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예보에 없던 비가 오는 날이었다. 갑자기 만난 비에 우산도 없이 걷다가, 맞은편에서, 역시 우산없이 걸어오는 그와 마주쳤다. 그가 스쳐 지날 때, 어렴풋한 담배냄새가 났다. 나는 담배냄새도, 사람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나를 스쳐 지나간 그를 나는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길을 걷던 그가 갑자기 우뚝 멈춰섰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선인장 가판대가 있었다.
가판대위에 일렬로 서있는 가시 돋친 그것들, 아무래도 선인장과, 비는 어울리지 않았다. 선인장들 위로 몇 개의 우산이 임시로 비를 가리고 있었고, 선인장을 팔러 나온 남자는 곧 떠나려는 듯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우산없이 걷던 그는 가판대 앞에 서서 꽤 오래도록 선인장을 고르는 듯 하다가, 그냥 떠나 버렸다. 그가 코너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를 바라보았고, 완전히 자리를 정리하고 돌아가려는 젊은 남자에게서 황급히 선인장 화분을 하나 샀다.
그리고는 그 일도, 선인장 화분도 잊고 지냈다. 그저 책상위에 덩그라니 선인장 화분이 놓여있을 뿐이었다.
그리 오래지 않아 캠퍼스에서 다시 그와 마주쳤다. 그가 우연히 또 내 옆을 스쳐 지나 갔을 때. 전과 같은 담배냄새때문에 나는 그만 충동적으로 그를 불러 세우고 말았다. 그는 나보다 8살이 많았고, 우리 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있었고, 미혼이며, 고아이고, 죽을 것 같던 사랑에 두번 실패했으며, 섹스와 담배는 19살때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덧붙여서 원룸에 혼자 살고 있는 그는 독신주의자라고도 말했다. 그는 무표정하고 거침없었다.
그를 처음 불러 세웠던 날, 나는 돌아와서 처음으로 선인장에 물을 주었다.
나는 가끔 그에게 연락을 했고, 그의 방으로 찾아갔다. 그는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듯 했고, 나는 그의 여린 담배냄새를 점점 사랑하게 되었다. 그가 담배연기를 깊게 들이킬 때, 그 입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마음을 자꾸 더 깊이 들이키게 되는 것이었다. 그는 찾아오는 나를 거부한 적은 없었지만, 대신 마음을 열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내가 더 없이 가볍고 가벼웠고, 그걸 알고 있는 나는 점점 무겁고, 무거워지고 있었다.
나는 그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 올 때마다 선인장 화분에 물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나는 집착하기 시작했다. 나는 거의 매일 그의 집 벨을 눌렀고, 그는 문을 열어주었지만, 자주 모르는 사람처럼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몸을 안고 매달릴 때면 그는 귀찮은 어린 아이를 타이르 듯이 나를 떼어냈고, 돌아가라고 말했다.
이제 거의 매일 울면서 선인장 화분에 물을 주게 되었다. 모든 것이 그 선인장으로 부터 비롯되었다.
그리고 다시 그를 찾아갔던 날. 내가 밖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참이나 그는 나를 세워두었다. 나는 문밖에서 몇번이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분명 안에 있었고, 나는 지치도록 문 밖에 서있었다. 한참만에야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 너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의 얼굴을 보는 것 만으로도 감격해 버릴 정도라니.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
- 돌아가, 그리고 다시는 오지마. 이게 뭐하는 짓이니 대체.
내 눈에서는 굵은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는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한번 더 다시는 오지마 - 라고 낮게 말한 뒤 문을 쾅 닫고는 사라졌다.
나는 집까지 한참을 걸었다. 집에 도착해서 방으로 들어 섰을 때, 책상 위의 선인장 화분이 제일 먼저 눈으로 들어왔다. 나는 선인장을 아무렇게나 움켜쥐고는 바닦으로 내팽개쳤다. 화분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깨어졌고, 가시에 찔려 손에서는 피가 흘렀지만 나는 신음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아플것을 알고도 선인장을 쥐었다. 그리고, 깨어진 화분 사이로 선인장의 뿌리는 시커멓게 썩어있었다.
선인장 화분은 그랬다. 너무 물을 많이 주면, 그만 썪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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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글 포럼에는 첫흔적이네요.
아주 예전에 쓴글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저의 대표작? 이어서 먼저 올려봅니다.
한페이지 단편소설에 당첨되서 책으로도 나왔던 글이예요. 물론 인터넷에서만 판매되는 책이고.. 한정판이라 보신분은 없겠지만 ^^
종종 들러 좋은 글 나누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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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의 특색이 없고 뭔가 주절된다는 느낌. 부사의 중복을 좀 줄이시면 좋을 것 같아요. \' 갑자기 우뚝 \' 이라든가
\' 우연히 또 \' 라든가.. \' 나를 스쳐간 그를 나는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 같은 문장에도 나 라는 주어가 쓸데없이
두 번 나온 느낌이구요. 한 번만 더 문장을 고르신다면 깔끔하고 좋은 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선인장이라는 것에 사람관계를 비유해서 강요하지 않는 듯 적절히 주제를 담아내신 건 장점인 듯..^^
뭐 제 생각에는 그렇다는 거예요. 허접한 평가이니 읽고 흘려주시길..ㅋ
동감... \'나는\', \'그는\'을 대표적으로 비롯해서 부사의 중복이 과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쉼표(,)의 사용빈도 역시 조금 줄이면 더욱 좋을 듯 싶습니다. 쉬지 않고 읽어내려 가야할 때 방해받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도 좋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이 글은 20대 초중반에, 그러니까 대략 4-5년전에 쓴 글인데 지금 보니 저도 비슷한걸 느껴요 ㅎㅎ
특히 콤마는 제 눈에도 거슬리네요.
글쓰는 거 되게 좋아했는데 요즘은 좀처럼 잘 안되서...
댓글들 보니까 좀 힘이 나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