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로 본 한국야구 현주소
호주·일본전서 잇따라 ‘충격패’
스타급 선수들 ‘세대교체’ 못해
日과 투수진 등 수준 차이 확연
체코와 3차전… 7-3으로 첫 승
박세웅 호투·김하성 홈런 두 방
13일 중국전… 원태인 선발 출격
“4-13이란 스코어가 지금의 일본 야구와 한국 야구의 차이를 나타내는 수치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한국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나온 결과라고 생각하는가?”
지난 10일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본선 1라운드 일본전에서 완패 뒤 기자회견에서 일본 기자가 이강철 한국 대표팀 감독에게 한 질문이다.
이 감독은 “일본이 잘한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오늘 경기가 한국 선수들이 가진 기량의 전부는 아니다.
선수들이 성장하고 나면 충분히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 2연패 탈출 한국 야구대표팀 선수들이 12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WBC B조 본선 1라운드 체코와 경기에서 7-3으로 승리한 뒤 인사를 나누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
선수들을 감싸 안아야 하는 사령탑의 역할상, 이 감독의 대답은 팀의 수장으로서 내놓을 수 있는 최상의 것이었다.
하지만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번 2023 WBC에서 한국 야구와 일본 야구 간의 수준 차이는 누가 봐도 확연히 드러났다.
한국 야구가 세계 무대에서 통한다는 인식, 나아가 세계 야구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계기는 2006 WBC 4강, 2008 베이징 올림픽 9전 전승 금메달, 2009 WBC 준우승 덕분이었다.
이후 2013, 2017 WBC에서 연이어 본선 1라운드 탈락을 경험하긴 했지만, 2015 프리미어12 우승과 2019 프리미어12 준우승은 이를 상쇄해줬다.
2021년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노메달 수모에 이어 2023 WBC 첫 두 경기에서 연이은 충격패까지. 이제는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때가 됐다.
더 이상 한국 야구는 세계 무대에서 명함을 내밀 만한 경쟁력이 없다는 사실을. 어쩌면 2000년대 중·후반 한국 야구가 이뤄낸 눈부신 업적은 한국 야구의 전체적인 힘이 아닌 그 시대에 전성기를 누리던 스타급 선수들의 특출 났던 재능 덕분이 아닐까.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흐른 지금, 바통을 이어받은 후배들에겐 그 영광을 재현할 힘이 없다는 것을 2023 WBC로 확인하게 됐다.
불상사의 시작은 8강 진출의 분수령으로 꼽혔던 9일 호주전의 7-8 석패였다.
분명 몸 상태가 더 좋은 투수들이 있었음에도 일본전을 생각하며 아꼈던 탓인지 잇따라 마운드에 오른 불펜 투수들은 홈런포를 허용했고, 결국 1점 차로 패했다.
당초 대표팀이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그렸던 그림에 일본전은 ‘이기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지더라도 조 2위로 8강 진출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예상치 못한 호주전 패배로 일본전은 갑자기 절대 지면 안 되는 경기로 바뀌어 버렸지만, 객관적인 전력 차이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특히 투수진은 9이닝 동안 안타 13개, 4사구 9개를 내주며 자멸했다.
반면 일본은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인 선발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이후에도 시속 150㎞ 중후반대를 던지는 투수들이 연이어 등판해 한국 타선을 제압했다.
흔히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하는데, 이날 투수진의 수준 차이로 이제는 한·일 양국의 야구가 불굴의 투혼이니 정신력 같은 것으론 결코 메울 수 없는 차이로 크게 벌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대표팀은 12일 체코와의 B조 본선 1라운드 3차전에서 7-3으로 승리하며 이번 대회 첫 승을 거뒀다.
지난 일본전 마지막 투수로 등장해 1.1이닝 무실점으로 콜드게임 패배를 막아줬던 박세웅(롯데)이 선발로 나서 4.2이닝 1피안타 8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벽투를 선보였다.
타선에서는 앞선 2경기에서 무안타로 침묵했던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사진)이 솔로포 두 방을 가동했다.
경기 뒤 이 감독은 “현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다 이닝, 최소 실점을 위해 최선을 다 했다.
경기 막판 3실점이 다소 아쉽다”면서 “남은 중국전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13일 열리는 중국전에선 원태인(삼성)이 선발로 나선다.
도쿄=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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