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진용과 이현호가 1군에서 계속 등판하는 걸 보니 김주원 생각이 나서
옛날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얘기는 2005년부터 시작합니다.
한국야구 100주년이라고 떠들썩하게 행사를 했던 해였죠.
이게 그 전부터 알고 준비했던 게 아니라, 2004년 시즌 끝나고 2005 연감 준비할 무렵에
야구계 원로기자 한 분이 제보를 해서 알았다고 합니다. 야~ 우리 100주년인데 뭐라도 해야하는 거 아냐?
KBO는 야구 인기가 시들하던 차에 이거 괜찮네 싶어서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막 기념식하며 올스타전하며
막 이벤트 준비하고, 다큐도 찍고 여러가지 했습니다.
급하게 한 거 치곤 꽤나 재밌는 것도 많았고, 팬들 반응도 좋았었죠.
하지만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 KBO가 참고로 했던 자료가 연호, 간지 계산을 잘못해서
질레트가 한국에 야구를 처음 도입한 것이 1905년이 아니라 1904년이었던 것이 밝혀집니다.
완전 삽질한 게 되는 거지만... 뭐 기왕 지나간 일이고, 행사는 훈훈하게 잘했으니 다들 그냥 넘어갑니다.
그 2005년 3월에 KBO는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식을 한다면서 호텔을 빌려다가
야구계 인사들이랑 기자들 잔뜩 불러놓고 높안 사람들 돌아가며 일장 연설 하는...
그런 류의 재미없는 행사를 합니다.
그러다 연설 끝나고 식사가 나오면서 한국야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어린 선수들을 보여준다면서
중학생 한일전 경기를 틀어줍니다. 식사 중에 보시라고...
올해는 좋은 선수가 많이 나와서 전망이 좋다면서...
맨날 보는 게 야구인 사람들이라 애들 경기 그거 뭐 있겠어 하면서 대부분 그냥 밥이나 먹고 있다가,
점점 경기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당시 한국 투수가 중학생이 벌써 180 정도 체격에 좌완이 막 내리 꽂고, 커브는 뚝뚝 떨어지고...
일본 타자들 방망이는 허공을 가르고... 너무 잘했다고 합니다. 직접 보진 못해서 그런갑다 합니다.
매송중 김민식이었죠.
마침 이 때 앞 줄에 삼성 라이온즈 사장으로 있던 김응룡 감독과 야인으로 있던 김성근 감독이
나란히 앉아서 식사를 하다 그 장면을 봅니다. (둘이 되게 친해요.)
경기 동영상이 끝나고 김민식이 바로 이 영상의 선수라면서 소개를 받고,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김응룡 감독은 껄껄 웃으면서 악수를 하고는 얘는 우리 삼성이 데려가야겠다고 찜을 합니다.
좌완덕후 김성근 감독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인정을 했다고 합니다.
중학교 2학년 생이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두 거장과 인연을 맺게되는 초특급 행운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얼마 후 김응룡 사장은 김민식과 접촉을 합니다.
이 시기 김응룡 사장 별명이 '야타'였습니다.
전국의 초,중,고교 야구부와 대회를 돌아다니며 물품도 지원하고, 형편이 어려운 유망주들에겐 경제적 지원도 하고
그러다가 눈에 띄는 선수가 있으면 무슨 영화처럼 삼성 임원차로 나온 에쿠스 리무진에서 창문을 살짝 내리고
야~ 타. 하고 불러서 태워다가 용돈 줘가며, 장학금 쥐어줘가며 자기 모교였던 개성중, 개성고로 진학을 시켰거든요.
이 장학금이란 건 야구계에 공공연히 존재하는 건데 김응룡 사장의 경우 당시 관행보다 좀 세게 불러서,
타 지역의 선수까지 개성고로 불러모읍니다.
전부 자기 주머니에서 나온 돈인데 삼성 계열사 사장 연봉이 4~50억 정도 됐다니 이해는 갑니다.
김민식은 당시 가정형편이 좋지 못했는데, 김응룡 사장의 도움으로 개성고에 진학하게 됩니다.
그렇게 긁어모은 선수들로 개성고는 강팀으로 급부상해서 지역 내에서 전통의 강호 부산,경남고를 연파하지만,
정작 전국대회에선 큰 재미를 못보고, 오히려 부산, 경남고가 더 많은 우승을 차지했었죠.
역시 전통의 힘이란 무시할 게 못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투수들을 절대 무리를 안시켰거든요.
김민식의 경우 나중에 프로 입단 이후 정밀 검사를 했는데 팔 쪽에는 어떤 부상도 없이 깨끗했다고 하더군요.
개성고 출신들 역시 드래프트로 뽑히는 이상 정작 삼성에 입단한 선수는 얼마 없고, 여기저기 다 흩어져버렸으니,
투자의 관점에서 보면 실속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선수들 밀어주고 키우는 것 자체를 즐긴 양반이라
크게 게의치는 않았을 것 같네요.
