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협약’ 100주년을 돌아본다
- 간도의 역사와 간도협약 -
윤 병 석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1. 머리말
금년 9월 4일로 청일간에 ‘야합(野合)’한 ‘간도협약’ 100주년을 맞이한다. 또한 안중근의사의 하얼빈의거 100주년을 맞이하고 북간도의 대표적 한인촌인 명동촌건설 110주년을 맞는다. 100년전의 이와 같은 일련의 역사적 사실은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며 격동과 시련의 한국근대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위상을 갖고 있다.
그 보다도 선린수호를 기약하는 한중관계사에서도 의미있는 역사의 한면을 이루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국외 한인사회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중국 동북지방 간도 한인의 역사와 민족운동 내지 조국독립운동이 한국독립운동사의 중요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도지역은 해방후까지도 이념의 대립과 남북분단 그리고 6․25 사변 등으로 서로 왕래는 고사하고 학술자료의 교환마저 어려운 철죽으로 가려진 곳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동서 냉전체제의 변화와 국력의 신장으로 말미암아 서로 국교가 트이고 인적교류는 물론이고 학술교류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북한과도 극히 제한적이긴 하지만 교류의 물꼬가 트이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그동안 서로 유리되어 탐구되고 이해되던 간도 한인의 역사와 문화가 상호교류하면서 연구하게 되어 쌍방간 적지 않은 연구성과도 쌓였다. 그러나 아직도 지난 100년간의 간도 한인의 역사와 문화연구에는 많은 과제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간도협약’과 간도한인 그리고 명동학교 등의 연구과제는 필수적인 것이다.
이런 가운데 근년 중국에서 동북공정과 백두산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여 혹시 간도역사의 진실이해와 그 올바른 의미를 찾는데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의 임무는 지난 100년간의 간도역사의 진실이해와 그 의미를 보다 올바르게 연구를 심화시키고 그 은감(殷鑑)으로 현재와 미래를 위하여 밝게 빛어져야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2. 북간도의 위상
한국근대사에서 지칭하는 간도(間島), 즉 북간도(北間島)는 백두산 동북쪽, 두만강 너머의 연길(延吉)․화룡(和龍)․왕청(汪淸)의 3현과 흔히 혼춘현(琿春縣)을 아울러 가리키나, 넓게는 액목(額穆)․돈화(敦化)․동녕(東寧)․영안(寧安) 등의 현을 합칭하기도 한다. 현재 중국속에 한인(韓人; 朝鮮族) 집단거주지역인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는 위의 연길․화룡․왕청․혼춘의 4현에다 백두산 북쪽의 안도(安圖)와 돈화(敦化)의 두 현을 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에 간도(間島)의 연장개념으로서 거간도(西間島)란 호칭은 백두산 서남, 압록강 대안의 남만주지방 한인의 이주․정착지역을 지칭하게 된 것이고, 이 서간도와 대칭으로 원 간도에 대한 호칭을 서간도와 구별하기 위하여 ‘北’ 혹은 ‘東’자를 첨가하여 북간도(北間島)․북간도(北墾島) 혹은 동간도(東間島)․동간도(東墾島)라 호칭한 것이다. 서간도 중에서 현재 한인 집단거주지역은 백두산록의 ‘장백현(長白縣)’만이 조선족 자치현으로 남아 있고 그밖에는 각 현 산하의 한인(조선족)의 자치향(自治鄕)이 여러 곳에 산재한다.
