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목 감독이 연출한 <말임씨를 부탁해>는 독립성이 꽤나 강한 85세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대구에서 홀로 살고 있는 85세 할머니 정말임(김영옥)은 오랜만에 외아들인 종욱(김영민)이 내려온다는 소식에 싫은 소리를 해대지만 장도 보고 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시간이 남아 1층 미용실 수건을 걷어주고 옥상에서 내려오다 그만 팔이 부러지고 맙니다.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종욱은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서 퇴원을 합니다. 하지만 불안한 맘에 종욱은 요양보호사 미선(박성연)을 어머니 곁에 두고 심지어 cctv까지 설치합니다.

종욱은 그래도 걱정되는 맘에 어머니를 서울로 모시거나 요양원으로 모시려고 하지만 어머니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요양보호사와 말임은 함께 보내는 나날이 진행되는데 당연히 삐걱거리는 관계가 됩니다. 말임은 미선이 반찬, 통장 등을 갖고 간다며 아들 종욱에게 이르지만 어머니의 괜한 말로 치부합니다. 사실 미선도 친어머니가 오늘내일하는 상황이라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입니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흐르고 말임과 미선의 관계는 돈독해지는 반면 미선의 악행은 지속됩니다. 종욱은 명정날 집에 내려오게 되고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게 되면서 갈등은 증폭되게 됩니다.

80대 여성이 주인공인 한국 영화는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이순재 배우나 신구 배우가 등장하는 작품들은 심심치 않게 있었지만 여성 원톱 주연 작품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보통 80대 중반의 여성이 주인공이라면 '치매'라는 소재가 빠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치매는 어떻게 보면 가장 영화스러운 소재이기 때문에 많은 작품에서 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선 치매라는 소재를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습니다. 단지 그 나이대의 노인이라면 순간 깜박하는 정도로 묘사됩니다. 그 만큼 주인공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감독은 보고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 조금만 도와준다면 그 나이의 여성도 충분히 혼자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김영옥이라는 대배우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작품입니다. 영화에선 주로 조연 역할이나 티비 드라마에서 많이 봐 왔던 그녀이지만 이 작품에서 원톱 주연으로 역할을 충실히 잘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적절한 코미디 연기와 감정을 폭발하는 연기가 균형을 잘 이루고 있습니다. 살짝은 어색하지만 김영민의 사투리 연기와 함께 하는 김영옥 배우의 호흡도 꽤나 좋았고요.

<말임씨를 부탁해>는 노인을 다루면서도 그 인물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은 감독의 시선이 중요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꼭 피를 나눈 사이만이 가족이 아니라 서로에게 결핍된 것을 채워주는 것도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