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다보니 일주일 동안 지리산을 두 번이나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진 별로 안 찍고 인증샷 같은 것도 안 찍는지라(뭐 인증샷 없어도 제가 갔다온 거 저만 알면 되죠) 그냥 속공으로 빨리 올라갔다 빨리 내려오는 편입니다. 저도 예전엔 거의 시간대별로 찍은 사진을 엮어 여행기 같은 데에 올리고 그랬는데 요새는 그냥 보고 걷기만 합니다. 요새는 워낙에 블로그가 많으니 그런 것들 보고 있으면 다 기억이 나는 법이라서요 ㅎ

1. (수요일) 뱀사골 - 삼도봉 - 피아골

- 원래 지난 주에 그 유명한 피아골 단풍을 보러가자 했는데 해외출장을 가는 바람에 일정이 꼬였습니다. 좀 고민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가를 내고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일정을 이리저리 짜다보니 대중교통으로도 뱀사골 - 피아골이 가능할 것 같아서 그렇게 해보기로 했고요.

뱀사골에 도착하자마자 중국발 짙은 미세먼지가 환영해줍니다;;;

사실 뱀사골은 별로 기대를 안 하고 갔었는데(주목적은 어디까지나 피아골) 뱀사골 계곡, 대박 좋더군요. 제가 물소리 나는 계곡길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뱀사골은 수량도 많고 계곡과 등산로도 붙어 있고 해서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물론 길이 험하지 않아 편하게 올라갈 수 있었던 탓도 있고요.

간장소입니다.  간장소를 지나면서는 계곡과 헤어지고 본격적으로 산길이 시작되는데 다른 지리산 길에 비하면 별로 힘들진 않더군요.

정작 피아골은 단풍이 다 떨어져서 별로 감흥이 없었습니다. 

삼홍소도 떨어진 낙엽(아아.. 그것은 그냥 낙엽이지 단풍이 아니었단 ㅠ)만 뒤덮여서 그다지 아름답다는 생각이 안 들더군요.

물론 그 덕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것은 좋았습니다만.. 하여간 신기하게도 북쪽 뱀사골이 남쪽 피아골보다 단풍이 더 오래 남아있더군요.

오전 10시에 산행을 시작해서 12시쯤 화개재 도착, 삼도봉에서 컵라면(써모스 ffx-900 최고!)에 밥 말아먹고(스탠리 푸드자가 협찬해주었습니다;;) 피아골 직전마을 내려와서 구례터미널가는 오후 3시 20분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대략 20km 정도를 휴식시간 포함해서 5시간 좀 넘게 걸렸네요. 티셔츠에 윈드스토퍼 짚업, 마모트 에더드라이 자켓으로 벗고 입을 것 없이 딱 알맞게 다녀왔습니다.

2. (일요일) 백무동 - 장터목 - 천왕봉 - 세석 - 백무동

수요일 산행의 여파가 좀 남아있는 상황이라 고민했는데, 원래 가려고 했던 일정이었고, 11월 15일부터 산불예방때문에 지리산 일부 구간이 폐쇄되는 것도 있고 해서 좀 무리를 하기로 했습니다. 야간/새벽산행이 처음인데다 백무동쪽도 초행길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초저녁에 잠 들어서 한밤중에 일어나 출발해서 입산이 허용되는 새벽 4시에 딱 맞춰서 등산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뭐 계획대로만 되면 인생이 재미없죠....음? 

밤을 새다시피하고 백무동 도착하니 예정보다 30분 넘긴 4시 30분이더라고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감탄나오게 만드는 쏟아지는 별들... 오랜만이라 감동이었습니다. 그 신새벽에 부지런히 찾아오신 관리인 아저씨께 주차비 5천원을 드리고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탐방관리소 지나서 초입부터 약간 빡신 구간이 시작되는데 대략 참샘까지 계속됩니다. 이번 산행을 위해 헤드랜턴을 새로 장만했는데(블랙다이아몬드 뉴스팟) 200루멘인데도 충분히 밝더라구요. 소지봉 지나면서부터는 길도 편해지고 전망도 조금씩 열려서 기분좋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대신 먼동이 터오면서 별들은 조금씩 사라지더라는 ㅠ). 화장실 공사한다고 냄새가 지독한 장터목을 6시 30분쯤 지나서 바로 천왕봉으로 향했습니다. 천왕봉은 20여년전에 중산리쪽에서 올라가보고 처음이었는데(그땐 뭐 코스도 모르고 그냥 빡세게 오르기만 했었죠), 장터목에서도 오르기가 상당히 힘들더군요.

