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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 도평의사사(도당).
전조 고려로부터 이어진 최고의 정치권력 기구 도평의사사, 이하 도당. 그곳에서 재상들이 회의를 하는데, 개중 가장 으뜸이라 할 수 있는 도전에게는 같은 당여이자 심복들이 있다.
도당의 회의를 이끌어가는 좌정승 남현, 우정승 심근수. 나라의 부정부패를 수사하는 사헌부의 수장, 대사헌에는 심근원. 한양 도성의 치안을 담당하는 순위부의 수장, 제조에는 심근형. 참고로 심근수, 심근원, 심근형은 형제로서, 심씨 일가로 불린다. 어찌 되었든 권력의 핵심에는 모두 도전의 사람으로 채워진 상황.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꽤나 심각하다. 심씨 일가와는 달리, 남현은 워낙 중립적인 사람인데다가, 도전의 소위 요동무주공산론이 허위임이 밝혀짐과 동시에 애당초 요동정벌에 회의적이었던 신하들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보수파 하륜이 있다. 한편 겉으로는 평온해보이지만 속으로는 타들어 가는지, 각기병 증상이 다시 도져 저린 손과 팔뚝을 매만지는 도전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토록 전례 없는 군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는, 삼봉 대감. 그대가 유일할 것이오. 헌데 어찌하여 전하와 도당을 농락한 것이오이까?”
“어허! 삼봉 대감에게 농락이라니. 하륜 대감은 말씀을 삼가시오.”
“형님 말해 뭐합니까. 애당초 배포가 작은 작자들이 아닙니까.”
“소인배들...”
심씨 일가가 도전을 보호하기 위해, 하륜을 향해 맹공격에 나서지만...
“도당 재추들의 권력이란 게,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라와 조정을 농락한 희대의 사기극을 벌여놓고, 이리 마음 편하게 농이나 지껄이고 있으니. 삼봉대감. 이러려고 재상총재제 하시려는 모양입니다, 그려.”
이렇듯 오히려 되치기를 당할 뿐이다. 그럼에도 상황 파악 못하고, 알량한 지식을 뽐내고 싶어 안달이 난 근형이 하륜을 향해 폭언을 날린다.
“네 이놈, 하륜아. 네 놈이 개 버러지 같은 이인임의 조카사위로, 전조 고려에 끼친 해악이 얼마더냐. 네 놈이 인간이라면 네놈을 용서해주고 도당자리에 임명까지 한 주상전하와 삼봉대감...”
근형의 말이 같잖은 하륜이 그의 말을 끊으며...
“소생을 용서하시고 재추에까지 임명하신 건 주상전하이올시다. 국운을 건 사업을 거짓으로 범벅을 한 판의흥삼군부사 대감이 아니라. 뭘 알고 떠들어야지.”
이에 발끈한 근형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하륜에게 멱살잡이 하려고 하자, 도전이 제지한다. 말로써 심씨일가를 제압한 하륜이 의기양양해하며 도전에게 따져 묻는다.
"어찌 변명을 하지 않소이까?"
"무엇을 말인가?"
"요동이 마치 무주공산과도 같아, 도지휘사 하나만 타격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처럼 거짓을 늘어놓으신 데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도전이 비웃음을 머금는다.
"이제 출정일까지 열닷새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자네가 뭘 어찌할 수 있겠는가?"
"전하께 주청을 올려..."
"자네...자꾸만 정안군 곁을 서성인다지?"
고려가 망한 후 처 백부였던 이인임이라는 거대한 끈이 사라지고 난 후, 한동안 방황하던 하륜. 방원과 도전 사이에 미묘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음을 눈치 채고, 방원의 제갈량, 방원의 삼봉 정도전이 되기 위해 혈안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 방원 때문에 홀로 속앓이를 하던 차에, 방금 전 도전의 은근한 비아냥거림은 하륜의 가슴을 쓰라리게 할 비수가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딱하게도...정안군 역시 자네를 그리 여긴다던데. 고려의 권문세가, 간적 이인임의 조카사위. 버러지 하륜. 그게 사실인가?"
