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얼 감독이 연출한 <무명>은 1941년 진주만 공격 이후 상하이까지 점령하려는 일본 그리고 일본 조직 안으로 들어간 중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허주임(양조위)은 일본의 침공 이후 상하이를 관리 감독하는 일본군인 와타나베 밑에서 젊은 예 선생(왕이보)와 함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임무는 일본군과 함께 미래를 생각하는 당에 반하는 인물들을 색출하고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매국노들이 그러했듯이 허주임과 예 선생은 중국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며 와타나베와 함께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영화 초반부부터 몇 몇 인물은 언더커버 일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보여줍니다. 먼저 일본을 거세게 반대하는 혁명군의 스파이가 허주임에게 자수를 하고 나누는 둘의 대화를 보면서 무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예 선생의 경우 약혼자가 혁명군에서 일하는 모습을 걱정하지만 둘은 결국 다른 신념으로 헤어지고 말죠. 하지만 이 둘의 관계 그리고 예 선생의 동료의 모습에서 또 무언가 있음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일본의 제국주의 시대를 다루는 많은 작품. 특히 상하이, 만주, 경성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선 이러한 언더커버의 키워드 대부분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최근 한국영화인 <유령>이 그러했고요. 이 작품도 이전의 비슷한 소재의 작품을 많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상가능한 반전이긴 합니다.

이 작품이 비슷한 소재의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 점은 편집과 구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앞서 언급한 자수하는 인물과 허주임의 대화는 세 번 정도 나뉘어 영화 속에서 등장합니다. 과연 허주임은 그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그 마무리는 영화의 엔딩에 가서 알 수 있고 그 자수자와 함께 살고 있는 여인의 정체도 밝혀집니다. 이런 식의 편집은 예 선생의 이야기에서도 비슷하게 전개됩니다. 결국 두 사람은 중국의 현재와 미래로 은유되고 있습니다. 특히 예 선생의 경우 와타나베와의 관계에서 보이는 욕망이 꽤 그럴듯하게 전개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 벌어지는 반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요.

아시아를 대표하는 남배우인 양조위는 언제나 그랬듯이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지만 비슷한 시대의 전혀 다른 캐릭터를 보여준 <색,계>의 매력엔 미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 작품에선 왕이보라는 신진급 배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선역과 악역이 다 잘 어울릴 것 같은 이 배우의 다음 작품이 굉장히 기대가 되더라고요.

우리나라만큼 큰 상처가 된 당시의 중국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이 작품은 각자 다른 신념이 부딪혀낸 결과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