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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창작 웹소설] 선, 고거련에게 달려가다. 6화.
분류: 자작글
이름:  밤이오지않는나라


등록일: 2022-03-15 12:25
조회수: 181





모두가 생각에 잠긴 우중려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대체로 그의 생각이 고거련의 의중과 일치해왔으니까. 하여 서른이라는 이른 나이에 대대로가 되어 무려 20년째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이윽고 생각을 마친 우중려가 고거련을 바라보며...

 “태왕 폐하. 소신 우중려, 한 말씀 올려도 되겠나이까?”

 “물론이오. 기탄없이 말씀하시구려.”

 “소신이 판단컨대...동부욕살의 의중은 우직하나 차선의 길이고, 서부욕살의 의중은 최선이나 본질을 조금 벗어난 듯싶사옵니다.”

 고거련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어찌 그리 생각하는 게요?”

 “우리 고구려의 대전략은 연나라를 흡수하는 것이옵니다. 허면 연나라를 호시탐탐 노리던 위나라와의 관계는 자연스레 틀어지게 되옵니다. 우린 그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에도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하옵니다. 헌데 위나라와 백잔의 모든 교류를 막다니요. 만일의 상황에서 위나라를 견제해줄 송나라와 백잔의 모든 교류를 막다니요. 이는 온당치 않다 사료되옵니다.” 

 “계속 말씀해보시오.”

 “하여 소신은 서부욕살의 뜻에 좀 더 가까우나...신라보다는 왜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게 더 쉬우리라 사료되옵니다.”

 “어째서 그렇소?”

 “소신이 관할하고 있는 삼족오(정보수집단체)의 정보에 따르면, 서부욕살의 예단과는 달리 신라왕 눌지는 반(反)고구려 인사에 가깝다는 것이옵니다.”

 아불보구가 그럴 일 없다며 반박하는데...

 “눌지가 친(親)고구려 인사이자 선왕인 실성을 죽인 것 때문에 그리 판단하는 것이라면, 그건 그가 반고구려 성향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옵니다.”

 “이 사람도 눌지가 고구려에 대해 엄청난 적의를 드러내는 자라고 여기진 않습니다. 다만 그자는 다른 신라의 종속적인 왕족들과는 달리, 자주적인 성향이 짙은 자라는 것이옵니다. 하여 결국 친고구려 인사인 실성을 죽이고, 우리와 적대관계를 맺고 있는 백잔과 동맹을 맺지 않았나이까?”

 아불보구가 할 말이 떨어진 듯하다. 반면 고거련은 점점 할 말이 많아지는 듯한데...

 “왜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여 왜국과 백잔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고, 왜국의 신라의 침공을 묵인하여 신라의 국력을 약화시키자?”

 “신라는 아직 독자적으로 왜국을 막기 버거운 나라니까요. 나라가 외적을 막지 못하면 민심 이반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옵니다. 민심이 이반되면 왕권이 흔들리고, 왕권이 흔들리면 국력의 저하는 필연적으로 뒤따라오는 것이니 말이옵니다.”

“그리되어 신라의 국운이 기울고 왜국과의 관계에 균열이 가게 되면...백잔이 신라를 배신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겠지.”

 “그리되면 다시금 신라를 도우면서 백잔을 견제하면 되옵니다.”

 신라를 돕기 위해 백제를 견제하겠다는 건, 자칫 정복전쟁을 할 수도 있다는 뜻. 생각이 여기에 다다른 아불보구가 반대의사를 피력하려는데, 이를 눈치 챈 고거련이 먼저 그녀의 불안을 잠재우는 발언을 한다. 

 “굳이 신라를 돕기 위해 백잔과 전쟁을 일으키지 않더라도...짐의 군대를 신라에 주둔하여 전쟁을 예방하고 신라 내에서 고구려의 영향력을 강화...아니, 아예 속국으로 삼을 수도 있겠지.” 

 “또한 왜국과의 관계는 그때 가서 다시 조정하면 될 일이옵니다.”

 “물론이오. 외교에서 진정한 피아(彼我)는 없으니 말이오.”

 태왕과 대대로의 뜻이 같다. 더군다나 딱히 반박할 부분이 없기도 하기에...동부욕살 명림고보는 고거련과 우중려가 낸 결론에 첨언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서부욕살 아불보구는 고거련이 절대 쉽사리 답할 수 없는 부분을 질타하는데...

