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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창작 웹소설] 선, 고거련에게 달려가다. 2화.
분류: 자작글
이름:  밤이오지않는나라


등록일: 2022-03-12 15:02
조회수: 183





https://novelpia.com/viewer/1047952 

 

 

 현 중원 대륙의 패권국 북위와 명맥만 근근이 유지하는 북연. 이 두 나라 모두 선비족이 근간되는 나라. 북위는 탁발 성씨가 지배층이고, 북연은 모용 성씨에서 풍씨 성의 한족으로 지배층이 교체 되었으나, 여전히 선비족들이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북연은 시도 때도 없이 북위의 침공을 받았다. 풍발이 황제였을 때는 그럭저럭 잘 막아내었으나, 풍홍이 황제가 되고 국운이 기울면서 영토는 급격히 줄어들어갔다. 마침내 최후 저지선인 백랑성만 남았다. 이를 구원하기 위해 수도 용성에서 지원군을 보냈는데, 그 지원군 중 하나로서 백랑성 방어선의 최전방에서...


 “뒈져, 개자식들아! 다진 고기로 만들어줄까?”


 ...라고 부르짖으며 죽을힘을 다해 북위 군과 맞서 싸우는 병사가 있다. 덩치는 작지만 몸이 다부지고 날래, 적군의 창검을 피하고 숨통을 끊어놓는다. 나이는 14세. 몸이 불편한 아비를 위해 남장을 하고 대신 차출된, 아직 이마에 불도장을 찍지 않은...‘선’이라는 이름의 고구려인 포로후손 여인이다.


 선은 죽기를 다해 싸우지만 승기는 북위에게로 기운지 오래고,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북연 지원군 지휘부로부터 퇴각 신호가 떨어진다. 선에게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원래 전쟁터에서의 죽음은 적과 맞서 싸울 때보다, 적에게 등을 보일 때 더 높은 확률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특히나 최전방에서 싸우는 선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선은 미친 듯이 달린다. 아군이 적의 화살에 맞아 죽고, 급작스레 출현한 경기병의 칼날에 또 죽어가지만...선은 오히려 적을 죽여서 그 말을 빼앗아 도망치고, 빼앗은 말이 적의 화살에 맞아 죽어 바닥에 내동댕이쳐져도...


 ‘이렇게 허망하게 죽고 싶진 않아. 살아남을 거야. 반드시!’


 바닥을 짚고 일어난다. 그리고 미친 듯이 달린다. 절대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지만 그래도 달린다. 죽을힘을 다해 달린다. 이대로 죽긴 너무나도 억울한...꽃다운 열네 살이니까.


...


백랑산, 오솔길.


 대패한 지원군들이 전선에서 빠져나와 백랑산을 거쳐 수도 용성으로 돌아가고 있다. 행군의 극심한 피로 때문인지, 아니면 궤멸적 타격을 받아 전의를 상실해서인지 대오도 갖추지 않고 힘겹게 이동한다. 


 절반 이상이 팔다리가 잘려있고, 그밖에도 몸이 성한 병사들을 찾기 힘들 정도다. 다행히도 크게 다친 곳이 없는 선이 주변 병사들과 함께 힘겹게 걸어가고 있다. 한편 주변 병사들이 수군거리는데...


 “이 나라는 끝났어...그냥 위나라(북위)에 투항할까? 우리랑 같은 선비족인데.”


 “같은 선비이긴 개뿔...허구한 날 쳐들어오는 개자식들일 뿐이야.”


 “그런가...”


 문득 수군거리던 병사들이 선을 쳐다보며 뒷담화를 하는데...


 “쟤...은연중에 다른 나라 말 하던데...”


 “나도 들었어...어느 나라 말인지 알아?”


 “나...알아! 저거 고구려 말이야.”


 “근데 쟨 이마에 자국 없잖아?”


 “아직 열다섯 살 안 됐나보지.”


 “에이...고구려인들은 최전방에 배치 되서 다 죽었을 텐데...게다가 열다섯도 안 된 꼬맹이라면 더더욱...”


 “그니까 지독한 놈들이라는 거지. 고구려인들은.”


 “고구려 놈들은 싹 다 죽여 버려야 하는데.”


 선이 인상을 찌푸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병사들은 고구려 험담의 정점을 찍는데...


 “그나저나 그거 아냐? 고구려 년들이 그렇게 죽인대!”


 “정조관념이 없어서 먼저 달려든 다지?”


 “와...죽이겠다 진짜...”


