를 위하여 한반도가 敵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며 한반도의 정부는 소련과 우호적이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반도에서 세력균형자를 추구하는 정책에 따라 소련은 포츠담에서도 한반도 전체에 대한 군사적 지배를 확보하려 하지 않았다. 1945년 7월 24일 포츠담에서 있은 제2차 미··영 참모총장회담에서 소련 안토노프(Antonov)장군이 마샬(George C. Marshall)장군에게 한반도에 대한 소련지상군의 공격작전을 알리면서 미군도 그에 상응하는 지상작전을 실시할 의향이 있느냐고 문의한 데 대하여 미국측이 가까운 장래에는 작전의 어려움 때문에 실행계획이 없다고 답변하자 소련측은 한반도가 육상작전을 위한 소련구역으로, 공군·해군 작전을 위한 미국구역에 각기 포함시킬 것을 제의하였다.

 

스탈린은 한반도에서 세력균형자를 추구하는 정책에 따라 미국측이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단하는 안을 포함한 연합군 태평양 최고사령부 「일반명령 제1호」를 제시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의 대립이 심화되자 소련측은 소련군이 점령한 북한을 소비에트화하면서 한반도가 對蘇攻擊基地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견지해 나갔다.

 

2차대전 패전국문제와 그들의 식민지처리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연합국 외상회의가 1945년 9월 12일부터 10월2일까지 런던에서 개최되었으나 東歐와 일본 管理문제에 대한 미·소간의 의견대립으로 결렬되고 말았다.

 

10월 24일 교착상태를 타결하기 위하여 트루먼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방문한 해리먼(Averell Harriman)주소대사에게 스탈린은 “만일 미국이 일본[점령]으로부터 소련을 제외할 방침을 취한다면 그것으로 좋다. 이것으로 각 전승국은 각자가 점령한 지역에서 자기의 방침에 따라 관리해도 좋다는 이야기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서 05편에서 계속~~

[ 주소복사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issue&no=232783 ]

추천 0

다른 의견 0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댓글은 삼가주세요. (이미지 넣을 땐 미리 보기를 해주세요.)
직접적인 욕설 및 인격모독성 발언을 할 경우 제재가 될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이모티콘  다른의견   
△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