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을 갖는다는것

어쨌든 나는 군대를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가야만 하는 곳이라면 말이다. 테드 윌리엄스라는 메이저리거가 있었다. 야구선수로 뛰다가 5년간 해병대, 공군으로 활약하면서 한국전쟁에도 참전한 사람이다. 제대 후 39살의 나이로 다시 메이저리그에 복귀해 최고의 타율을 올린 엄청난 선수인데, 나 역시 그처럼 다시 야구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우연인지 아니면 나를 위한 운명이었는지 1998년 시즌을 끝마친 12월 아시안게임이 열렸고, 금메달을 따면서 구단과 팀에서 걱정하던 병역 문제도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었다. 

병역 혜택을 받아 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를 갔다 와서도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 더 떳떳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있었다. 하지만 뒤돌아보며 걱정하기보다는 내가 받은 혜택만큼 열심히 해서 보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앞으로 태극마크를 다는 일이 생긴다면 당연히 국가대표로서 최선을 다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중략-

2013년 나는 국가대표가 아닌 해설자로 제3회 wbc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난 시절 내가 느꼈던 태극마크의 무게감을 생각하면서 후배들이 하는 경기를 지켜보고 있자니 흥분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결과는 예선 탈락. 다소 충격적이었다. 1,2회 대회를 거치면서 강한 면모를 보였던 대한민국 대표팀이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경기에 임하는 자세와 이기기 위한 준비과정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싶다. 우리 선수들은 갈수록 발전하고 있는 wbc 대회에 알맞은 마음 가짐으로 임했어야 했다. 한국 야구의 리더로서 책임감을 가졌어야 했다는 말이다. 

대표선수로 참가하는 경기보다는 소속 팀에서 뛰게 될 '시즌'중 경기에 더 집중하는 미국선수들은, 꼭 승리해서 우승이라는 목표를 이루겠다는 의자가 부족한 편이다. 국가대표로 뛰면서 어떤 대가를 얻는다 해도 그게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것만큼의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그건 사명감이라는 것을 잘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우수한 선수로서 보여야 할 책임감에 대해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다. 사명감은 어느 한 순간 생기는게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선수 이전에 훌륭한 지혜와 지식을 갖추고 사회를 이해하는 법을 배워서 마음에 깃들어야 한다. 정신력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야구에서 그러한 인성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경기할 때 비로소 정정당당한 승부, 승리에 대한 열망으로 최선을 다하는 승부가 가능하다. 

어른이되어서 느끼는 국가대표라는 무게감은 어릴 때와 차원이 달랐다. 2006년 wbc에서 나는 네 경기에 등판해 3세이브를 거뒀다. 당시 메이저리그에서는 한참 부진할 때였다. 메이저리그와 아마추어와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내가 느끼는 무게감과 책임감이 그만큼 컸고, 그것에 부응하고 싶다는 열망도 매우 강했다. 삶에서 그런 책임감을 느껴보는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어떤일을 하는 사람이든, 사명감을 가져야한다.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 내가 이일에서 대표라는 의식을 하는 사람은 나중에 전혀 다른 경과를 보여준다., 어떤 집단이나 단체를 위해서 희생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사명감은 아주 높은 차원의 의식이라서 사람의 성장 가능성을 매우 크게 열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을 달게될 많은 후배들이 그ㅜ런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박찬호자서전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