3. 백두산 정계비와 청의 봉금정책
역사적으로 한민족은 고대로부터 간도를 비롯한 만주지방과 불가분의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단군조선 이래로 고구려와 발해에 이르는 10세기 초까지 서북간도를 비롯한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 일대는 한민족의 활동영역에 들어 있던 민족의 옛탕(故土)로, 민족문화 발전의 중요한 터전이 되었던 곳이다. 그 뒤 고려조에 들어와 예종이 도원수 윤관(尹瓘)을 파견하여 이 지역에 웅거하고 있던 여진족을 정벌하고 북방 척경을 단행하였다. 이때 윤관은 두만강 이북 700여 리를 개척하고 9성을 쌓았다. 9개의 성 가운데 하나인 공검영성(公嶮嶺城)은 선춘령(先春嶺) 동남, 백두산 동북의 소하(蘇河; 分界江) 강변에 위치하였고, 선춘령에다 ‘고려지경(高麗之境)’이라 새긴 척경비를 세웠다고 전한다. 또한 여말 이성계(李成桂)가 용흥전 동북지방에서 활동할 때 두만강 건너 알동(斡東)과 해란(奚蘭)을 중심으로 그 지역 일대의 여진족을 정벌 복속시켰다는 사실을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등이 전하고 있다. 게다가 조선조 성종때는 남이(南怡) 장군이 일시 두만강을 건너 영고탑(寧古塔)까지 복속시킨 고사를 전한다. 그 이래로 명조(明朝) 말엽까지 국경문제로 중국과 분쟁을 일으킨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명이 망한 뒤 중원을 차지한 여진족(女眞族) 청(淸)은 1658년 간도를 봉금지대(封禁地帶)로 선포하여 중국인과 조선인의 이주를 엄금하는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봉금지대는 조선의 변경 주민들이 인삼 등을 채취하고 수렵과 벌목에 종사하던 생활영역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생계를 영위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도강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봉금지대 설정 이후 발생하게 된 월경죄인(越境罪人) 처벌문제가 조선과 청국간의 외교문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청의 강희제는 1712년 오라총관(烏喇[吉林]總管) 목극등(穆克登)으로 하여금 백두산 일대를 탐사하고 양국간의 국경선에 대하여 조선과 약정하게 하였다. 강희제는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토문강(土門江) 동남은 조선 땅, 서북은 청국령이라고 국경을 자의적으로 획정하고는 목극등에게 토문강과 압록강 사이의 영역을 사정토록 한 것이다. 이때 목극등은 백두산 정상에서 동남으로 10여 리 떨어진 압록강과 토문강의 발원지점에 “서쪽으로는 압록강이고 동쪽으로는 토문강(土門江)이다. 그러므로 강이 나뉘는 고개 위에다 돌을 새겨 기록한다(西爲鴨綠 東爲土門 故於分水嶺上 勒石爲記)”라고 새긴 정계비를 세웠던 것이다. 이른 바 ‘백두산정계비’라는 것이다.
그 뒤 1860년의 북경조약을 빌미로 연해주를 차지한 러시아의 더욱 거세진 남침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봉금정책을 폐지한 청은 1880년대에 들어와 적극적인 간도 개간정책을 실시하였다. 한편 이 무렵 관북 변경 주민들은 목극등이 백두산정계비에 기록한 토문강은 분수령 정계비가 있는 곳에서 발원하여 송화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두만강은 정계비에서 건곡(乾谷)과 구릉(丘陵)을 넘은 원거리 지점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유입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곧 비문대로라면 현재의 북간도 일대가 청국령이 아니라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한청 양국 간에 간도 일대의 국경 감계(勘界)문제가 부상되기에 이르렀다.
4. 한인(조선인)의 북간도 이주와 개척
러시아 연해주와 더불어 한민족의 고대 활동무대였던 간도(間島)는 조선조 말기에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한 영세민들의 ‘신천지(新天地)’였다. 나아가 대한제국기 일제 침략과 그를 이은 식민지 지배시기에는 국권 회복과 조국광복을 위한 민족해방투쟁의 주요무대가 된 곳이다. 특히 독립운동사에서 큰 줄기를 이루는 서북 간도를 중심한 남북 만주에서의 한민족해방투쟁사는 이 일대에 형성된 대규모 조선인사회를 바탕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 오늘날 중국 안의 한민족인 ‘조선족(朝鮮族)’의 원형이 바로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이주하여 그곳에 영주한 이들 조선인들중심을 이루고 있다. 간도와 한민족 역사의 상관성은 바로 이와 같은 점에 불가분의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중엽에 들어와 조선인들이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간도와 연해주 등지로 본격적으로 이주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왕조 말에 조성된 기아와 빈곤 등 열악한 경제상황을 타개하는 데 있었다. 그 이전에도 변경지대의 조선인들은 봄에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간도 땅에 농사를 짓고 가을이면 타작한 곡식을 가지고 돌아오는 ‘계절출가이민(季節出家移民)’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조선후기 정치기강의 해이와 탐관오리의 발호, 그리고 빈발하는 민란 등도 도강 이주를 촉발시킨 중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게다가 지리적으로 서북간도는 한국과 연접해 있어서 함경도, 평안도 일대의 변경지대에서 압록강과 두만강만 건너면 바로 서북간도로 들어갈 수가 있었기 때문에 이주 여정이 용이하고 또한 산천지형이 낯설지 않아 서북지방의 빈민이 쉽게 간도로 이주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던 것이다.
