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중 감독이 연출한 <컨버세이션>은 세 명의 여성과 세 명의 남성이 각각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20대 후반에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은영(조은지), 명숙(김소이), 다혜(송은지)는 10년 지난 후 은영의 집에 모여 오랜만에 술잔을 기울입니다. 은영은 갓난아기를 옆에 재우고 친구들과 불어로 대화를 나누는 등 추억에 빠져듭니다. 프랑스와 한국 문화를 비교하는 등 일상적인 그야말로 '대화'를 나누는 거죠. 그러다가 은영이 파리 유학을 떠나기 전날 밤 택시 안에서 택시기사와 나눈 대화가 이어지고 다음 장면에선 실연당한 명숙을 위로하는 프랑스 유학시절이 보입니다.

그리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 이번엔 세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승진(박종환)과 친한 동생으로 보이는 필재(곽민규)가 대화를 나눕니다. 필재는 승진을 오랜만에 만나는 것으로 보이고 그에게 책을 한 권 선물합니다. 둘은 놀이터를 빙빙 돌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과거 둘이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친한 형 대명(곽진무)의 집에서 전기공사를 도와주는 필재는 대명의 지인인 승진을 처음 만납니다. 승진은 필재의 이름을 듣고 비웃는 등 무례한 태도를 보이지만 옥상에서 술을 나누며 둘은 친한 형 동생 관계가 됩니다.

세 번째로 이어지는 시퀀스는 승진과 은영의 이야기입니다. 둘이 어떻게 만났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진 않지만 전날 술을 함께 마시고 말을 놓는 사이가 되었는데 다음 날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어색한 존댓말을 쓰는 둘의 모습이 보입니다. 승진은 은근슬쩍 은영에게 대시하지만 은영은 거리를 두게 됩니다. 그리고 둘은 친한 친구사이로 남고 둘의 애매한 관계가 끝까지 지속되어 보입니다.

영화의 제목처럼 그야말로 인물간의 '대화'로만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거의 원씬 원컷의 편집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쇼트를 나누지 않고 마치 인물들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관객들을 유도합니다. 2시간 가까이 되는 작품이지만 전체 쇼트는 10개 남짓으로 기억되는 이 작품은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져있는데 과거 장면 또한 순차적으로 나열되고 있진 않습니다. 프랑스 유학시절이나 필재와 승진의 이야기도 그러합니다. 그리고 승진과 은영이 현재 부부인지 의심은 가지만 확실하지도 않고요.

일반 대중상업영화의 형식을 갖춘 작품이 아니라 접근하기가 쉽진 않지만 사람들이 평소 나눈 대화의 패턴이나 기억을 조각해서 다시 소환하는 방식을 영상으로 보여준 이 작품은 판타지적인 요소가 조금 보이지만 굉장히 사실적인 연출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김덕중 감독의 전작인 <에듀케이션>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이번 작품에선 전혀 다른 실험적인 모습을 보여줘서 반가웠고 다음 작품에선 어떤 이야기와 연출스타일을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