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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문득 주류포럼에서 드물게도 인기글에 간 독일처자의 클라우드 반응을 보고 드는 생각이 있어 몇자 적어보려 합니다.
수년전부터 맥주불모지였던 한국에도 맥주바람이 불어, 이제는 편의점 음료냉장고 한 칸 전부가 수십종의 수입맥주로 채워져있고, 각종 국산 크래프트맥주와 탭하우스가 횡행하는 시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물론 서구권에 비하면 턱도 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비주류인 술이라는 취미에서 하나의 장르로서 술이라는 것을 취하기 위한 에틸알코올이 아니라 기호식품으로서의 저변을 넓히는 것 같아 다른 주류에 비해 맥주를 그리 선호하지는 않음에도 반가운 형편입니다.
다만 이런 와중에 오비라거, 카스, 하이트 등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이런 공장제 양산형 맥주는 사실 한국에선 역사가 100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맥주는 오줌 등에 비유당하며 상당한 평가절하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맥주 자체를 놓고 절대적으로 평가를 하자면 낮은 점수를 받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단순히 한국이 맥주맛을 몰라서, 맛있게 만들지 못해서 그렇냐고 하면 그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어릴 때는 경험이 적고, 그나마 겪어본 경험들은 대부분 새로운 것들이기 때문에 늘 자극에 이끌리기 쉽고, 또 말과 행동이 경솔하기 쉽습니다. 때문에 젊은 친구들이 자극을 좇아다니며 '국맥 쓰레기 왜마심?' 하면 이해합니다. 그땐 그렇게 살 때입니다. 저도 그랬구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도 형님들이 보면 피도안마른게 헛소리한다고 할 나이긴 합니다만ㅎㅎ)
경험이 쌓이고 시야가 넓어지고 더이상 경솔해지지 않는, 이른바 어른의 경우는 조금 더 고려할 것이 많아지고 조금 더 생각이 깊어지고 조금 더 말과 행동을 신중히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소소하게 고찰해보자면 이렇습니다.
먼저 서구권의 술문화를 간단히 살펴보자면, 우리와 가장 큰 차이점은 '안주'의 유무입니다.
일단 이 '안주'라는, 술을 마실 때 곁들이는 음식 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자체가 서구권에는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많이들 아시다시피 언어의 경우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우리의 경우 싸래기눈 진눈깨비 함박눈 가락눈 가루눈 등등 눈을 일컫는 여러가지 단어가 있지만 에스키모인들의 경우 눈에 관한 단어만 20가지가량이 된다고 하고, 반면 눈이 오지 않는 열대지방의 경우 눈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거나 눈 하나만 존재합니다.
'안주'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라서, 일반적으로는 본래의 의미가 따로 존재하는 단어를 술과 함께 사용할 때 안주로서의 뜻도 가지는 동음이의어의 역할로서만 존재하거나, 혹은 영어같은경우 아예 비슷한 단어조차 없습니다. something edible served with alcohol 정도 될까요.
맥주의 본고장이라는 독일의 경우 Zuspeise 라는 단어를 사용하나 이는 본디 쓰임이 메인이 되는 무언가에 곁들이는 부식 으로 널리 사용되는 단어로서 영어로 번역하면 food입니다. 다른 유럽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실제로 서구권의 경우 술을 안주와 함께 마시기보다, 술만 마시는데에 훨씬 익숙합니다. 그게 그네들의 전통적인 방식인 겁니다. 이태원에 자주 다녀보셨거나 술집에서 일해보거나 경영해본 경험이 있으시다면 공감하실텐데, 한국에서 오래 지낸 외국인이 아니라 관광차 방문한 외국인의 경우 보통 술집에 가서 자연스럽게 '맥주 한잔' 만 딱 시킵니다. 세명이 오면 맥주 세잔을 시키고 각각 계산합니다. 유럽의 펍에 직접 방문해봐도 보통은 맥주만 마십니다. 바에 가도 칵테일이나 위스키를 잔술로 시켜서 먹습니다. 아예 메뉴에 한병시킨다는 선택지가 없이, 무조건 잔 가격만 써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장삿속이 아니라 문화가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구권의 맥주는 맛과 향이 뛰어나도록 발전해왔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맥주만 마시는데 맥주가 밋밋하면 사장당해왔던 것이죠. 더 깊고 풍부한 향, 남들과는 다른 차별적인 향을 위해 경쟁하고 연구해온 결과 참 다양한 맥주들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맥아로 맥주를 만들다가 증류기술의 도입으로 위스키도 만들게 되었고 발전방향은 역시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위스키의 경우 폭발적이고 다채로운 향을 가진 술의 대명사처럼 되었죠.