조선인의 간도 대규모 이주를 급격히 촉발시킨 계기는 서북지방을 휩쓸었던 소위 기사(己巳)년(1869년) 대재해(大災害)부터였다. 1869～1871년간에 함경도와 평안도지방을 비롯한 서북지역에 사상 유례가 없는 대흉년이 연달아 들었다. 이 기간에 겨우 초근목피로 연명하였던 서북지방의 주민들은 영양부족으로 얼굴이 누렇게 되었고 몸은 퉁퉁 부었거나 풀독에 죽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제대로 구휼책도 강구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이에 빈민들은 정치적, 사회적 처지와 입장을 고려할 여지도 없이 다만 연명을 위한 방책으로 국금(國禁)을 무릅쓰고 도강 이주를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무렵 병경지방에서는 현지지방관이 간도 이주를 솔선 추진하는 사례도 생겼다. 회령부사(會寧府使) 홍남주(洪南周)는 기아에 허덕이는 주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두만강 대안 간도 개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인수개간(引水開墾)을 월강 명목으로 설정토록 하고 두만강 대안을 사잇섬 곧 간도(間島)로 명기하도록 지시하였던 것이다. 간도라는 지명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도 유력하다.
그 동안 국법으로 도강을 금지하던 간도지역에 대한 개간 허가 소식이 전해지자 빈민들은 주저없이 월강 이주하게 되었다. 그후 인근 군현(郡縣)에서도 향응(響應)하여 월경 이민이 급증해졌다. 이주민의 수가 격증하게 됨에 따라 황무지 개간도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어 갔다. 그리하여 불과 수삭 만에 100여 정보의 황무지가 개간되었을 정도로 급격하게 농경지가 늘어났다. 이 사례를 일러 1880년의 경진개척(庚辰開拓)이라 불렀다.
홍남주의 간도 개간 승인 이후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조선인의 간도 이주를 행정상 강력하게 뒷받침 해준 인물이 1883년 서북경략사(西北經略使)에 임명된 어윤중(魚允中)이었다. 그는 회령 등지의 변경지대를 순회하면서 간도 개간문제를 직시하고 조정에 올린 보고서에 ‘월강죄인을 죽여서는 안 된다(越江罪人不可殺)’고 하며 종래의 변방정책을 수정해 줄 것을 공식으로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는 간도의 개간지에 대하여 토지 소유권을 정부 차원에서 인정해 주는 문서인 ‘지권(地券)’을 교부하여 조선인의 간도 이주를 실질적으로 승인해 주었던 것이다.
한편, 1880년대에 들어와서는 청 정부 측에서도 밖으로 러시아의 거세진 남하정책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간도 개척이 절실하였다. 따라서 조선인 이주도 적극적으로 초치하는 정책을 취하게 되었다. 1883년 조선과 길림성 당국간에 체결된 ‘조길통상장정(朝吉通商章程)’에 근거하여 청 정부에서는 1885년 화룡욕(和龍峪, 현 용정시 智新鄕)에다 통상국(通商局)을 설립하고 광제욕(光霽峪, 현 용정시 光開鄕 光昭村)과 서보강(西步江, 현 훈춘시 三家子鄕 古城村)에 통상분소를 설립하였다. 통상국을 설립한 목적은 경제적인 수익보다도 이주 조선인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는 데 있었다. 그 당시 간도에는 성(省)․현(縣)의 지방 관리가 없었기 때문에 통상국이 이 곳에 거주하는 주민까지 행정적으로 통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어 세 곳의 통상국(분소)을 월간국(越墾局)으로 고치고 두만강 이북으로 길이 700리, 너비 50리 되는 광범위한 지역을 조선인 이주민을 위한 특별개간구로 확정하였다. 이 결과 조선인 이주민의 수는 더욱 급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배경으로 서북간도 도처에 평야와 분지, 그리고 구릉지를 따라 조선인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개간농경지에는 다양한 농작물이 재배되고 있었다. 조․옥수수․고량․기장․콩 등의 밭농사도 크게 성행했지만, 이주 조선인사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농업은 역시 하천 유역의 저지와 습지에서 일으킨 벼농사였다. 이주 조선인이 시작한 벼농사는 만주 농업경제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주곡으로 등장하였을 정도였으며, 그 전토의 대부분은 조선인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개간되었던 것이다.