 “아 죽기 전에 고구려 년들이랑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참다못한 선이 주먹을 쥐고 그들을 향해 다가가는데...어디에선가 날아온 화살이 고구려인을 모욕했던 병사들 중 한 명의 목에 꽂힌다. 매복한 북위 군이 쏜 화살이다. 


 “모두 쏴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이윽고 북위의 보병이 쏟아져 나온다. 또 다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 선은 살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동료의 시체를 내달리며, 북위 군을 베어 넘기며 퇴로를 향해 달려가던 그는 문득 누군가 자신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음을 발견한다.


 “젠장...” 


 선은 재빨리 옆에 있는 병사를 방패삼아 자신의 몸을 보호한다. 이윽고 선이 방패삼은 병사의 머리가 북위 군이 쏜 화살에 의해 관통되는데...이게 웬걸? 머리가 관통된 병사의 정체가 고구려 여인들을 모욕했던 사람 아닌가. 게다가 죽어가면서까지...


 “비겁한...역시...고구려 놈들은 다 죽여 버려야 돼.”


 악담을 퍼부으며 무너져 내리는 병사를 바라보며...선은 눈물을 흘린다.


 ‘난...그저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게, 그게 뭐 잘못 됐어?’


 이때 북위 군이 쏜 화살이 선의 뺨을 스쳐지나간다. 선이 재빨리 정신을 차린다.


 ‘그래...이럴 때가 아니야. 어서, 어서 퇴로를!’


 선은 다시금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한다.


 


고구려의 수도, 평양. 안학궁성. 


 석양이 진다. 수많은 귀족들과 대신들이 퇴청을 하고 있는 가운데, 눈에 띄는 세 사람이 있었으니...


 “동부 욕살, 명림고보.”


 “서부 욕살, 아불보구.”


 “대대로, 우중려.”


...


 고구려가 건국될 때 총 다섯 개의 부족이 있었다. 계루부, 순노부, 절노부, 연노부, 관노부. 그러나 계루부 출신인 고국천왕이 태왕위를 독점하고 중앙집권화하면서, 계루부를 제외한 4개 부족이 ‘동, 서, 남, 북’ 총 4개의 행정구역으로 재편되었다. 


 명림고보. 나이 65세. 뼈대 깊은 명림가문의 장자로서, 수십 년째 동부의 수장인 욕살자리를 연임하고 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천성이 부지런하고 수련을 쉬지 않아, 군살 없는 다부진 체격을 지니고 있다.


 명림고보는 선대인 광개토태왕의 충신으로서, 숱한 정복전쟁을 승리로 이끈 명장이다. 그가 가는 길엔 새로이 생긴 땅과 적군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고거련이 태왕위에 오르고 정복전쟁이 사라면서, 영광뿐인 과거를 그리워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마냥 과거에만 빠져 사는 무기력한 노인은 아니다. 선대 태왕과 함께 이룩한 광활한 영토를 절대로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가문과 나아가 나라의 강군(强軍)을 도모코자 분주히 노력한다. 


 당대의 신무기라 할 수 있는 쇠뇌의 성능개발에 힘쓰고, 천하의 전략적 물자라 할 수 있는 말의 개체수를 늘리는데 공을 들이며, 함선의 수를 늘려 수군(水軍)강화를 꾀한다. 아울러 상선에 군용선을 붙여 호위한다든지, 조세를 줄여 부담을 줄여주는 등. 상인들이 자유롭게 다른 나라와 무역하여, 국부를 늘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


 명림고보와 아불보구, 우중려가 서로를 마주본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인 대대로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우중려가 가장 먼저 인사를 한다. 


 “소신은 먼저 퇴청하겠습니다. 동부욕살, 서부욕살.”

 

 “그러세요, 대대로. 오늘도 고생 많으셨소.”


 “살펴 들어가십시오, 대대로.”


 이윽고 우중려가 자리를 뜬다. 그리고 앙숙인 명림고보와 아불보구는 서로에게 아는 체도 하지 않고 떠나버린다.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적응이 안 돼, 적응이!”


 “저 노인네 눈빛부터가 마음에 안 들어...”


 혼잣말로 서로를 향한 악감정을 늘어놓으며 말이다. 특히 아불보구가 갖는 악감정은 명림고보의 그것보다 더 심해 보이는데, 과연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


 아불보구. 나이 불혹(40세). 가문 대대로 무인 집안이었던 아불가문의 여러 사내들 중 한 명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여인인데다가 타고나기를 왜소한 체형인 아불보구는 글공부에 관심이 많았고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문인(文人)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나...당시로서는 전형적인 현모양처 상일 따름이었다. 여인은 출세할 수 없으니 말이다.


