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마>를 읽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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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를 돌아보다 : <그래도 끝까지 포기했다>

고교 시절 유일하게 좋아하는 과목이 ‘국어’였다.(그 다음은 사회) 주변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다니면 사람들은 나를 대단한 문학청년인양 우러러 보는 경향이 있다. 사실은 학교에서 국어선생님이 제일 예쁘고 사회선생님이 두 번째로 아리따우셨기 때문인데……. 아무튼 그 ‘제일 아리따우신’ 국어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시가 있었는데, 도종환님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라는 제목의 시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어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어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실수하더라도 기죽지 말라, 언젠가는 대성할 날이 온다.”라는 아름다운 말을 가르치는 것이 국어선생님이 이 시를 나눠준 근본적 의도였을 터이다. 그러나 17살의 우리들 대부분은 어리석게도 “지금은 필 때가 아니니 맘껏 흔들려도 된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언젠가는 꽃이 필터이니 한번쯤 방황해도 용서해주지 않을까? 라는 발칙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뭐 이것도 “흔들리는 과정이다.”라고 합리화하면 그만이겠지만, 그땐 그랬다.

선생님의 의도와는 반대로 그때부터 시작해서 마음껏 흔들리고 흔들기 시작했다. 언젠간필 테니까,참으로 안심되는 말이었다. 선생님이 고마웠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기까지 정말 그렇게 살았다. 나는 1분 1초가 중요하다는 고3여름방학에 ‘흔들리는 연습’ 피어날 준비라도 하려는 건지 온라인게임에 중독돼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으며, 친구는 수능전날 후배들과 격려파티를 한다며 남들 다 자고 있을 밤10시에 예비고3후배들을 만나서 응원식을 했다.(이때쯤 되면 누가 고3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나도 그랬고 그때의 친구들도 그랬지만 제대로 하는 일도 별로 없었다. 오히려 제대로 해냈던 일을 기억하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별반 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못 말리는 20살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 험난한 수능을 겪어냈다는(공부는 안했다.) 자부심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책임감 따위는 실종된 상태로 세월을 보냈다.


정말 제목에 쓴 것처럼, 이때의 우리 모습을 어느 할 일없는 작가가 보고 글을 쓴다면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르바이트하러 간 곳에서는 일보다는 연애를 목적으로 했고(친구 한명은 시내 횟집 주방 보조로 ‘연애하러’ 갔다. 정말로), 산골 물류센터에 짐나르러 가서 점심먹고 도망친 놈도 있었다. 어른들 말로 “군대가는게 약”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시쳇말로 잉여로웠고, 어른말로 배가 부른 ‘미친놈들’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게 이상한 줄 몰랐다. 다들 그랬으니까, 아니 다들 그런줄 알았으니까. 그렇게 <끝까지 포기하는 삶>이라는 장대한(하지만 재미는 없는) 자소설을 쓰다가, 벚꽃이 피고지고,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는 어느해 그 계절 우리는 모두 머리를 빡빡 밀고서 “집 떠나와 열차타고” 군대에 갔다. 부모님은 우리가 군대에 다녀오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거라 믿었다.

2. 라면 왕을 만나다

모두가 기대해 바라마지 않았다. 우리는 “인간이 되기 위해” 군대에 다녀왔으니까. 머리를 빡빡 밀고 군대에 떠난 친구들은 뭔가 변한 듯한 어정쩡한 모습으로 사회와 학교에 돌아왔다. 그러나 ‘군대 이펙트’ 대단하지 않더라, 뭔가 바뀐 듯한 느낌은 착각이었다. 그런 겉치레는 육개월을 못가고, 우리 모두는 군대 가기 전의 그 모습, 그대로 ‘잉여’로 다시 돌아왔다.

교내 컴퓨터실에서 짜장면 내기 스타를 하고, 새해가 올 때마다 새내기 여학생들을 꼬시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우리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실은 그네들도 다를 게 없었지만) ‘취업 전쟁’ 중이신 우리의 ‘마마’들, 군대 갔다 오면 다시는 안 볼 줄 알았던 대학 여자 동기들이었다.