북간도 이주 초기 단계에서는 조선인들이 두만강변의 무산․종성․회령 등지에서 도강한 뒤 강기슭의 산골짜기를 따라 해란강 이남 일대, 곧 두만강변에서 멀지 않은 분지와 산기슭에 조선인촌락을 형성하였다. 그 대표적 한 사례가 육도하 기슭 장재촌(長財村) 일대에 건설한 명동촌(明東村)이다. 특히 이 명동촌의 개척은 회령종성등지의 선비가문 5가구 142명이 1899년 집단이주하여 공동으로 이룩한 것이다. 그 뒤 이주민의 수가 급증하면서 조선인들은 더욱 멀리 북상하여 해란강을 건너 부르하통하와 가야하 이북과 이서 지방으로 깊숙이 이주 정착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북간도 도처에 조선인마을이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조선인에 의하여 개척이 시작된 간도는 1890년대 들어서면 조선인의 이주 개척이 내강(內江) 혹은 마도강(馬刀江) 영안(嶺內)라고도 부르는 간도 오지에까지 미처 황전(荒田)을 개척하는 추세가 급증하였다. 따라서 간도 전역에 걸쳐 조선인 촌락이 도처에 형성되고 그 지역은 마치 의관문물(衣冠文物)의 풍속이 국내와 흡사한 양상을 띠게 변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간도개척은 두만강 너머의 간도뿐만 아니라 압록강 너머의 남만주지방의 간도까지 확대되어 간도는 북간도(北間島 혹은 北墾島, 東間島)와 서간도(西間島 혹은 西懇島)로 분리되며 양강대안으로 크게 넓혀졌던 것이다.
조선인들이 북간도에 이주 정착하게 되자 각지에서 벼농사가 활기를 띠웠다. 북간도 조선인들이 처음으로 수전농(水田農)을 실시하였던 것은 1900년 전후로 알려져 있다. 두만강 대안의 용정시 개산둔진(開山屯鎭) 천평 일대와 용정 부근 해란강변의 서전대야(瑞甸大野) 일대가 조선인들이 최초로 벼농사를 시작한 큰 들이다.
1860년대 이후부터 일제의 대한침략이 심화되는 1905년 을사오조약 이전까지는 조선인들이 대체로 이와 같은 이유와 배경 하에서 서북간도 이주를 단행하였던 것이다. 이 시기 이주민 가운데서는 북간도의 경우에는 함경북도, 서간도의 경우에는 평안북도 출신이 특히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1894년에 실시한 재만 조선인동포의 한 출신지 조사에서도 조사대상 인원 65,000명 가운데 함북 출신이 32,000명, 평북 출신이 14,400명이었고, 1904년에는 78,000명 가운데 함북 출신이 32,000명, 평북 출신이 23,500명이었다. 통계숫자로 보더라도 간도에 이주한 조선인 가운데 압록강과 두만강 대안의 함북과 평북 출신이 70% 이상에 달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5. 민족운동자의 북간도 망명
1905년 을사조약 강제전후부터는 조선인의 간도 이주가 경제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인 면에서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일제에 의한 국권침탈과 경제수탈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국권회복을 도모하고 일제의 탄압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망명자, 곧 항일독립운동자의 이주가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즉 일제의 한국 식민지화 정책이 가시화되는 1905년 을사조약 이후로 1910년 국치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활동하던 항일운동자들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간도와 연해주 등지로 망명하여 새로운 활동 방향과 근거지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정치적 동기에서 망명 이주한 조선인들은 민족의식이 투철하고 국내에서 정치․경제․사회적으로도 비중 있는 지위를 가지고 있던 인물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국내에서 애국계몽운동을 벌이던 민족운동자들이 을사5조약 이후 대거 망명 활동하게 되었다. 국외 독립운동기지 건설구상은 이들의 활동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북간도의 경우, 국망을 예견한 이상설(李相卨)을 비롯하여 이동녕(李東寧)․정순만(鄭淳萬)․여준(呂準) 등은 이미 1906년부터 용정촌을 독립운동기지로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이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한 뒤 1906년 8월경 용정촌(龍井村)에 정착하여 민족주의교육의 요람인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열었다. 게다가 이 사업은 을사오조약 전후부터 국내에서 상동청년회(尙洞靑年會)를 중심으로 국권회복을 위하여 구국계몽운동을 벌리던 애국계몽운동자들이 선도한 것이다.
