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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영향으로 북한 어떻게 태어났나? 04편.. 12
이름:  김경찬


등록일: 2020-01-23 18:21
조회수: 201 / 추천수: 0




03편 이어서~~

 

 

■ ‘9월 총 파업’은 박헌영과 소련군정 북로당의 공동전선

 

 


‘박헌영의 9월 총파업’에 대해 소련군정과 북로당이 질책했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오류다. 북로당은 1946년 9월27일 북로당 중앙상부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 이 총파업을 지지할 뿐 아니라,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결의했다.


특히 서울주재 소련총영사관 부총영사를 지내 소련군정 사령부내에서 남한 사정에 밝은 샤브신은 ‘빨치산 수첩’에서 ‘9월 총파업’과 ‘10월 인민항쟁’을 동학혁명과 3.1독립운동, 그리고 러시아의 10월 혁명과 같은 성격으로 규정하고 평가하고 있다.

 

스티코프의 일기 등에서도 소련군정이 9월 총파업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한 정황을 발견할 수 있고 레베데프 소장도 당시 9월 총파업에 대한 소련군정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답을 피했다.

 

■ 스탈린, 김일성과 박헌영 모스크바로 불러 비밀 면접 

 


1946년 7월 하순,스탈린은 모스크바에서 서울의 박헌영과 평양의 김일성 두 사람을 면접했다.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소련군정의 협력을 받아 북조선의 소비에트화 정책을 조기에 실현시키도록 투쟁하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박헌영에게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분투하는 그대의 혁명 투쟁을 높이 평가한다”라며 격려했다.


이 같은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문건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만한 소련군정의 고위 관계자 등의 증언과 정황들을 찾아냈다.

 

■ 스탈린은 왜 33세의 김일성에게 한반도 반쪽을 맡겼을까 

 


이 물음에 대해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문건 역시 나오지 않고 있다. 학자들의 여러 분석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평양에서 북한정권 창출의 주역을 맡았던 소련군정 정치사령관 레베데프 소장의 주장이다.

 


“당 중앙 스탈린 원수는 동구에서 소련의 위성국 정권을 창출할 때도 그랬듯이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가보다 군 출신을 선호했습니다. 김일성은 1942년부터 1945년까지 3년간 소련군 제88정찰여단에서 대대장으로 복무하면서 소련의 명령에 충실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군인으로 판단했다고 봅니다.

 

특히 김은 스탈린이 싫어하는 코민테른(국제공산당) 활동 전력이 없고 빨치산 운동만 했기 때문에 다른 종파에도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장점이 됐을 겁니다. 또 김일성이라는 그의 이름(본명은 김성주였지만)이 북한 인민들에게 ‘항일투쟁 민족영웅’으로 널리 알려져 지도자로 부상시키기에 용이했던 점도 큰 영향을 줬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일성이 선택된 것은 그가 비록 학식과 공산주의 이론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정치적 소질과 신념이 강한 항일 빨치산 출신이었으며 소련에 충성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레베데프는 스탈린이 박헌영을 지명하지 않은 결정적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론적으로 준비된 인텔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찍부터 코민테른에 깊이 관여했고 1928년 종파싸움으로 해체된 조선공산당원으로 종파활동(화요파)의 경험이 많습니다. 또 일제치하에서 항일투쟁으로 세 차례 10년 동안 형무소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일본에 항복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입니다.

 

또 북한 인민들에게 그의 지명도가 낮은 점도 약점이 됐을 것입니다.”


스탈린은 이 자리에서 북조선공산당과 연안파 인텔리 중심의 신민당을 합당해 북한정권의 엔진 역할을 할 강력한 정당이 필요하다고 강력히 피력, 소련군정은 이 지령을 받은 즉시 두 당을 합쳐 오늘의 노동당 전신인 북조선로당을 창당했다.

 

 

*<참고> 북로당 창당대회 때 발표된 14개항의 강령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민족군 창군과 이를 위한 군 복무제를 실시한다는 조항이다.

 

 

■ ‘빨치산 양성소’ 강동정치학원은 소련군정이 설치

 

 


1948년 1월부터 1950년 6월25일까지 2년7개월 동안 빨치산 4000명을 양성했던 평남 강동군 송호면 대성리 강동정치학원(일명 박헌영학교)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소련군정이 설치. 남한에서 좌익이 불법화돼 혁명간부를 양성하기 어려우니 북쪽에 혁명간부 양성소를 세우기로 결정.(원장 소련파 박병률, 빨치산 제1군단장 이효재, 제2군단장(지리산 특수공작반장 이현상, 제3군단장 김달삼)

 

 

     이어서 05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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