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 한센 러브 감독이 연출한 <베르히만 아일랜드>는 제목에 나와 있듯이 스웨덴의 거장이자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중의 한 명인 잉마르 베르히만이 살았고 그의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한 포뢰섬을 방문하는 한 커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감독 커플인 크리스(빅키 크리엡스)와 토니(팀 로스)는 각자 새로운 시나리오 작업과 토니의 경우는 자신의 작품을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도 가지게 됩니다. 토니는 이미 알려진 감독이기도 하고요. 토니가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동안 크리스는 자리를 빠져나와 현지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와 투어버스를 타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은 포뢰섬 구석구석을 다닙니다. 그리고 베르히만의 묘지도 보고요. 토니와는 달리 시나리오 진행이 잘 되지 않았던 크리스는 이후 시나리오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합니다.

한편 토니는 크리스 없이 투어 버스에 올라 조금은 지루한 관광을 합니다. 토니의 경우 시나리오가 술술 잘 풀려 별 걱정 없이 포뢰섬을 즐깁니다. 크리스의 작업이 궁금하던 토니는 크리스와 함께 산책을 합니다. 크리스는 미완성의 대본을 토니에게 들려줍니다. 그리고 영화는 크리스의 내레이션과 함께 액자식 구성으로 또 다른 영화 한편이 진행됩니다. 그러니까 크리스의 시나리오가 영상화 되는 것이죠.

그 영화 속 주인공은 에이미(미아 와시코브스카)라는 여성입니다. 그는 조제프라는 남자와 10대 때부터 연인 관계였지만 풋사랑은 쉽게 마무리 되고 각자 다른 파트너와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진 상황입니다. 둘은 지인의 결혼식 때문에 포뢰섬에서 오랜만에 우연히 해후하게 되고 그 동안 참아왔던 서로의 감정을 속이지 않은 채 사랑을 나눕니다. 하지만 적극적인 에이미와는 달리 자신의 것을 지키고 싶어 하는 조제프는 더 이상의 관계를 꺼려합니다.

포뢰섬이라는 유형의 공간에서 아이디어를 얻게 된 크리스의 이야기가 과연 베르히만의 어떤 영화와 결부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베르히만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작품인 건 확실합니다. 영화 속에서 토니와 크리스는 필름으로 베르히만의 영화를 볼 기회가 생기는데 <외침과 속삭임>이라는 작품을 봅니다. 둘이 원해서 본 작품이 아니라 그 날이 마지막으로 그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본 것이죠. 물론 이 두 감독은 베르히만의 광팬이라 대부분의 영화를 다 본 상황이긴 합니다.

영화 속에선 토니가 각광받는 감독인 반면에 크리스의 경우엔 살짝 열등감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 주변인으로 인한 열등감의 발로가 아니라 크리스 스스로가 토니가 없는 방안으로 들어가 그의 연출노트나 시나리오를 훔쳐보는 장면으로 설명됩니다. 하지만 크리스는 그 열등감을 자신의 에너지로 환원시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기보다는 포뢰섬을 적극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시나리오를 완성해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의 전작인 <다가오는 것들>에서도 이자벨 위페르의 캐릭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엔 조금 다른 에너지의 여성 캐릭터를 잘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엔딩 장면에 대해 의견이 갈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결국 크리스가 바라는 삶도 이런 엔딩이 포함된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