남아 있는 여자동기들은 우리를 못내 안타까워했고, 결국 이 못 말릴 예비역 군바리들을 갱생시키기 위해 아까운 시간을 내시어 도서관 로비에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쭈뼛쭈뼛 어색한 모습으로 로비의 쇼파에 앉아있는 우리에게 여자 동기들은 책을 내밀었다. 하는 말인 즉 “이거나 읽고 정신 좀 차려라”란다. 술 마시지 말고 책이나 읽으란다. 그 책을 안받을 수는 없었다. 매일 같이 떡이 진 머리에 뿔테 안경, 그리고 엉덩이에 PINK가 그려진 짝퉁 츄리닝을 입고 다니시는 여자 동기들께서 밥값을 모아 친히 구입하신 책이었다. 책 제목은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마>

할인해서 샀냐고 물어보니, 제값주고 샀단다. 오래전에 나온 거 아니냐고 물으니 딱 잡아떼고 신간이란다. 책 같은 거 멀리한지 오래된 ‘예비역’이었지만, 그네들의 정성에 감읍하여 어디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인간인 이상 다음에 만났을 때 “어 내용 괜찮았어. 따위의 성의 없는 대답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가방에 그 책을 주섬주섬 챙겨 일어섰다. 그녀들은 다시 그 독서실, 아니 ‘동굴’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3.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마> : 인생을 바꿀 결심을 하다.

집에 들어가서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사실 그녀들이 ‘자기계발서’라고 선물해 준 것 같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읽은 책이라고는 판타지소설이 전부였으므로 잘 읽힐 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믿고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실패하면 돌려주면 그만일 거 아닌가, 내가 구입한 책도 아닌데

책은 ‘라면 왕 이야기’라고 했다. “빈털터리 고아에서 노르웨이 국민영웅까지 라면왕 Mr.lee의 이야기”라고 책 표지에 큼직하게 쓰여 있는 것을 확인했다. 다행히 요리책은 아니었다. 책을 천천히 들춰가며 읽기 시작했다. 좀 읽다가 말아야지 습관처럼 생각했는데, 나는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모두 겪은 사람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인공 이철호씨는 하늘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시련은 다 겪은 사람이었다. 전쟁을 겪고, 부모를 잃고, 포탄에 맞아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 거기다 노르웨이 병사에게 발견되어 노르웨이까지 흘러들어갔다. 그때가 1950년대 중반, 시골에 사는 사람이라면 유럽이 아니라 서울조차 가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는 ‘노르웨이 교포 1호’였다. 그는 그곳에서 언론의 관심을 받기는 했으나, 스스로 삶을 꾸려 나가야 했다. 구두닦이, 식당 보조의 보조부터 시작해서 안 해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충격적인 부분은 그가 먹을 것이 없어 빵집에서 새모이로 내어놓는 딱딱한 빵을 따뜻한 물에 불려서 먹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우리와는 달라도 달랐던 것이다.) 모진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피어나는 꽃'이 되는데 성공했다. 레스토랑의 사장이 되었고, 아내를 얻었으며, 지금 그를 가장 존경하는 세 딸을 슬하에 두었다. 거기다 그는 그가 초기에 몸을 웅크리고 자던 '한칸 방'을 포함하고 있는 저택 전체를 사는데도 성공했다. 52세라는 늦은 나이에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Mr.lee 라면 사업은 지금 그를 "노르웨이의 국민 영웅"으로 만들어 놓았다. 노르웨이에서 김대중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된 것이다.

나는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숨도 쉬지 않고 침을 삼켜가며 책을 읽고 내려놓으면서 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왠지 문학 소설 속에 나오는 통속적 표현 같지만, 나는 내가 그런 통속적 표현의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다. 같이 책을 선물 받은 남자아이들과 다음날 밥을 먹으며 물어보니 자기들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그리고 며칠 뒤 여자동기들을 다시 만나던 날 우리는 진심으로 “고맙다”라는 말을 전했다.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며 자신을 바꿔 갈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무언가 전보다는 변화의 의지가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군대이상의 효과가 있을 것인지, 아니면 전처럼 <그래도 끝까지 포기했다>라는 식의 인생에 또 충실하게 될 것인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나아질듯하다. 이런 마음을 먹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어학원’이라는 곳을 등록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나는 내 앞날이 기대된다. 무언가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4. 긴 서평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부족한 글재주에 글을 길게 쓰다 보니 누가 읽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고 적은 감상을 부족하나마 누군가와 나누자는 다짐을 했기에 과감하게 올려본다. 누가 “읽어라!”고 강요하는 것보다 “너 이거 읽어볼래?” 라고 옆 사람이 수군대는데 더 마음이 동한다고 하지 않는가, 나름 이 책에 있어 만큼은 ‘독서선배’인 내가 강하게 권한다. 일단 한번 봐라, 책임은... 음 내가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