 “태왕 폐하. 허면 신라의 백성은 어찌 되옵니까?”

 “신라의...백성들?”

 “선대이신 광개토태왕께서 동류의식을 표명한 아국의 동족, 신라의 백성들은 결국 왜국의 병사들에 짓밟히게 될 것이옵니다. 그리 되어도 진정 괜찮으시겠사옵니까?”

 ‘동족의 백성들...’ 고거련이 당황하는 사이 우중려가 대신 아불보구에게 답하는데...

 “선대께서 동족이라는 이름으로 저들을 품고자하셨으나, 저들이 먼저 배신하고 서로 동맹을 맺었소. 허니 응징은 불가피할 따름이오.”

 “하여 응징이라는 것이 왜국을 끌어들여 신라의 백성들을 누란의 위기에 빠지게 하는 것이란 말입니까? 대관절 신라의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어, 그런 참담한 고통을 당해야 한단 말입니까?”

 “고구려의 군사들이 피를 흘리는 것보다야, 우리로서는 그것이 몇 곱절은 나은 선택일 테지요. 아니 그렇소?”

 “가능성은 희박하더라도 신라왕 눌지를 포섭하는 것이 명분...”

 우중려가 아불보구의 말을 끊으며 말하길...

 “외교는 기민해야 하는 법이오. 명분이 지나치면 둔해질 수밖에 없소.”

 “하여 명분 따위는 모두 버리라는 말씀이십니까?”

 “우리가 지켜야할 명분은 오직 초심뿐이외다. 우리의 초심은 고구려 백성들의 희생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었소. 아니 그러하오?”

 명림고보까지 거들고 나선다.

 “서부욕살께서는 그간 선대의 정복전쟁을 은근히 폄훼해오지 않았소. 헌데 이제 와서 선대께서 하신 말씀을 함부로 입에 올리다니! 내 선대와 함께 전장을 누벼온 장수로서, 불쾌하기 이를 데 없소이다.”

 “이 사람이 언제 선대의 공로를 폄훼하였소? 단지 앞으로의 고구려에서는 정복전쟁을 하지 말자는 것이지.”

 “그게 그 소리 아니오? 말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뭐하자는 건지.”

 “뭐요? 말장난?”

 동부와 서부의 대신들이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며 언성을 높이자...

 “그만!”

 고거련의 호통이 편전을 가득 메운다. 정적이 흐른다. 모두들 무척이나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고거련의 눈치를 살핀다. 

 “오늘 회의는 이만...”

 이때 파발마가 급히 편전 안으로 들어온다. 

 “무슨 일이냐?”

 “숙군 감찰관 갈로맹광이 보낸 상소이옵니다.”

 우중려가 고거련을 바라본다. 고거련이 고개를 끄덕이자, 우중려가 파발마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윽고 파발마로부터 상소를 전해 받고 태왕과 대신들 앞에서 읽기 시작한다.

 “신 감찰관 갈로맹광. 태왕 폐하께 급히 아뢸 것이 있어 이리 상소를 보냈나이다. 소신이 숙군성주 고구와 함께, 아국의 숙군성과 연나라의 용성의 경계지역을 순찰하던 중...호랑이에게 쫓기던 여인을 발견했사옵니다.”

 “설마...”

 “이후 소신과 병사들이 호랑이를 퇴치하였고, 그 여인의 정체는 연나라에서 살고 있던 고구려인 포로후손으로 밝혀졌나이다.”

 모두가 술렁이기 시작한다. 실로 오랜만에 북연에서 살고 있던, 정확히는 개돼지 취급을 받으며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버텨오던 고구려인 포로후손을 구한 것이니 말이다.

 사실 고거련은 회의 막바지에 기분이 언짢아졌었다. 

 ‘태왕 폐하. 허면 신라의 백성은 어찌 되옵니까?’

 그가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진행되던 회의가 아불보구의 단 한마디로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구려인 포로후손이 살아서 무사히 숙군성에 도착했다는 소식은 불편했던 그의 감정을 모두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실로 오랜만의 경사였기 때문이다.

 “이름은...무엇이라 하더냐?”

