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4개 조직 적발… 20명 기소
‘페이퍼컴퍼니’로 무역대금 위장
코인 차익 노린 단기 거래 반복
홍콩·일본·중국·호주 등에 유출
연루 계좌 명의인만 256명 확인
4대 시중은행 등 9개 은행 거래
“송금 부실 심사 악용… 개선 필요”
최근 몇 년간 국내 가상화폐 등 가상자산 가격 급등에 따른 ‘김치 프리미엄’(가상자산 시세 차익)을 노린 불법 해외 송금 사건이 잇따른 가운데, 총 4조3000억원을 홍콩·일본·중국·호주 등 해외에 불법 유출한 4개 조직이 검찰과 세관 당국에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
특히 이들은 시중은행의 외환송금 절차상 허점을 범행에 이용한 것으로 드러나 제도 개선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 사진=AFP연합뉴스 |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부장검사 나욱진)와 서울본부세관 조사2국은 외국환거래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알선수재) 등 혐의로 불법 해외송금 총책과 브로커 등 11명을 구속 기소하고, 9명은 불구속 기소했다고 18일 밝혔다.
해외로 도주한 1명은 지명수배를 내렸다.
이들은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국내 코인 거래소의 가상자산 시세가 해외 코인 거래소의 가상자산 시세보다 높은 김치 프리미엄을 노리고 범행을 벌였다.
이 시세 차익이 높게 발생하는 시점을 골라 반복적으로 송금하는 회전 거래 수법을 썼다.
예를 들어 100억원이 100차례 순환하게 되면 해외 송금 규모가 1조원이 되는 구조다.
검찰과 세관 당국은 5개월간 합동 수사를 벌여 약 15조원에 달하는 1000여개 관련 계좌의 거래 금액을 추적·분석해 이들 조직이 해외 송금을 위한 다수의 무역 회사,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한 점을 밝혀냈다.
구체적인 범행 수법은 조직별로 다르지만 분업형이나 기업형 등으로 조직적인 범행 설계가 이뤄졌다.
총책, 관리책 등이 공모하는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조직과 유사하다.
이들 페이퍼 컴퍼니에 입금한 계좌 명의인은 총 256명으로 확인됐다.
대부분 투기 자금으로, 일각에서 제기된 대북 송금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
이들 조직의 범행엔 서울 지역 9개 은행이 연루됐다.
4대 시중은행 중에서도 포함된 곳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은행들은 영업 실적 경쟁 속에 외환 송금 사유나 증빙 서류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 시중은행 지점에선 5개월간 320여차례에 걸쳐 반도체 개발비 명목으로 1조4000억원 송금이 이뤄졌는데, 담당 직원은 포상까지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은행 점포별로 (영업 실적에 따라) 개인의 평점이나 승진 효과가 있어서 은행 입장에선 증빙 서류 등을 적극 심사해 불법 해외 송금을 막아야 한다는 의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제도적인 문제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검찰과 세관은 “은행 내부 책임자 내지 금융 당국이 적시에 개입해 불법 송금을 차단하지 못하는 이상 이번 사건과 같은 단기간 ‘치고 빠지기’ 형태의 송금 행위를 막을 수 없다”며 “향후 은행권과 금융 당국이 연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의 모습. 연합뉴스 |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7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자료를 이첩받아 9월부터 서울본부세관과 합동 수사에 착수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범죄 수익 131억원에 대한 몰수 및 추징보전 절차를 진행하는 한편, 다른 공범과 조직들에 대한 수사를 이어 갈 방침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10월 대구지검이 기소한 사건과는 별개다.
대구지검은 당시 9348억원을 해외로 불법 송금한 2개 조직을 적발해 8명을 구속 기소하고 1명을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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