암튼 김민식은 그렇게 개성고에 진학하고 188에 90Kg가 넘는 우람한 체격으로 자라납니다.
그 무렵 김성근 감독은 sk 감독으로 부임하는데, sk는 부산 경기가 있을 때마다 개성고에서 특타를 합니다.
그렇게 오며 가며 김성근 감독은 김민식과 마주치는데, 김응룡 사장이 워낙 공들인 선수란 걸 아는 처지라
인정상 대놓고 눈독을 들이진 못했지만, 한 번씩 기술적인 조언을 해줍니다.
그렇게 김민식은 고교 투수로 점점 성장을 했지만, 중학교 때만큼 압도적인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몸이 아직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몸이 자꾸 자라다보니 밸런스 잡기가 쉽진 않았을 것도 같고,
동기 중에 다른 좋은 투수들도 많았거든요.
특히 광주일고 유창식은 누구나 인정하는 그 학년의 넘버 1이었습니다.
같은 좌완인데 공은 더 빠르고, 슬라이더도 더 위력적인...
좌완 중엔 재물포고 이현호도 김민식 못지 않게 활약을 했고, 부산 내에서도 경남고 심창민이 더 좋은 성적을 냅니다.
서울에는 덕수고 한승혁, 충암고 최현진이나 휘문고 임찬규 같은 투수가 잘해줬었고...
드디어 고교 선수들의 운명을 가르는 드래프트가 열리게 되는데, 이 때는 1차지명 없이 전면 드래프트였습니다.
전체 1번을 가졌던 한화는 당연하게, '양키스가 귀찮게 했다는' 유창식을 뽑습니다.
2라운드 부터 강경학, 나성용, 이영기... 4선수를 연달아 광주 출신으로 뽑으면서,
이게 무슨 해태지 한화냐 소리도 나오고...
2번으로는 연이은 부상선수 먹튀에 질린 lg가 사전접촉, 신체검사까지 해가면서 휘문고 임찬규를 뽑습니다.
좌투수 풍년이던 이해에 3번 넥센은 부산공고-동의대 좌투수 윤지웅을,
4번이 삼성 차례였는데... 삼성은 경남고 심창민을 지명합니다.
어? 쟤네는 김민식 아니었어? 싶었지만 심창민이었습니다.
뭔가 조짐이 심상찮다 싶더니 김응룡 사장은 이미 구단 내 입지가 약해진 상태였고, 결국 몇달 후 사퇴합니다.
5번으로 자이언츠는, 몇 년째 고졸투수 1라운더들이 부상에 부진으로 실패를 거듭하자,
당시 대학야구 최고의 우완으로 꼽히던 장충고-중앙대 김명성을 뽑습니다.
하고 많은 부산 지역 투수들 다 놔두고... 하필 고른 게 명왕성 ㅋㅋㅋㅋㅋ
이 지명으로 도대체 몇 명을 거른 건지... 이후 김명성은 용덕한으로 바꿔와서 10억이 되어 돌아왔으니...
완전 실패까진 아니군요.
6번 두산은 충암고 에이스 최현진을 뽑고
( 2010년 근처로 이름에 현, 진, 호 들어가는 선수가 하도 많아서 되게 이름이 헷갈리는데요.)
7번이 sk 차례인데 인천 팬들은 제물포고 에이스 이현호를 많이 예상했습니다.
김광현 이후로 신인이 계속 안나와서 여전히 김광현이 막내노릇 하고 있었는데,
인천 지역 에이스로 대를 잇는다면 모양새가 일단 좋잖아요.
그런데 경남고 서진용을 지명합니다.
서진용? 그게 누구야? 그런 애도 있었어?
서진용은 원래 야수를 보다가 고3 때 이종운 감독의 권유로 투수로 전향한 선수인데,
공은 145 이상 150가깝게 찍어줬지만,투수로서 아직 배워야할 게 너무 많은 선수였습니다.
서진용 본인은 지명 안될 줄 알고 드래프트 장에 나오지도 않았고, 대학이나 가야지 생각하고 잇었는데...
그런 선수를 1라운드라니... 굉장한 파격이었죠.
8번은 2009년 우승팀이었던 기아 차례였는데, 이 해 기아 성적이 썩 좋지 못했죠.
기아팬들은 1차 지명만 있었으면 유창식이 우리 껀데 왜 하필 그걸 없애가지고.... 하면서 막 억울해 하고 있었는데...
고교무대에서 150 이상을 던지던 덕수고 한승혁을 떡~ 뽑습니다.
한승혁은 일찌감치 미국 진출 선언을 했던 선수라 다른 팀들이 좋은 줄 알고도 포기했던 겁니다.
그런데 한승혁이 드래프트 장에 나타난 것부터 심상치않더니 기아에 지명을 받고,
유니폼 입고, 사진 찍고 인터뷰까지 하고...
