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글쓰기 서적들을 탐독하는데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가 꽤 재밌습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 희망 없던 초년 작가 시절에도 돈을 바라지 않고 그냥 글쓰기가 좋아서 꾸준하게 쓰다보니 작가로 성공한 자서전 같은 이야기입니다. 

글쓰기 교범에 왜 자서전적인 내용이 들어가나 싶은데 오히려 이 부분 때문에 독자들이 더 많이 공감하고 저자와 동질감을 느낄수 있을겁니다.

자세한 서평은 아래에 펼쳤습니다.

https://blog.naver.com/roosevelt98/221295755633

http://blog.yes24.com/document/10439479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김진준 옮김, 김영사, 2002

전월세 다락방을 전전하며 비정규직으로 어렵게 사는 이에게 글쓰기란 무엇일까. 훌륭한 작가, 위대한 작가의 자질은 타고난 것일까. 평범한 글쓰기 초심자들은 도달할 수 없는 경지가 있는 것일까. <캐리>, <쇼생크 탈출>, <미저리>, <그린마일>로 유명한 서스펜스, SF 소설의 거장 스티븐 킹(1947~)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위해 <유혹하는 글쓰기>를 집필했다.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 세탁부, 경비원 등 일용직을 전전하며 불안한 생활을 했던 시기를 자서전 형식으로 소개하고 그런 삶을 지탱한 원동력으로 꾸준한 글쓰기를 언급하고 있다. 또한 ’타고난 재능’에 따라 작가로서의 자질이 정해졌다기보다, 꾸준한 글쓰기 습관과 정성, 원칙을 통해 괜찮은 작가, 훌륭한 작가로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킹은 독자를 글쓰는 이의 삶으로 안내한다.

스티븐 킹은 이 책을 1) 자신이 작가로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 2) 창작을 위한 자세와 기본적인 도구(어휘, 문법, 문체)들을 이야기하는 ‘연장통’ 3) 창작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창작론’, 4) 교통사고를 겪고 재활하는 과정에서 느낀 깨달음 등 네 부분으로 전개한다. 필자의 전 서평인 윌리엄 진서(1922~2015)의 <글쓰기 생각하기>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작가로서의 자세와 철학을 중점을 둔다. 곳곳에 나타난 익살과 유머도 두 책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글쓰기 생각하기>가 논픽션, 여행기, 설명문, 비평 등 다양한 분야의 글쓰기 원칙을 소개한다면, <유혹하는 글쓰기>는 주로 픽션 창작을 대상으로 한다. 킹은 특히 1) 작가로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이 부분에서 그는 어린 시절, 초년 작가 시절의 에피소드를 삽화처럼 수록했다.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글쓰기 책에 왜 이 대목이 필요할까’ 의아해할 수 있으나, 이 부분은 스티븐 킹이 어떻게 힘든 환경에서 작가로서의 원칙과 철학을 정립해왔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첫 공포 소설 습작을 썼으나 교장 선생님에게 질책을 받은 기억, 지역 신문사 기자로서 선배에게 받은 첫 조언이 그의 글쓰기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특히 본인의 영감과 상상력으로 탁월한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저 빌어먹을 상품 교환권을 지하실에서 마음대로 찍어낼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바로 그 순간 <행복 교환권>이라는 단편 소설이 탄생했다.”(p.44)

“어느 날 세탁소에서 일하다가 그날의 일이 생각났고 그때부터 소설의 첫 장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서로 무관한 두 가지 요소, 사춘기의 잔인성과 염력이 만나면서 하나의 아이디어가 태어났다.” - 작가의 대표작 <캐리>의 탄생 과정(p.90~91)

이렇듯 킹에게 소설의 아이디어는 땅 속의 화석처럼 발굴되는 것으로 작가는 이를 발견하여 조심스레 가공하는 역할을 할뿐이다. 그래서 ‘플롯’ 대신 ‘상황’과 ‘등장인물’의 캐릭터, 역할에 중점을 둔다. 킹의 소설들은 ‘특정한 상황’ 속에 ‘인물’을 강조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스타일이다. 이야기의 구조를 의미하는 ‘플롯’은 문학의 기본 장치처럼 인식되고 있으나, 킹은 “첫째, 우리의 삶 속에 플롯은 별로 존재하지 않고 둘째, 진정한 창조의 자연스러움과 양립할 수 없으므로” 플롯을 믿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그에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판에 박힌 듯한 스토리는 금기이다.

‘연장통’과 ‘창작론’에서 작가 본인의 글쓰기 철학을 더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형편없는 작가가 위대한 작가가 될수는 없다”며 작가로서의 발전 단계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스스로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면 그저 괜찮은 정도였던 작가도 훌륭한 작가로 거듭날 수 있다”(p.174)며 선천적 재능설을 반박한다. 특히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독서 습관, ‘나에게는 일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짜 중노동이다. 글을 쓸때가 놀이터에서 노는 기분이다’(p.187) 같은 구절에서 많이 읽고 많이 쓰라는 글쓰기 멘토들의 지침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 있다.

퇴고, 수정에 관한 작가의 언급도 인상적이다. 대부분의 글쓰기 관련서들이 퇴고를 중요하게 언급한다. 그런데 이 책은 ‘내용에 일관성이 없거나 이야기 자체가 따분할 때 수정작업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중요한 전제를 짚는다. 초고를 쓸때는 문을 닫고 쓸 것(주변과의 접촉을 차단), 수정할 때는 문을 열고 쓰라고(독자들과의 활발한 소통을 통한 수정) 작가는 권고한다. 책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 배우자와 친구들에게 공개해 수정에 필요한 중요한 아이디어들을 얻는 것도 그가 추천하는 방식이다.

작가로서의 삶을 자서전 형식으로 서술하면서 스티븐 킹은 적절한 유머와 익살스런 분위기를 펼친다. 아버지는 떠나고 어머니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시절, 결혼을 하고 교사 생활을 해도 소득이 불안정해 여러 직업을 전전해야 했던 젊은 시절, 어머니의 죽음, 교통사고로 인해 겪은 생명을 잃을 위기 등 많은 난관에도 우울한 분위기에 지배당하지 않고, 오히려 약간의 여유도 느낄수 있다. 정말 힘들었다고 솔직하게 술회하는 부분도 있다. “내 삶이 어머니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는 나도 글쓰기에서 재미를 못보고 있었다. 내가 작가로서의 미래에 절망한 적이 있다면 바로 이때였다”(p.88)에서 작가가 경험한 절망적인 느낌이 드러난다.

그런데 유머와 여유, 불안과 절망, 이 상반되는 느낌이 책에서는 서로 부딪치지 않고 어우러진다. 킹이 느낀 절망감과 불안을 접한 독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유머를 접하며 역으로 한결 편안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이렇듯 <유혹하는 글쓰기>는 강의, 교범이 아니라 작가 본인이 글쓰기를 열망하는 문필가 지망생의 입장에서 독자와 함께 여정을 떠나는 에세이 같은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