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 에스터 감독이 연출한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편집증을 앓고 있는 한 남자가 아버지의 기일에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중년 남자 보(호아킨 피닉스)는 어릴 때부터 엄마 모나의 철저한 통제 아래 살아왔습니다. 지금 꽤 떨어진 지역에서 홀로 거의 쓰러져가나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매주 정신 상담을 받고 있는 보는 상담 내용의 대부분이 엄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상담을 받고 돌아온 날 이상한 메모가 적힌 쪽지가 집으로 날아들고 심지어 엄청난 소음으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늦잠을 자 버린 보는 서둘러 짐을 챙기고 엄마의 집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러 집을 나서려고 합니다. 근데 엄마에게 드릴 선물인 성모 마리상을 가지러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나오니 캐리어와 꽂혀있던 집 열쇠가 사라져 버립니다. 할 수 없이 엄마가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니 엄마는 보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좋지 않은 분위기에서 통화는 끝나게 됩니다.

보는 어제 받은 약을 먹다가 물 없이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수도가 끊긴 집을 벗어나 맞은편에 있는 마트로 향합니다. 그런데 이 길거리를 살인마와 노숙인들이 즐비한 곳이라 보의 성격상 건너편 마트를 가는 것 자체가 도전입니다. 그래도 물을 무조건 마셔야 하기에 마트로 가지만 결국 열쇠 없이 집을 나선 보는 현관문을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수많은 노숙인들이 보의 집으로 들어가 광란의 파티를 벌입니다.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잠을 청한 보는 다시 집으로 들어와 목욕을 하는데 남은 노숙인을 발견하고 벌거벗은 상태로 경찰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다가 의사부부가 운전하는 차에 치이고 맙니다. 다행히 훌륭한 외과의사인 남자 덕분에 큰 위험 없이 하루를 잘 보낸 보는 다시 엄마의 집으로 가려고 합니다. 사실 어제 보는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낯선 남자가 엄마의 사망 소식을 전하고 충격을 받은 상태이비다. 하지만 의사는 지금 몸 상태로 비행기를 탈 수 없다며 일정을 미루라고 하지만 엄마의 담당 변호사는 보를 다그치면 빨리 오라고 합니다.

무려 3시간에 육박하는 이 작품은 크게 4개의 챕터와 에필로그로 구성되어있는 작품입니다. 자신의 집을 떠나는 이야기, 의사부부 집을 떠나는 이야기, 숲속에서 만나는 사람과 또 떠나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에 도착해 10대 초반에 찰나 같은 만남을 했던 여성과의 재회.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이 괴상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마치 보의 정신상태 안을 우리가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영화의 시작에서 보이는 보와 엄마의 관계성에서 우린 여태껏 많이 보지 못했던 모자간의 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철저한 통제 안에서 소년기를 넘어 40대 중년이 되어도 그녀를 벗어나지 못한 그는 엄마의 사망소식 이후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보를 구원해주는 단 한 가지는 10대 초반 크루즈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동년배의 소녀입니다. 그녀는 보와의 짧은 만남을 했지만 보는 그 기억을 거의 40년 가까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엄마가 그 동안 보에게 가스라이팅을 해온 결과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존재... 그리고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보가 성적으로 어른이 되기 힘들게 만듭니다. 사실 엄마의 이 말은 사실인지 거짓인지도 우린 알 수가 없고요.

모든 챕터들의 이야기가 흥미롭지만 숲속에서 벌어지는 연극과 아버지일수도 있어 보이는 남자의 등장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추격이라는 장르적인 재미도 살짝 느낄 수 있었고요. 게다가 임신한 여자와의 만남과 더불어 그녀에게 성모마리아상을 건네주는 보의 모습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에필로그 장면에서 보이는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정말 인상적이었고요.

<유전><미드소마>에서 이어지는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아리 에스터라는 감독의 색깔이 좀 더 짙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의 어떤 단편에서 이웃과의 묘한 갈등을 다루는 작품이 있었는데 이 작품과 첫 챕터의 아파트가 사뭇 비슷한 느낌을 주더라고요. 개인적으론 아리 에스터의 단편들도 꽤나 좋았습니다. 유튜브에서 몇 편은 볼 수 있더라고요. 아무튼 평범하지 않고 인간의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는 그의 시선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꽤나 궁금하고 이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주는 만큼 오히려 자신의 색깔을 지키는 데에 흔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