한편, 국내에서 항일전을 수행하던 항일의병의 북상 망명은 항일무장투쟁의 국외확대인 동시에 무장투쟁의 새로운 국면 전환이었다. 의병의 북상 망명은 일제의 무단탄압이 가중되던 1908년 하반기 이후 더욱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국내에서 활동하던 의병은 일제군경의 탄압을 피하고 새로운 항전 근거지를 구축하기 위해 북상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결국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 서북간도로 건너가 장기 지속적인 투쟁방략을 모색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북상 망명한 항일의병은 이미 1910년 전후부터 서북간도와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서 활발한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8년간에 활동한 관북지역 의병의 경우, 그와 같은 북상 망명 추세를 뚜렷이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로 파악된다. 함북 경성(鏡城)의병의 핵심인물들인 이남기(李南基)와 최경희(崔瓊凞)를 비롯해 김정규(金鼎奎)․지장회(池章會) 등이 1908～1909년 무렵 북간도와 연해주 등지로 집단 망명하게 되었다. 또 함남의 북청․삼수․갑산 일대에서 탁월한 항일전을 수행하던 홍범도(洪範圖)와 차도선(車道善) 등이 서북간도와 연해주 일대로 넘어와 각지를 전전하며 항일활동을 지속하며 재기항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훈춘 일대에서는 조상갑(趙尙甲)이 거느리는 다수의 의병이 항일전을 벌여 나갔다. 또한 박만흥(朴萬興)․김창규(金昌奎)․노우선(盧禹善) 등은 백초구(百草溝)에서 항일단체인 포수영(砲手營)을 조직하고, 러시아제 연발총 240여 정으로 무장한 채 북간도 의병의 중심인 조상갑 의병과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연해주의병의 일원으로 이범윤(李範允)의 휘하에 있던 방병기(方炳起)를 비롯하여 황모(黃某)와 장선달(張先達) 등의 의병이 각지에 분산되어 국내의 일제 침략기관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무렵 대종교 계열의 민족지사들도 대거 북간도로 망명하여 무장항일전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대종교의 창시자인 나철(羅喆)을 비롯하여 그 중요 임원인 서일(徐一)․계화(桂和)․박찬익(朴贊翊)․백순(白純)․박상환(朴尙煥)․김원시(金元時)․남세극(南世極)․현천묵(玄天黙) 등도 북간도 연길․화룡․왕청 일대로 망명하여 도처에다 조선인학교를 세우고 청소년의 민족주의교육에 진력하였던 것이다. 또한 이들이 화룡현 삼도구 청파호(靑波湖)에 대종교 북도본사(北道本司)와 하동(河洞)에 남도본사(南道本司)를 세워 선교하면서 왕청 덕원리(德源里)를 비롯해 풍락동(風樂洞)․청파호(靑波湖) 등지에도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주의교육에 심혈을 쏟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한 이상설 등의 선발대가 북간도로 망명한 이후 1910년을 전후한 시기에 용정촌은 물론 북간도 각처로 민족운동자들의 망명 이주가 계속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빈민들의 이주도 더욱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조선총독부의 한 통계에 의하면 1910년 9월부터 1911년 12월까지 1년 3개월 동안 북간도로 이주한 조선인수는 17,753명으로 집계되었다.