반면 한국은 '주안상' 혹은 '술상'이라는 단어가 익숙할만치 술을 '안주'와 함께 마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맥주는 처음부터 그 지향점이 본류의 맥주들과는 달랐습니다. 맥주의 향이 바이젠처럼 화사하고 풍부할수록, 홉 향이 진하면 진할수록, 맛이 달거나 고소할수록 음식과는 안어울리기 대문입니다. 특히 쌀을 주식으로 삼는 한국의 경우 더더욱 그렇습니다. 홉의 향이 쌀과는 특히 어울리지 않습니다. (번외로 대부분의 와인도 생각보다 한식과의 궁합이 굉장히 좋으나, 유독 쌀밥과는 최악의 궁합을 자랑해서 한국에서 와인을 안주에 술상이 아니라 한식에 반주로 즐기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또한 한국은 홉이 자생하지도 않았고, 쌀이 주식이었던 나라였습니다. 맥주와 친숙하지 않은게 당연했고 대신 막걸리와 청주, 약주가 탄생했죠.
더욱이 식문화가 발달한 한국의 특성상 맵고 짜고 슴슴하고 진하고 담백하고 등등 갖가지 음식에 무난하게 잘 어울리려면, 술이 밋밋해져야 했던 겁니다. 그래서 몰트향도, 홉향도, 쓴맛도 최대한 억제되어있습니다. 고소한? 곡물느낌만 약간 남아있죠.
그리고 실제로도 한국음식에 바이젠이나 IPA, 듄켈 등을 드셔보시면 최악의 궁합을 자랑합니다. 그 맥주들은 술만 마시거나 입이 심심하니 간단히 견과류나 과일, 과자정도나 곁들이는 것이 최상인 것 같습니다.
저는 술에 취미를 들인 이후로 이른바 카스나 후레쉬 등을 사서 집에서 마시는 일은 아예 없어졌습니다만, 그럼에도 여전히 막창집에가면 자진해서 쏘맥을 말아마시고 순대국집에서 술국을 먹을 땐 빨간뚜껑을 찾습니다. 절대적으로 그 술들이 뛰어나고 맛있어서가 아니라, 그게 제일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순대국집에서 화요나 안동소주 등을 판다면 애기가 달라질 수 있겠습니다만.. 희석식소주에 대한 부분은 다들 잘 아실테니 넘어가도록 합니다)
식문화가 발달한 서구권의 국가로 흔히들 꼽는것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입니다. 그리고 이 두 나라의 공통점은, 유럽권 국가중에서 유독 맥주가 밋밋한 편이라는 겁니다. 프랑스의 경우 블랑으로 대표되는 화사하고 베르가못향이 도는 맥주들도 유명하지만, 그런 맥주는 일종의 디저트나 식전주 개념으로 소모되고 프랑스에서 제일 흔하게 보이는 크로넨부르 를 비롯해 라거류의 맥주들은 깊거나 풍부하기보다 가볍고 산뜻한 맥주들이 많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우도 비라모레띠 라는 맥주가 제일 흔한데, 한국의 카스와 그 상대적인 특성과 위치가 아주 흡사합니다. 쓴맛이 적고 홉향이 부족하며 가볍고 산뜻합니다. (물론 한국맥주와 비교하자면 절대적으로 진하긴합니다만 유럽권에서 비교하자면 명확합니다)
여튼 결국 하고싶은 말은 이거였습니다.
적어도 한국음식을 '안주'로 맥주를 마실 때, 한국 맥주만한 맥주는 사실 찾기 힘들다.
이는 한국맥주를 평가절하하고 매도할 문제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그러할만 해서 그렇게 발전해온 것이다.
문화와 전통, 또 그 문화와 전통이 정착된 사회에 잘 팔리기 위한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다 그러할만 해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발전해왔으며 이는 우열이 없이 그저 지역적 문화적 특성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산 크래프트 맥주, 이제는 종류도 많고 인지도도 높은 편입니다. 한국 크래프트 맥주의 최초 부흥기때 홍대거리를 거닐면 '첫사랑 IPA'가 입간판마다 써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수년 전에는 플래티넘 맥주가 힙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동서양의 식문화가 뒤섞이고 취향들이 그에맞춰 변하다보니 수입맥주와 크래프트맥주들이 득세하는 것이고, 이 또한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겁니다.
짧은 글을 이만 두서없이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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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관한 짧은 이야기]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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