제석봉에서 하늘을 바라보니 곧 일출이 시작될 상황..

그냥 여기서 볼까, 천왕봉까지 가서 볼까 하다가 그래도 일단 가보기로 했습니다만, 천왕봉까지는 못가고 그 중간에서 일출을 맞았습니다.

어차피 천왕봉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고 사진은 고사목을 배경으로한 이 그림이 더 멋져서 그냥 천왕봉 일출 본 걸로 하기로 했습니다 ㅋ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데 왠지 시간은 오래 걸리던 천왕봉까지 한 번 올라가서 정상석에 뭐 적혀있나 보고 있으려니 먼저 오신 분들이 뭐 잃어버리셨냐고 묻더라고요. 아니라고 했더니 인증샷 찍어야되니 빨리 비키라고.. 알고보니 정상에 그 많은 분들이 정상석 인증샷 찍으시려고 대기 중이더라는;;;  떠오르는 해을 보시며 계속 뭐라뭐라 기도하시던 승복 차림의 아주머니 한 분도 기억납니다. 안에 든든하게 입으셨겠지만 그 추위에 바람 숭숭 통하는 승복차림이시라니 대단하시더군요.

다시 장터목으로 돌아오니 아침드시는 분들로 취사장이 초만원이더군요.

저는 일단 전열만 재정비하고 초코바 하나 먹고 아침은 세석가서 먹기로 하고 세석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공기는 차가웠지만 바람이 안 불어서 춥지는 않았습니다만.. 에너지를 많이 사용해서 그런지 힘들더라고요. 세석까지 3.4km라 한 시간 정도 예상했는데 그보다 많이 걸린 듯 하더라고요. 힘들어서 시간도 확인 안했습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샘물이 졸졸졸 나오는 세석에서 아점을 해먹었습니다.

등포에서 추천받아 첫 개시한 코베아 스파이더 버너에 백마 왕초 냄비, 그리고 라면에 넣어먹으려는 불굴의 의지로 여기까지 안 깨뜨리고 가져온 날달걀 ㅎ

(근데 코베아 스파이더 버너 쓸 때 가스주입구는 최대로 개방해서 쓰는 건가요? 확 다 열었더니 화~악 하는 가스 타는 소리가 너무 심하게 들리는 게 무서워서 적당히 열어놓고 썼더니 라면이 맛있게 안 끓여지더라는 ㅠ)

오전인데도 이미 피곤에 쩔은 몸으로 10시 30분쯤 세석을 출발해서 한신계곡을 거쳐서(한신 계곡도 참 좋던데 전 역시 뱀사골. 안 힘든 게 최고;;;) 백무동으로 복귀하니 딱 12시 30분이더군요. 대략 18km 좀 넘던데 역시 몸이 피곤하고 천왕봉이 껴있어서 그런지 시간이 제법 걸린 셈이었습니다. 폴라텍 티셔츠, 마무트 엑셀레이터 후디, 윈드스토퍼 짚업, 마무트 에더드라이 자켓을 입고 출발했는데 더워서 윈드스토퍼 짚업은 벗고 폴라텍 티셔츠, 마무트 엑셀레이터 후디, 마무트 에더드라이 자켓만으로 운행했고, 천왕봉 갈 때는 추워서 컬럼비아 경량패딩을 입었습니다. 어제 옷차림 고민글에 솜잠바 챙기라는 조언을 듣고 가방이 좀 터져나가더라도 억지로 구겨넣고 갔는데 없었으면 얼어죽을 뻔 했습니다. 앞으로는 무조건 챙기는 걸로... 그밖에 얇은 윈드스토퍼 자켓도 챙겨갔는데 입을 일은 없었고요. 아, 그리고 제가 무릎이 좋지 않은데 이번에 처음으로 무릎보호대를 하고 갔더니 훨씬 낫더군요. 

이번을 마지막으로 내년 봄 시즌까지 지리산은 더 이상 힘들 것 같네요(추워서요;;;).

그 동안 좀 더 낮은 산에서 내공을 쌓아야겠습니다.

그나저나 20km 이상 걸으니 다리가 아파서 힘들더라고요. 내년엔 무박종주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데 다리힘 좀 기르려고 하면 무슨 운동이 좋을까요?

항상 질문글만 올리다 등포에 처음 써보는 후기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