이와 같이 북간도에서는 1860년대 이래 영세 궁민들의 이주로 형성된 대규모 조선인사회를 바탕으로 1905년 을사조약 이후 다양한 계열의 민족운동자들의 망명 추세가 증가하고 있었다. 결국 민족운동자들의 망명은 이 지역의 대규모 조선인사회를 규합, 항일민족운동상 전력의 극대화를 구상한 결과였다. 곧 이 시기 망명 지사들은 일제와 독립전쟁(獨立戰爭)을 결행하여 민족해방과 조국광복을 달성하는 것을 최고의 이념으로 삼고 있었다. 이를 위해 민족운동자들은 항일민족운동의 기반이 되는 교육․종교․실업 등 각 방면에 걸쳐 심혈을 경주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더욱 조직적이고도 효과적인 항일민족운동을 추진하기 위한 자치단체의 설립을 필요로 하였고, 그 결과 1908년 간민교육회(墾民敎育會)의 결성과 활동을 계기로 1913년 1월 북간도지역의 조선인자치를 도모하기 위한 결사인 간민회(墾民會)의 결성을 보게 된 것이다.
6. 조청감계회담과 간도관리사
1880년대에 들어서 조선정부와 청정부간에는 간도의 감계문제를 해결하고자 1885년 안변부사 이중하(李重夏)를 감계사로 임명하고 청측의 훈춘부통(琿春副統) 덕옥(德玉)과 회령(會寧)에서 감계회담(勘界會談)을 개최하였다. 을유감계회담(乙酉勘界會談)이라 지칭되는 이 회담에서 조선측은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와 토문강(土門江)을 먼저 답사하고 감계답판을 진행하자고 주장하였다. 청측에서는 토문강과 도문강(圖們江))은 같은 것이고 도문강은 곧, 두만강(豆滿江)이니 이로써 국경선을 감계하고 단지 도문강 상류의 기원하는 여러 지류중에 어느 곳을 본류로 하여 정할 것인가 만을 사정(査定)하자고 주장하였다. 청측의 주장은 봉금지대였던 완충지대는 청의 영토임을 전재로 한 것이고 조선측은 정계비의 명문대로 토문강을 사정하고 그 이남의 영유권을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어렵게 진행된 회담은 결국 강원을 조사하기로 합의하고 백두산 정계비와 토문・두만 양강의 상류 강원지대를 엄동을 무릅쓰고 답사하고 무산(茂山)에서 다시 회담을 개최 양측의 조정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청측은 정계비의 토문강이 송화강(松花江) 상류의 토문강임을 답사하고도 양국의 경계는 도문강이고, 또한 본국정부로부터 도문강의 감계만을 사정하라고 수명받았다는 등의 억지 주장을 일관되게 되풀이하여 회담은 결렬되고 말았다.
그뒤 1887년에 다시 회령에서 제2차 감계회담(丁亥勘界會談)을 개최하였다. 그러나 청측은 도문강(圖們江)이 양국 경계라고 다시 전제하고 단지 도문강 즉 두만강 사류 기원의 본류만을 어디로 점할 것인가만을 사정하자고 하면서 그들은 가장 남쪽의 한 분류인 서두수(暹水)로 상류 경계를 삼자고 하며 위압적 태도를 견지하였다. 조선측은 도문강으로 하드라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홍단수(紅丹水)로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반대입장을 취하였다. 청측은 그러면 서두수와 홍단수 중간의 석을수(石乙水, 乭水)로 하자는 제안도 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감계사인 이중하는 “내머리는 잘라갈 수 있으나 조선의 국토는 잘라갈 수 없다”는 반대 결의도 표시하였다.
청측이 이와 같이 일방적으로 도문강 상류로 감계하고자 강제함으로 조선정부에서는 그 다음해인 1888년에도 조선의 입장을 원세개(袁世凱)를 통하여 홍토수로 사정하는 청측주장을 반대한다고 통고하며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다시 감계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하였다.