심씨 일가를 비롯한 요동정벌 찬성파 재상들이 박장대소를 하는 가운데, 하륜의 얼굴이 점차 굳어진다. 이때...
"쾅!"
부서진 문과 함께 방원이 철퇴를 바닥에 질질 끌며 도당 안으로 들어온다. 진법훈련 때 착용한 복색 그대로다. 재상들이 형식적으로나마 예의를 차리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데, 오만방자한 근형은 방원의 땀 냄새에 얼굴을 찌푸리며 코만 틀어막는다.
"정안군 대감. 이게 무슨 짓이옵니까?"
"스승님. 이 고철덩어리가 뭔지 아십니까? 임신년(1392년) 사월(巳月, 4월). 당신을 천민의 자식이라 모함하고, 옥에 가두고 죽이려했던 포은 정몽주를...백주에 저잣거리에서 때려죽인 철퇴입니다."
"소신을 겁박하시는 것이옵니까?"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권신에게, 그리 하면 아니 되는 것입니까?"
"일국의 왕자께서 어찌 이리 경망한 처사를 보인단 말이옵니까? 설령 왕자라 하여 궁중예법이 아니 무겁진 않은데 말이옵니다."
"스승님께서 저술한 조선경국전에 이러한 글귀가 적혀있다지요. 왕의 역할은 오로지 재상 하나를 임명하는데 있다."
도전이 방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 그동안 저 글귀의 저의를 구태여 의심치 않았는데. 오늘의 이 소동을 겪으니, 비로소 알 것 같소이다. 그야 말로 역심이 가득한 권신의 글귀임을 말이오.
"도당이 조금 소란하다하여 전후사항도 파악치 않고 이리 경망스럽게 달려오시다니. 역시나 군왕은 신중하고 또 신중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소신의 생각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재차 확신하게 되나이다."
순간적으로 도전의 도발에 넘어간 방원이 발끈하여 소리친다.
"도대체 무엇이 경망하단 말입니까? 어찌 소생이 경망한 것입니까?"
이때 도당 밖에서 태조 이성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과인은 다 알고 있었느니라."
백악산 오솔길.
해질녘과 저녁의 경계 즈음. 무령과 초복, 말복이 병사들을 이끌고 하산 중이다. 초복과 말복의 표정이 자못 심각한데...
"형님, 이게 말이나 됩니까! 요동에 자그마치 10만이나 있다니..."
초복이 무령에게 말을 건네는데...
"무령 낭자. 소인이 병법에 대해 잘 알진 못하나, 얼핏 듣기로 공성을 위해선 수성군의 다섯 곱절은 있어야한다 들었습니다."
"그렇소..."
"헌데 조선 땅의 모든 병력을 합쳐도 채 10만이 되질 않습니다."
"세간에 나도는 풍문이 맞았습니다, 형님. 삼봉 대감께서 왕자 분들을 제거하기..."
말복의 다소 경솔한 언행에 무령과 초복 모두 놀란다. 초복은 자못 엄중한 표정과 지엄한 목소리로 말복을 매섭게 다그친다.
"입 닥치지 못하겠느냐! 어찌하여...어찌하여! 매번 그리 경솔한 언사를 이리도 쉽게 내뱉을 수 있단 말이냐!"
"형님..."
무령이 중재에 나서는데...
"너무 염려들 하지 마시게. 아무렴 천하의 삼봉 대감께서 아무런 대책도 없으셨겠는가."
그 중재가 못마땅한 말복일 따름이다. '아주 여유가 넘치네...' 이에 초복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복을 향해 ‘스읍’ 한다. 분위기는 냉각되어 정적에 휩싸이고, 무령의 안색은 더욱 더 어두워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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