 “자세히는 알지 못하오나, 감찰관이 그 아이에게 ‘선’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나이다.”

 “착할 선(善)이라고 하더냐? 베풀 선(宣)이라고 하더냐. 그것도 아니라면 고울 선(鮮)이라고 하더냐?”

 “소...송구하오나...그것까진 알지 못하옵니다.”

 “아, 그렇겠지.”

 고거련이 멋쩍은 듯 미소를 보이며 웃자 그제야 싸늘했던 분위기가 누그러진다. 먼저 명림고보가 모든 걸 태왕의 공로로 돌리며...

 “이 모든 게 태왕 폐하의 홍복이옵니다.”

 “고맙소.”

 그 다음엔 고거련 다음으로 이번 일이 기쁜 아불보구가...

 “실로 오랜만의 경사가 아니옵니까? 경하 드리옵니다. 폐하.”

 고거련이 아불보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까 아불보구의 말에 기분이 상한 건 맞지만, 사실 그건 그녀가 주장한 내용 때문이 아니었기에. 또 원래 둘의 사이가 좋았고...고거련은 미소를 머금으며 아불보구의 경하인사를 받아들일 따름이다.

“고맙소. 서부욕살. 이 모든 게 우리 고구려의 복이올시다.”



숙군성. 갈로맹광의 숙소.

 열 네 살의 나이는 참으로 좋은 것이다. 요 며칠 사이에 벌써 반쯤 부상을 회복하고 숙소에서 몸을 움직이는 선이다. 팔을 굽혔다 펴고,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무예를 연마한다. 그러다가...

 “하...답답해. 바람 좀 쐬면 안 되나?”

 물론 밖에 나간 적은 있다. 씻거나, 변소를 갈 때만. 무엇보다도 대놓고는 아니지만 중간 중간 배치된 병사들이 은근슬쩍 자신을 쳐다보고 있어, 감시 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충분했다. 

 때마침 갈로맹광이 안으로 들어온다. 
 
 “오, 선! 몸 다 나았습니까? 아주 활동적입니다.”

 “저 바람 좀 쐬면 안 됩니까? 너무 답답해서.”

 “물론입니다. 나랑 나갑시다!”

 ...

 4월의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선이 갈로맹광과 함께 성곽 위를 거닐고 있다. 근데 선은 이상할 따름이다. 한 시각 전까지만 하더라도 감시하던 병사들이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저기...”

 “선. 왜 그럽니까?”

 “절 감시하던 병사들이 사라졌습니다.”

 “아 그거! 별거 아닙니다. 며칠 간 만 감시를 붙였다고 합니다. 선, 간자(간첩) 아닌 걸로 판명난 겁니다!”

 “간자요? 절 의심했던 겁니까?”

 선이 다소 기분이 상한 듯 보이자...

 “선. 절차일 뿐입니다. 기분 상할 필요 없습니다.”

 “감시 당해본 사람만 압니다.”

 “나도 감시 받았습니다. 5년 전에.”

 “5년 전에 고구려 사람이 되신 겁니까?”

 “맞습니다. 5년 전에 귀화 합니다.”

 “하여 피부색이...”

 “피부색?”

 “아...아닙니다. 그나저나 전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선. 태왕께 데려갈 겁니다.”

 “어디에...계시는데요?”

 “평양. 고구려의 도읍입니다.”

 ‘평양? 도읍?’ 

 “선. 거기 가면 놀라 까무러칩니다. 일단 거기 가면...”

 이윽고 한껏 기대를 높이는 갈로맹광 때문인지, 선의 머릿속에서 평양은 환상의 도시로 그려진다. 연인과 친구와 가족과 함께 환상과 행복만이 가득할 것 같은 도시, 평양을 누빌 생각에 행복에 젖던 그녀는 문득...

 ‘가족?’

 애당초 북연에 있을 때도 친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고구려에서 새로 만들면 그만이다. 그러나 가족은 다르다. 부모는 새로 가질 수 없다. 더군다나 아예 생이별한 것도 아니고, 자신은 천당에서 부모는 지옥에서 산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밀려왔다.

 “선. 왜 그럽니까?”

 “아버지...어머니..보고 싶어서요.”