그 다음해 조선정부는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선포하고 간도이주개척의 한인(조선인)에 대한 적극적 보호정책을 강화시켜갔다. 특히 1902년 이범윤(李範允)을 간도시찰사로 파견한 뒤 이듬해에는 다시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에 임명하여 간도 거주 조선인의 호구와 인구를 조사하여 조세제도와 지방행정제도를 갖추도록 조처하였다. 간도관리사로 부임한 이범윤은 이주 조선인을 압박하는 청의 관리와 군인을 구축하고자 무장단체인 충의대(忠義隊)라고도 부르는 사포대(射砲隊)를 조직 운영하기까지 하였다.
7. 청일간의 '간도에 관한 협약'
한편, 러․일전쟁에서 승세를 굳히고 을사5조약을 강제한 일제는 1907년 8월 용정에다 한국통감부 간도파출소를 세우고 간도 전문가인 사이또(齋藤季治郞)를 소장에 임명함으로써 간도 침략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일제는 우선 대륙침략정책의 일환으로 명분상 간도지역이 한국의 영토임을 주장하고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청․일간에는 이와 같은 배경 하에서 1909년 9월 4일 소위 ‘간도협약’이 체결됨으로써 한민족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간도 영유권을 일방적으로 상실하고 말았다.
일본대표 이슈잉(伊集院彦吉)과 청사 양돈언(梁敦彦) 전권이 북경에서 소위 「간도에 관한 협약」을 비밀리에 체결하였던 것이다. 그 내용은 우선 전문에 “도문강(圖們江)이 청한양국의 국경임을 상호확인”하고 본문에서 첫째 도문강(즉 두만강)을 양국의 국경으로 하고, 그 상류는 정계비를 지점으로 하여 석을수(石乙水)로 국경을 삼는다. 둘째, 용정촌・국자가(局子街)・두도구(頭道溝)・면초구(面草溝) 등 네 곳에 일제 영사관이나 영사관분관을 설치한다. 셋째, 청나라는 간도지방에 한민족의 거주를 승준(承准)한다. 넷째, 간도지방에 거주하는 한민족(조선인)은 청나라의 법권(法權) 관할하에 두며, 납세와 행정상 처분도 청국인과 같이 취급한다. 다섯째, 간도거주 한국인의 재산은 청국인과 같이 보호되며,선정된 장소를 통하여 두만강을 출입할 수 있다. 여섯째, 일본은 길회선(吉會線: 延吉에서 會寧間 철도)의 부설권을 가진다. 일곱째, 가급적 속히 통감부 간도파출소와 관계관원을 철수하고 일제 영사관을 설치한다는 협약이다.
일본은 이미 동년 4월 7일 외무대신명의로 청국주재 하야시 공사에게 비밀히 「간도문제해결안」이라는 내훈(內訓)을 보내여 대륙정책추진상 청과 필요한 협상안을 지시하였다. 그 요지는 '조사한 바, 한국측 주장이 그 근거가 박약하며 결국 두만강으로 국경을 정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어 이또(伊藤博文) 한국통감과 협의하여 이의가 없는 것이다. 또한 간도에서의 실상과 청국정부로부터의 공문중 일본이 반박을 가한 것은 청국과의 교섭흥정상 필요한 것이므로 절대비밀로 해안한다는 것이다. 한편 간도의 한국영토를 주장해온 사이또 간도파출소장과도 협의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본의 협상안은 청측에 간도문제를 미끼로 그들의 만주침략의 현안과 교활한 야심을 실증하는 것이다.
일본의 현안이란 무순(撫順)과 연대(煙台)의 탄철개발권과 영구선(營口線)철도, 법고문(法庫門)철도 안봉선(安奉線)철도 부설권 문제 등을 일괄해결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일청의 이슈잉(伊集院彦吉)과 양돈언(梁敦彦) 양국전권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간도에 관한 협약」과 함께 「만주오안건(滿洲五案件)에 관한 협약」을 교환하였다. 이로써 일본은 간도영유권을 청에 양도하는 대가(代價)로 만주에서의 현안의 철도부설의 이권과 탄철(炭鐵)의 채굴권을 회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당사국인 한국은 이주 조선인에 의하여 개척된 신천지이고 대규모의 조선인사회가 형성되어 있던 두만강 이북 약 18만 2,000여 리의 땅을 소위 일제 보호국시기에 이와같이 허무하게 중국 땅으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서쪽으로는 백두산을 기점으로 하여 서북으로 노야령산맥(老爺嶺山脈)을 거쳐 태평령(太平嶺)․석두령(石頭嶺)․황구령(黃口嶺)에 연결되는 훈춘지방을 포함하는 광활한 지역이다. 일제에게 국권을 침탈당한 한국은 토문강(土門江)과 도문강(圖們江)이 두만강을 지칭하는 같은 강이라는 청의 억지 주장이 문헌자료와 객관적인 방법에 의하여 확실하게 입증되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주 조선인이 피와 땀으로 개간한 옥토를 일본제국주의의 대륙팽창과 중국의 중화중의 정책에 희생물이 되고 말았던 셈이다.
