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이 연출한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유대계 독일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뉴욕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한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던 와중 나치 전범자 중 한 명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잡혀 재판을 연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뉴요커>의 기자신분으로 재판의 참여한 그녀는 자신이 생각했던 악마의 모습이 아니라 매우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한 이이히만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한나는 그 동안 자신이 배우고 습득한 이론에 의거해 기사와 책을 쓰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책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아이히만을 옹호한다는 오해까지 받게 됩니다.

수년전 같은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를 봤었는데(제목이 기억이 안 남) 그 작품에선 좀 더 드라마가 강한 작품이었다면 이 작품은 당시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이히만의 노출을 최대한 줄이고 그의 모습은 배우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한나 아렌트의 이론에 동의하는 쪽이 많을 거라 생각되지만 당시 60년대의 사회상을 생각하면 한나의 주장은 다른 한 편으로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영화로서의 기술적인 측면이 많이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과거 TV영화를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특히 촬영과 조명에서 많이 아쉬웠는데요. 딱 한 부분이 아쉽다기 보단 전체적으로 조명의 사용에 의해서 전혀 영화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가 고조로 치닫는 때도 큰 긴장감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 아렌트의 마지막 연설 장면은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이것은 오롯이 이 역을 맡은 바바라 수코바의 몫이자 연기력에 기인했습니다. 특별한 연출 없이 이 어려운 이론을 설명함에 있어 중요한 단어들을 꾹꾹 눌러 언급하는 그녀의 연기력은 너무 인상 깊었습니다.

여전히 2차 세계대전의 아픈 역사는 거의 80년이 다 된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의 존재하고 있을 겁니다.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이라는 이론을 내세우면서까지 위험을 감수한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분명 자기도 희생자 중 한 명이었는데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