 아불보구는 당시로서는 대를 이을 수 없는 무남독녀 외동딸이었지만, 그녀의 부친은 후처를 들이지 않았다. 친모에게 소위 아들 투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대를 잇는 건 다른 형제들이 해도 돼. 허니 아비는 후처를 들일 생각도 양자를 들일 생각도 없다. 내 모든 건 오로지 너의 것이다.”


 “내 전쟁터에서 정력을 소진하느라 더 많은 자식을 갖지 못하는 것 아니겠소. 허니 부인께서도 더 이상 신경 쓰지 마시구려.”


 직접 경험한 적은 없지만 전쟁터는 살이 찢기고 피가 튀기는 아비규환이라 들었다. 그런 아비규환에서 평생을 살아왔음에도 자신과 친모에게 늘 다정다감 하는 아비를, 아불보구는 지극히도 사랑했다. 그리고 그런 아비를 전쟁이 빼앗아가 버렸다. 전쟁 한복판 최전방에서 적과 맞서 싸운 아비가 전사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승리한 전쟁에서 매우 불운하게 말이다.


 “어찌하여 다 이긴 싸움에 그리 무리하여 앞장을 서신 겁니까. 아버지! 아버지!”


 모두가 승전의 기쁨을 만끽하는 동안, 아불보구와 그의 가문은 비애에 빠졌다. 특히 아비를 존경하고 사랑했던 아불보구의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울러 전쟁의 본질을 뼈저리게 깨달을 따름이었다. 전쟁에서 승자는 없다는 걸 말이다.


 바꾸고 싶었다. 고구려를 전쟁이 없는...그래, 침략해오는 적은 맞서 싸워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정복전쟁’은 없는 나라로 만들고 싶었다. 만백성이 부모를 잃고,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불행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불보구에게는 힘이 없었다. 아무리 똑똑하고 많은걸 알고 말을 잘하면 무엇 하겠는가. 권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는 걸 말이다. 그렇다고 마음에 없는 사내와 혼인한 다음 뒤에서 조종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 싶진 않았다. 


 고구려의 태왕과 귀족과 고위관료들이 안 사람과 친인척, 외척에 의해 휘둘리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아불보구 자신의 의도는 선할 지라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나라를 망조 들게 하는 길이 틀림없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불보구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새로이 태왕위에 오른 고거련이 전쟁영웅이자 자신의 누이인 ‘고구’의 위세를 등에 업고, 여인들에게도 출세의 기회를 주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더욱이 고거련이 정복전쟁을 꺼려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아불보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고거련과 고구에게 서둘러 서신을 보냈다. 자신의 생각과 왕가의 뜻이 같음을 피력했다. 결국 아불보구는 최연소 그리고 여인으로는 최초로 서부 욕살자리에 임명됐다. 


 아불보구는 여인이지만 여인이라고 무작정 자신의 측근으로 두지 않았다. 자신의 대전략, 반전(反戰)에 동조하는 사람들 위주로 포섭했다. 평민 출신들도 적극 등용했다. 평민출신인 8살 연하의 지아비, 을연도 그렇게 만나게 된 것이다.

 

...


고구려의 수도, 평양. 안학궁성 외각 시내.


 가마 두 대가 나란히 지나간다. 아불보구와 을연이 타고 있다. 가마의 소문을 열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데...먼저 아불보구가 하소연하듯...


 “아까 제 뒤통수에다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버르장머리 없다고 하더이다.”


 이에 을연이 아불보구의 감정에 공감하듯...


 “아니, 같은 욕살끼리 버르장머리라니. 그 노인네가 부인을 우습게 보는 거 아닙니까? 하여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저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 동부의 귀족 놈들...서방님보고 집안에서 살림이나 하라고 했다지요?”


 “그...그 얘긴 왜 또 하십니까...”


 을연은 자신이 아불보구보다 지위가 낮은 걸 가지고 동부에서 조롱하는 게 수치스러운 건 사실이다. 박학다식하고 현명하며 청렴하고 무엇보다도 평민계급인 자신을 발굴해준 아불보구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그 역시 사내가 여인보다 높은 게 당연했던 세상에 유년기를 보낸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릴 적에 사고와 가치관이 형성되면, 본질이 송두리째 변하기가 쉽지 않기에... 


 “속이 상하니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서방님께서 정무능력이 얼마나 뛰어나신데 그런 헛소리들을 늘어놓는단 말입니까. 같잖은 놈들...”


 물론 그렇다하여 아불보구에게 티를 내지는 않는다. 물론 은연중에 티가 났을 수도 있겠으나, 그래서 더더욱 조심하여 감추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평민 출신 사내인 을연이 귀족 출신 여인인 아불보구를 사랑하는 방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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