8. 맺음말
러시아 연해주와 더불어 한민족의 고대 활동무대였던 간도(間島)는 조선조 말기에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한 영세민들의 ‘신천지(新天地)’였다. 나아가 대한제국기 일제 침략과 그를 이은 식민지 지배시기에는 국권 회복과 조국광복을 위한 민족해방투쟁의 주요무대가 된 곳이다. 특히 독립운동사에서 큰 줄기를 이루는 서북 간도를 중심한 남북 만주에서의 독립군투쟁사는 이 일대에 형성된 대규모 조선인사회를 바탕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 오늘날 중국 안의 한민족인 ‘조선족(朝鮮族)’의 원형도 바로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이주하여 그곳에 영주한 이들 조선인들이다. 그중 대표적인 한 조선인의 이주 개척촌이 1899년부터 건설된 명동촌이다. 간도와 한민족 역사의 상관성은 바로 이와 같은 점에 불가분의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두만․압록강 너머의 조선족은 그들의 신천지가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그 지방이 고조선 이래 고구려, 발해로 내려오면서 고대국가를 세우고 고대 문화를 꽃피워 한민족 번영의 토대가 되었던 민족의 옛땅(民族故土)에 다시 찾아왔다는 민족고지(民族故地) 개념이 충만하였다. 더욱이 그 지역은 압록․두만강의 일의대수만 다시 건너면 언제든지 고국에 진입할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이므로 그들은 보다 지혜를 모으고 땀과 피를 다 바쳐 그 ‘신천지’를 개척하여 그들의 생존과 자치를 신장시키는 한편 민족운동 내지 조국독립운동에 헌신하였던 것이다.
한편, 일제에게 국권을 침탈당한 한국이 백두산 정계비에도 명기된 ‘토문강(土門江)’이 ‘두만강(豆滿江)’을 지칭하는 같은 강이라 주장하던 청의 억지주장을 역사적 문헌자료와 객관적이고도 과학적인 방법에 의하여 명확하게 입증되지도 못한 상황에서 고대 이래 민족의 옛땅이며 더욱이 근대에 들어와 이주동포 즉 조선족이 땀과 피 그리고 지혜를 쏟아 개간한 광막한 옥토를 중일간에 자의로 맺어진 「간도협약」이란 명칭으로 일본제국주의의 대륙팽창정책에 희생되고 말았던 것이다.
금년은 일청간에 야합한 「간도협약」 100주년이다. 또한 또한 간도한인의 대표적 사례인 명동촌 건설 110주년이고 더욱이 「안중근의사의 하얼빈의거」 100주년도 맞이한다. 역사적 진실의 성찰(省察)이 절실하다.
부첨
일제와 청은 1909년 9월 4일 북경(北京)에서 일본의 이슈잉(伊集院彦吉)과 청의 양돈언(梁敦彦)의 양국전권이 「만주오안건(滿洲五案件)에 관한 협약」과 「간도(間島)에 관한 협약」을 동시에 체결하였다. 전자는 대륙정책을 추진하던 일제가 만주에서의 철도부설권과 탄광개발권 등의 현안 이권을 얻는 협약이고 후자는 청이 한국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운 일제로부터 한국의 간도를 대가(代價)로 받은 협약이다. 잔인한 일제의 대륙침략주의와 중국의 중화주의의 야합(野合)한 협약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는 제국주의 일본의 패망으로 일제와 침략피해국간에 체결된 조약과 협약이 모두 무효화 되었는데 오직 「간도에 관한 협약」만이 실효조약인양 ‘한국의 간도’를 중국이 실효적 영유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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