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등산구점에 들렀다가 기절할 뻔 했다. 외국 브랜드 등산바지 하나에 30만원 태그가 붙었다. 심하군! 한숨이 나왔다. 보고 또 봐도 특별할 거 없는 평범한 등산 바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경이로운 바가지 요금표가 눈앞에서 살랑거리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값을 수용하는 소비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별할 것 없는 바지에 30만원 태그를 붙여 시장에 내놓는 업계의 똥배짱의 근원에 대해 잠시 명상(!)해 보았더니 대략 이런 이유들이 떠올랐다.

① 모르면 일단 비싼 것을 추켜드는 소비자가 있다.

② 30만원 가격표를 보고 나면 20만원 짜리 바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느껴진다.

③ 30만원 짜리 가격표를 반복 노출시켜두면 훗날 이것이 자연스러운 가격이 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7~8년 전 고급 바지 하나에 5만원 대에서 시작한 등산의류 바가지 가격 행진이 현재 30만원에 이르렀다. 놀라지들 마라, 소비자들아, 100만원이 멀지 않았다.

누군가 "30만원 짜리 등산바지가 뭐 그리 대수냐?"고 물어올지 모르겠다... 나는 작업복과 골덴 바지를 잘라 니커보커를 만들고, 양동시장에 가서 배낭을 맞춤 주문하며, 깡통에 구멍을 뚫어 버너 대신 사용하던 시절의 기억이 분명하게 각인된, 가난한 산악부 세대이다. 그러므로 산에 가서 나무에 긁히고 흙에 뒹굴 용도의 작업복 바지가 30만원이라는 설정은 어떤 설명으로도 내게 수용되지 않는다. 그 점에서 요즘 사람들의 상대적으로 풍족한 소비 정서와는 온도차가 있을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해자면 값이 내리는 것이 시장 원리이다. 그런데 등산 의류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값이 도리어 오르고 있다. 소비자는 뒷전이고, 공급자가 가격을 주도한다. 이처럼 이상한 공급-소비 체계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등반의류에 관한 한 소비자가 공급자에게 기가 죽어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에서는 당당하고 까다로운 고객들이 등산구점에만 들어서면 착하고 숫기 없는 손님이 된다. 등산구점 주인은 원정대 장비담당인 양 행세하고, 점원들은 등반 가이드 같은 태도로 소비자를 대한다. 남들로부터 ‘전문 산악인’ 소리를 듣는 나도 등산구점에 가면 ‘잘 교육된’ 직원들로부터 귀따갑게 훈수를 들어야 한다. “배낭은요~ 멜빵은요~ 어쩌고, 저쩌고…” 따라다니며 쫑알대면 들어주는 수밖에ㅋ. 등산구점에서는 고어텍스 쿨맥스 윈드스토퍼 파워스트레치 같은 소재 이름과 지퍼나 후드 씸 설치 방식에 따른 기능의 명칭들이 일단 소비자의 상식적인 감식안을 무장해제 시키고 들어간다.

사실, 특수 원단이나 기능은 에베레스트 원정에서나 필요한 것들이다. 가격대비 효능으로 평가하자면 트레킹 수준의 야외활동에도 과한 기능의 제품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아웃도어 시장은 이런 특수 원단 고기능 제품들이 주도하고 있다. 티코 승용차에 덤프트럭 타이어를 장착한 것 같은, 기형적 기능 과잉 제품으로 넘쳐난다.

예를 들어 20~30리터 용량의 당일 등산용 배낭은 일반 멜빵으로도 충분히 하중을 견디는데, 대형 배낭에나 적용하는 특수 멜빵 시스템을 부착한 제품들이 출시되어 있다. 가득 채워봐야 5킬로쯤 나가는 배낭에 수백 킬로 하중을 견디는 비상식적 멜빵을 채택한 후, 비상식적으로 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사실, 작은 배낭에 프레임까지 삽입한 특수 멜빵시스템을 적용하면 수납공간이 답답해지고 무게가 더 나가므로 기능적으로 오히려 손해다. 기능이 떨어지는데, 값은 올라간다!

문제는 소비자다. 차이, 용도, 가격대비 효과를 잘 모른다. 모르니 주눅이 든다. 고급품만 추켜든다. 값은 부르는 대로 낸다. 부르는 대로 내니 업자들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른다. 일반 패션 의류는 감성과 감각의 문제이기 때문에 디자인에 매겨진, 어쩐지 거품이라고 느껴지는 값에 대해서는 소비자에게 지출 확신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즉 소비자에게 일정한 선택권이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등반의류는 거품 가격을, 교묘하게도, ‘기능’에다 붙여 놓았다. 기능은 어쩐지 실체로 느껴진다. 그래서 지갑을 연다. 그것이 실은 우리나라 소비자의 허영심을 교묘히 자극해 낚는 일이었다.

 전 저분의 생각에 200%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