 갈로맹광은 선이 안쓰러울 따름이다. 가족의 죽음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자신조차 가끔은 미친 듯이 보고 싶은데...아직 살아있으나 언제든지 죽을지 모르고, 이제 생사조차 확인하기 힘든 부모를...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게 외려 더 이상한 걸 테니까.

 갈로맹광은 선에게 고거련의 대전략을 말할까도 싶었다. 고구려가 북연을 흡수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게 북연 백성들의 삶이라, 괜히 헛된 희망만 심어줄 것 같아 도리어 말을 아낀다. 그저 눈물을 글썽이는 선의 어깨를 조심스레 다독일 뿐이다.



숙군성 인근 나루터.

 마침내 선이 평양으로 간다. 배를 타고 요하를 건너 요동으로, 요동에서 육지를 통해 평양으로 가는 것이다. 평양으로 복귀하는 갈로맹광의 행렬에 포함되어 말이다. 

 아무래도 선이라는 아이의 상징성 때문인지, 고구가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나와 선과 갈로맹광을 배웅한다. 또한 북연 탈출에 성공한 선을 보고 싶었는지, 천여 명의 숙군성 백성들이 나루터에 몰려들었다.  

 “어렵게 고구려로 온 만큼, 잘 살 거라.”
 
 “감사했습니다...성주님.”

 “감찰관께서도 안녕히 돌아가시오.”

 “나. 원래 숙군성에 머물러야 합니다. 성주랑 같이 작전수행 해야 합니다. 헌데 선을 평양에 데려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안심합니다. 숙군성 완벽합니다. 성주, 믿습니다.” 

 “그리 봐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소.”

 “태왕한테 안부 전하겠습니다.”

 고구와 갈로맹광은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서로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한편 인사를 마친 선이 갈로맹광과 함께 배에 상선(上船)하려는데...

 “살아줘서 고맙네.”

어디에선가 들려온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자리에서 멈칫한다. 이윽고 재빨리 뒤를 돌아봤으나, 워낙 많은 인파가 몰려서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알아내지 못한다. 종국엔 전날 밤 겨우 진정시켰던 감정이 다시금 휘몰아친다.

 가난하게 태어났고, 고구려인이라는 이유로 핍박 받았고, 전쟁터를 누비며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고, 고구려로 넘어오기 위해 북연 군사들에게 쫓기다가 호랑이에게 잡혀 먹힐 뻔했다. 이 모든 게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으니까.

 “선. 왜 멈춥니까?” 

 “살아줘서...고맙다고...했습니다.”

 갈로맹광의 시야에 눈시울이 붉어진 선의 모습이 들어온다. 

 “선...일단 배에 오릅시다. 자세히 말해주겠습니다.”

 선이 갈로맹광의 부축을 받으며 배에 오른다. 

 ...

 배가 요동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선과 갈로맹광이 선선한 늦봄의 강바람을 맞는다. 

 “아까 해주신다는 얘기...지금 해주실래요?”

 “선. 지금 우리가 보는 이 강. 이름이 뭔지 압니까?”

 “모릅니다.”

 “요하라고 합니다.”

 “요하...”

 “요하 근처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었답니다. 그리고 엄청 싸웠다고 합니다. 백년 가까이.”

 “백년...씩이나요?”

 “맞습니다. 해서 죽는 사람 엄청 많았답니다.”

 “그랬을 테죠...”

 “헌데 지금 태왕, 태왕이 됩니다. 이후 전쟁 없었습니다. 병으로 죽거나 늙어서만 죽었답니다.”

 “그런 게...가능한 거였군요.”

 “그 때문일 겁니다. 숙군 사람들. 삶의 애착이 크답니다. 목숨의 소중함. 다른 땅보다 더 강할 겁니다.”

 “하여 제게 살아줘서 고맙다고 한 것일까요?”

 “잘은 모릅니다. 헌데 아마도 그럴 겁니다.”

 선은 흐릿해져가는 숙군성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두개의 눈으로 담은 그들의 모습은 기억에서 점차 흐릿해지겠지만, 마음으로 담은 그들의 진심은 영원히 가슴 속에 남아있을 테니...선은 지금 숙군성과의 이별이 슬프지 않다. 

 ‘모두들...행복하게 잘 사셔야 해요.’

 그저 미소 지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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