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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피아 - 웹소설로 꿈꾸는 세상! - 선, 고거련에게 달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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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복색차림의 중년 사내가 어두운 색 피부와 거대한 덩치를 지닌 서역인 출신 수행원과 함께 수박 경기를 구경하고 있다. 이윽고 중년 사내가 수행원에게 말하길...
“감회가 새롭지 않은가?”
이에 수행원이 어눌한 말투로...
“그렇습니다. 태왕. 벌써 5년 전 일입니다.”
변복한 중년 사내의 정체는 고구려 20대 태왕 고거련. 나이는 불혹을 갓 넘긴 42세. 조그마한 덩치에 서글서글한 눈, 대체로 선해 보이는 얼굴이 인상적이지만...수백 명의 관료조직과 20만에 달하는 병사들을 일사분란하게 통제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실권을 가진 고구려의 최고 권력자다.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수행원의 정체는 용력으로는 그 누구도 당해낼 자가 없다는 고구려의 신장(神將) 갈로맹광. 나이는 27세. 5년 전 서역에서 넘어왔다. 이후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나라 무술인 수박을 눈대중으로 익히고 대회에서 우승하던 날, 지금과 마찬가지로 잠행 중이던 고거련에 의해 발탁된 것이다. 태왕과 몹시 절친한 사이지만, 갈로맹광이 서역에서 넘어온 사연은 고거련조차 모른다.
“그나저나 저 왜 불렀습니까? 이유 있습니까?”
“곧 객지로 떠나야하지 않은가. 밥 한 끼 사주려고 불렀네. 내 맛있는 곳을 알아서.”
“오...나 배고픕니다. 기대가 됩니다.”
이때 수박 경기를 구경하던 여인들이 갈로맹광을 바라보며 수군거린다. 그를 알아본 것이다. 여인들이 팔을 배배꼬며 수줍어하다가 결국...
“혹시 갈로맹광 장군 아니신지요?”
“맞네, 맞네. 진정 미남자시다...”
“밤에도 아름다우실 것 같아.”
수박경기를 보러온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 정도로, 수많은 여인들이 추파를 던지며 갈로맹광에게 몰려온다. 이에 당황스러운 갈로맹광이...
“뭐 먹으러 가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서 가야 합니다. 사람들도 좀 피할 겸.”
고거련이 고개를 끄덕인다. 갈로맹광이 두 손을 모으고 여인들에게 정중히 비켜줄 것을 요구하자, 머나먼 서역 땅에서 발생한 홍해의 기적(모세의 기적)처럼 서서히 길이 열린다. 물론 여인들은 너무도 아쉬워하지만 말이다. 고거련과 갈로맹광은 이틈을 타 빠져나간다.
“태왕. 역시 저도 변복을 해야 했습니다. 내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 사람은 큰 불편이 없네. 어차피 모든 이목이 자네에게 집중되니까.”
“너무합니다, 태왕.”
귀화인이 운영하는 주막.
조그마한 규모의 왜풍이 인상적인 주막. 밖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리지만 정작 주막 안에는 손님이 별로 없다. 그나마도 왜나라 말을 주고받는 왜인들이거나 귀화인들뿐이다. 고거련과 갈로맹광이 식탁에 둘러앉아 낫토를 먹는다.
“냄새가 이상합니다. 특히 이 콩! 코를 찌르는 독특한 냄새가 나는데, 막상 먹어보면 또 맛이 기가 막힙니다.”
“맛도 맛이지만 몸에 그리 좋다더군. 왜인들이 오래 살기 위해 많이 먹는다고 하네.”
“헌데 여기 처음 와봅니다. 여기도 새터민이 운영하는 곳입니까?”
“맞네. 하루라도 빨리 자리 잡게 도와주고 싶어서.”
갈로맹광이 주변 눈치를 살피다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하게...
“태왕이 다녀간 주막. 그게 더 빠를 겁니다. 돈 잘 굴러 들어올 겁니다.”
이에 고거련도 화답하며...
“그럴까? 확 밝혀버릴까?”
고거련과 갈로맹광이 화기애애하게 웃는데, 평민으로 보이는 부부가 주막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다가 갈로맹광을 알아보았는지 그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착석한다.
“이 사람이 복색하나는 잘 고른 모양이야. 아무도 못 알아보니 말일세.”
“태왕...은근히 알아봐주길 원합니다. 정말 재밌는 사람입니다.”
“뭐야!”
갈로맹광과 장난스레 티격태격하던 고거련은 문득 들려오는 평민 부부의 대화에 관심이 간다.
“이방인들을 왜 자꾸 들이는지 모르겠어.”
“뭐 어때서요.”
“이방인들이 범하는 죄를 몰라서 하는 소리야?”
“그거야 5년 전에 갈로맹광 장군이 이방인 왈패들, 수백 명이나 때려잡아 소탕했잖아요.”
...
과거 고구려의 귀족들 중 일부가 상당수의 이방인들을 헐값에 부리며 밀무역, 인신매매 등 흉악범죄에 이용해먹었다. 이에 고거련이 갈로맹광에게 뿌리 채 뽑으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러한 지시는 귀화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입지가 좁았던 갈로맹광을 단숨에 국가적 영웅으로 급부상시키기에 충분했다. 혼자서 백여 명이나 되는 서역 출신 왈패들을 단 한 명도 죽이지 않고 모두 때려잡아 범죄 집단을 소탕한 것이다.
