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큰 울림을 남긴 선배에게 후배가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자리였다.
선배 투수 이재학(32) 옆에 나란히 앉은 후배 투수 구창모(25·이상 NC)는 연신 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듯 계속 “어떻게 하죠”라고 물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구창모가 무심하게 “형, 제 마음 알죠”라며 어깨를 툭 쳤고, 이재학은 “대투수가 그렇게 생각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라며 웃었다.
◆“추석에는 재활이죠.”
구창모는 가을의 추억이 많지 않다.
야구하기 가장 좋은 날씨, 선선한 바람과 적당한 습도를 느끼면서 마운드에 오른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년은 이전보다 더 혹독한 시간이었다.
재활에만 매진했다.
보강훈련을 마치고 퇴근한 뒤에는 집에 앉아 TV로 경기를 시청했다.
바로 옆에 앉은 이재학이 추석 관련 질문에 “경기 뛰느라 별다른 추억이 없다”라고 할 때 구창모는 “제일 좋아하는 날씨에 재활만 했다”며 고개를 푹 숙일 정도다.
유일한 좋은 기억은 이재학의 위로다.
구창모는 “재작년도 그렇고, 작년도 그렇고 가을 특히 추석 때는 주변에서 하는 말이 내게 정말 와 닿지 않을 때였다.
재학이형의 위로가 내게는 정말 큰 힘이었다”고 했다.
당시 구창모는 창원NC파크서 50m도 떨어지지 않은 마산야구장에서 땀을 흘렸다.
이재학 역시 부진한 성적을 깨고자 안간힘을 쓸 때였다.
구창모는 “가장 힘든 시기에 놓이면 아무리 친한 선후배여도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 재학이형도 프로 생활 중 가장 힘들었을 때였는데 계속 내게 좋은 말만 해주더라”고 회상했다.
후배가 진심을 전하자 이재학은 어색하다는 듯 “창모가 거짓말이 늘었다”고 웃었다.
그러더니 “나는 부상으로 그렇게 고생해본 기억이 없다.
창모가 정말 힘들어하는 게 보여서 어떻게든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입이 풀린 구창모는 술술 사연을 전했고, 이재학은 그제야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안 아프게 야구해야죠.”
이번 추석 꼭 하고자 하는 일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구창모와 이재학은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고민 끝에 “평범한 일상”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부상과 부진으로 속앓이했다면 이번에는 단순히 경기를 뛰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둘은 다시 한 번 몸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재학은 NC 투수조 중에서도 몸 관리에 가장 신경을 쏟는 선수 중 하나다.
구창모는 신인 시절부터 이재학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리그 최고 투수 자리까지 올랐다.
이재학은 “이전까지 창모에게 항상 몸 관리 좀 하라고 했었는데 사실 그때는 듣지를 않았다.
작년 이후 창모가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이 보이더라”며 “어릴 때는 회복이 빨라서 금방 복귀할 수 있다지만 나이가 차는 순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창모가 조금 성숙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진지하게 몸 관리를 말하던 이재학이 대뜸 폭소했다.
성숙한 구창모를 설명하던 중 최근 벌어진 일화가 떠올라서다.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축구선수 황희찬이 출연했을 때 구창모는 한 번 더 충격을 받았다.
황희찬이 엄격하게 식습관을 통제하는 모습이 방영될 때 구창모는 캐러멜과 젤리를 손에 들고 있었다.
황희찬이 단백질 보충을 위해 소고기를 섭취할 때 구창모는 손에 쥐고 있던 젤리를 던졌다고.
구창모는 “그 이후로는 젤리도 손에서 뗐다.
밀가루를 완전히 통제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몸에 좋은 것만 먹으려고 하고 있다”고 웃었다.
옆에서 가만히 듣던 이재학은 “그래, 잘 좀 챙겨 먹자”고 말했다.
이재학의 눈에 구창모는 아직도 성숙해지는 중이다.
◆“건강한 추석을 기대합니다.
”
매일 외야 그라운드에서 같이 몸을 풀고 경기를 준비하던 둘의 일상은 이제 조금 달라졌다.
이재학이 불펜 계투조로 보직을 옮기면서 경기 전 루틴이 미세하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둘 다 선발 등판하지 않는 날 더그아웃 난간에 기대 같이 나누던 분석도, 농담도 이제는 옛일이다.
하루 사이 달라지는 처지에 내년의 추석을 미리 그리기 어렵다.
대신 5년 혹은 10년 뒤 추석을 떠올리자 프랜차이즈 기록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NC 개국공신인 이재학은 구단 창단 최다승(77승), 최다 삼진(1056개) 기록 보유자다.
은퇴하기 전까지 등판할 때마다 구단 신기록을 작성하는 셈이다.
“한참 멀었습니다.
차이가 엄청나요”라고 하지만 구창모는 엄청난 페이스로 이재학의 뒤를 좇고 있다.
이재학은 “창모가 엄청 빠르게 따라오고 있더라, 중간에 해외 진출만 하지 않는다면 금방 잡힐 것만 같다”면서 “몸 관리 잘해서 최대한 버텨보겠다”고 웃었다.
그러자 구창모는 “나는 지금 몸을 신경 쓰는 일만으로도 벅차다.
야구장에서 야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며 “가을에 야구하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이제야 알았다.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추석 때는 꼭 마운드에 오르겠다”고 말했다.
앉으나 서나 이재학과 구창모는 건강 생각이다.
사진=NC다이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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