미국 팀과는 협상 과정에서 부상 부위가 발견돼서 계약이 파토났다는 얘기가 돌았고,
기아가 그런 정보를 빨리 캐치해서 잘 뽑은 거 아니냐 얘기도 있었고,
이거 알고보면 다 짜고친 거 아냐? 뒷돈 오간 거 아니냐 하는 의혹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기아는 지명순위 말번에서 한승혁이라는 대어를 건졌고,
연이어 강속구 피쳐 수집팀 답게 화순고 강속구 피쳐 홍건희를 뽑습니다.
하지만 홍건희 외에는 연고지역 선수를 얼마 뽑지 못했죠. 이 해에 광주 출신 중에 좋은 선수가 참 많이 나왔는데,
자이언츠랑 한화에서 죄다 뽑아가버리는 바람에... ㅋㅋㅋ (특히나 자이언츠는 광주일고 내야 3명을 다 뽑아버립니다.)
이렇게 한 바퀴 돌아 다시 sk차례.
이번엔 이현호를 뽑겠지. 하고 인천 팬들은 이현호, 이현호 하고 있는데... 김민식을 뽑습니다.
다음 순번이던 두산은 바로 이현호를 뽑아가버렸죠.
일부 인천 팬들은 서진용은 또 뭐고 김민식은 또 뭐냐고 막 분노했지만,
sk프런트는 김민식을 뽑은 사실에 대단히 기뻐하며 김성근 감독에게 달려가
'감독님~ 김민식을 뽑았습니다.' 기뻐했을 것 같군요. ㅋㅋㅋ
이걸 가지고 정철우 같은 사람은 막 우연히 옛 기억 속에 있던 중학생과 노감독이 재회한 것처럼
막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요.
암튼 김민식은 드래프트 현장에서 sk 지명을 받는 순간 표정이 완전 굳어버리면서,
가뜩이나 이현호 못뽑아서 열받은 팬들에게 욕을 무더기로 얻어먹었고,
인터뷰에서 제일 닮고싶은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류현진이라고 답을 해서 완전 기름을 끼얹었죠.
서진용이 드래프트장에 나오질 않아서 1라운더들 모아놓고 사진 찍는데 올라가서 사진 찍고, 인터뷰 하고...
훗날 기자가 따로 찾아가 인터뷰 했을 때, 발표 순간 사람들이 다 자기만 쳐다보니까 긴장해서 표정이 굳은 건데,
웃는 건 하나도 안 잡아주고 왜 그것만 잡아줬냐고 억울해 했습니다.
류현진 닮고싶다 그런 건 자기 체격이 어딜 봐서 김광현 스타일이냐고, 류현진 닮고 싶은 건 당연한 거니까,
김광현 후계자는 잘생긴 서진용이가 하면 된다고 했다가 또 ㅋㅋㅋㅋㅋ 그럼 류현진은 못생겼냐고 한화팬들한테 까이고 ㅋㅋㅋ
참 이 해 드래프트는 어수선하면서도 여러가지 했었네요.
그렇게 김응룡 사장의 입지와 sk 프런트의 선택이 맞물리면서 많은 선수의 운명이 갈렸는데...
서진용, 김민식, 이현호...
당시의 이런 치열했던 분위기와는 별개로 세 선수 모두 프로 입단 이후 그렇다할 활약을 못했습니다.
서진용은 입단하자마자 무릎부상으로 무려 1라운더가 신고선수가 되었고,
김민식은 프로 입단 후 토미존 서저리를 받습니다. 고교 때 이미 안좋았던 거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지만,
입단 직후 신체검사에선 깨끗했다고 하니 그건 아닌 것 같구요.
이현호는 이천에서 개밥주다가 개한테 물려서 허벅지 부상을 당합니다. ㅡㅡ;
인터넷 상엔 원래 안그런 개였는데 이용찬이 개를 하도 괴롭혀서 난폭해졌다는 얘기가 떠돌았구요.
이후 이현호와 서진용은 상무에 입대해서 가능성에 불과하던 기량을 빠르게 끌어올렸고,
지금은 1군 무대에 이름을 올리고 모습을 드러내는군요.
그러는 사이 김민식은 김성근 감독이 떠난 sk에서 40인 보호 대상에 끼지 못하고, 2차 드래프트에서 kt로 이적합니다.
그 즈음 개명을 해서 김주원이 되었죠. 등 번호가 무려 99번이군요.
동기들이 군 문제를 해결하고 이름을 알리는 사이, 김주원은 수술받고 재활하고, 팀 옮기고...
아직도 묻혀있네요.
그래도 이젠 재활도 거의 끝나서 정상적인 피칭이 가능한 상태가 됐고, 정명원 코치가 손을 봐준다고 하니...
김주원의 이름을 1군에서 보는 것도 가능할 것 같네요.
개인적으론 이 선수 좀 잘됐으면 싶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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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쿠바
그 해는 생중계를 해주면서 바로바로 표정을 잡아줘서 표정 안좋다고 욕먹은 선수가 유난히 많았던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