왜 위험하게 혼자서, 그것도 아무도 죽이지 않았냐고? 실제로 그의 행동은 무모하기 이를 데 없었다. 범죄 집단은 소탕했으나 갈로맹광도 수일간 사경을 해맬 정도였으니. 근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고거련은 태왕이 되자마자 새 시대를 열겠다며 고문의 강도를 낮추고, 극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교화를 목적으로 경당에서 교육을 시키고 새 출발할 수 있게 재물도 내려주었다. 이에 가벼운 죄를 짓는 자들은 줄었으나 오히려 흉악범죄가 늘었고, 앞서 언급했던 사건 같은 불행이 발생한 것이다.
고거련은 실정이라며 자책했으나, 갈로맹광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작금의 고구려가 전쟁과 가난의 연속이었던 자신의 고향보다, 아니 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 평안하다고 느껴졌으니까. 하여 고거련이 틀리지 않음을 입증하고 싶었다. 해서 범죄 집단을 단 한 명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거련은 반대했다. 너무 무모해서, 자칫하다가는 갈로맹광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재주를 높이 사는 고거련에게는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고 말이다. 그러나 갈로맹광은 태왕의 만류에도 단신으로 범죄 집단에 뛰어들었고, 장장 반나절 만에 모두를 때려잡고도 살아남는 기적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
“그...그건 그렇지만...어쨌든. 저런 놈들이 하나둘씩 들어오면, 우리 자식들이 후손들이 살 땅이 점점 줄어드는 거잖아.”
“그건...그런 것 같네요.”
시종일관 고거련의 정책을 두호하던 안 사람도 자식들이 살 땅이 줄어들 거라는 지아비의 말에는 수긍을 하는 눈치. 이후 대화는 지아비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간다. 그러면 그럴수록 고거련의 안색은 어두워질 따름이다.
“태왕...괜찮습니까?”
“주인장.”
“찾으시는 거 있으므니까?”
“왜국에서는 어떤 술을 마시는가?”
“스미사께 한 번 드셔보시겠스므니까?”
“스미사께? 그건 무엇인가?”
“어...왜국에서 파는...청주...라고 생각하시면 되므니다.”
“알겠네. 가져와주게.”
안학궁으로 돌아가는 길...
자정을 훌쩍 넘긴 늦은 밤. 고거련과 갈로맹광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고거련이 취기 때문인지 살짝 비틀거리자, 갈로맹광이 서둘러 그를 부축하려 한다.
“태왕...괜찮습니까?”
“괜찮...”
고거련이 말을 끝맺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태왕...”
“실은 괜찮지 않네. 몹시 서운해.”
...
고거련이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대전략, 그 종착지는 북연에 살고 있는 수만의 백성들을 고구려가 품는 것이다. 고구려인 포로후손들이든, 토착민인 선비족이든 말이다. 물론 그걸 백성들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태왕과 관료들만 알고 있는 극비사항이니까.
하지만 훗날 있을 그날에 대해 백성들이 가질 불만을 완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교육에 힘썼다. 일반 백성들이 이용할 수 있는 교육시설, 경당(扃堂)을 확충하고, 역사교육을 실시했다. 94년 전, 전연이 고구려인을 무려 5만 명이나 포로로 잡아갔으니, 언젠가는 반드시 데려와야 한다고 말이다. 그 교육은 초창기에는 꽤나 효과를 보았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귀화해오는 외지인들이 늘어나면서, 백성들의 불만이 임계점에 가까워졌다. 많은 백성들이 자신들의 터전을 이방인들에게 내어주게 될까 조바심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북연에 살고 있는 고구려인 포로후손에 대한 인식도 점차 바뀌어갔다. 반드시 그들을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94년 전 역사를 또 다시 겪지 않게 나라가 부강해져야 한다는 인식이 백성들 사이에서 주류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고거련의 입장에서는 백성들의 지나친 기우로 보였다. 우선 선대인 광개토태왕이 급격하게 영토를 확장시키는 바람에 나라에 놀고 있는 빈 땅이 많았다. 땅이 아무리 넓으면 뭐하겠는가. 개간할 백성이 부족한데 말이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정복전쟁도 하지 않은 것이고, 이방인들의 유입을 적극 장려한 것이다.
더욱이 고구려인 포로후손을 되찾아오는 건, 북연의 선비족 백성들을 고구려의 이름으로 품는 건, 앞서 언급했던 실리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명분의 문제였다. 나라가 무능하여 빼앗긴 백성들을 다시 되찾아오는 건, 한 때 적국이었던 나라의 백성을 포용하는 건. 치욕뿐인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로 도약하겠다는, 하나의 선포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덧 태왕위에 오른 지 24년이 흘렀고...놀고 있는 땅들이 이제야 제구실을 한다. 또한 고구려인 포로후손과 선비족 백성을 포용해야할 때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근데 고작 삶의 터전이 빼앗길까봐 걱정이라는, 또는 자식세대 걱정을 벌써부터 하는 백성들의 마음을...고거련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태왕. 고구려 백성들...착합니다. 너무 미워하지 마십시오.”
고거련이 갈로맹광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좀 전의 백성들의 말에 가장 상처를 받았을 사람이 바로 이방인의 숙명을 지닌 그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 백성들이 착하다며 두호하는 갈로맹광을 고거련은 곁에 아니 둘 수가 없는 것이다.
“갈로맹광.”
“예...태왕.”
“때가 임박한 듯싶어 자네를 감찰관에 임명하여 숙군성으로 보내는 것이네. 부디 짐의 뜻을 잘 헤아려 일을 수행해주길 바라네.”
“명을 수행합니다. 태왕.”
...라는 말과 동시에 갈로맹광이 한쪽 무릎을 꿇는다. 그의 나지막하고 믿음직스러운 음성이 도처에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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