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휴일, 사량도로 향합니다. 사량도는 22년 10월에 온 적이 있습니다. 

산림청 100대 명산이어서였기도 했고, 설악 공룡을 탄 다음 날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힐링하는 섬산행을 계획한 것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2년 전에 엄청 고생했습니다. 위험도만 따지자면 차라리 설악이 더 안전하고 깔끔했습니다.

여긴... 초반의 육산 지형을 제외하면 죄다 산이 날카롭고 뾰족뾰족한 데다가 낭떠러지 위험천만인 산입니다.

그나마 보수하고 정비한 상태가 이렇다는 게 당시에 더 놀라웠습니다.

거기다가 바람에 안개에 비도 오다 말다 하였지요. 그래도 고동산까지 상도의 모든 봉우리를 완주했습니다.

여기는 다신 못 오겠다 생각했었으면서도 죄다 곰탕이어서 지리망산의 아름다움이나 칼바람과 폭풍 속에서 달바위를 우회했던 아쉬움, 하도를 돌지 못한 미련에 다시 찾았습니다.

9시 넘어 고성의 풍양카페리 터미널에 도착하여 10시 배를 탑니다.

휴일의 마지막 배는 17시 30분입니다. 이걸 놓치면 강제 숙박이군요.

쉽게 말해 타이머가 돌아가는 겁니다. 이런 타임 어택, 이상하게 도파민을 분비시킵니다.

30분 정도 걸려 상도의 내지항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다시 25분 정도 달려 사량대교를 지나 하도의 읍포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시작하려는 찰나 통영 주민분께서 전날 비가 왔으니 조심하지 않으면 떨어진다고 하십니다.

예전에 여기서 죽은 사람이 많다는 것은, 아이스께끼 팔던 분에게서도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떨어지면 최소 사지 중 하나가 나가거나 죽어서 나간다던...

시작 지점입니다. 칠현봉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일곱 봉우리로 되어 있습니다. 400미터짜리 산이 뭐가 두렵냐 할 수 있겠지만 정말 아직도 무섭습니다. 

오늘 마지막 흙바닥이 나올 때까지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평이하게 오를 때쯤 급격히 암산으로 뒤바뀝니다. 하도에서 바라보는 상도의 모습입니다. 왼쪽 위가 지리산(지리망산-지리산이 보인다 하여), 가운데가 달바위가 있는 불모산, 거기서 오른쪽에 동그란 애가 가마봉, 구름다리로 이어진 곳이 향봉, 그 옆에 튀어나온 게 옥녀봉입니다.

튀어나온 얘들만 거리가 4km인데 위아래 엠보싱으로 사람의 체력을 갉아먹는 난도는 gps로 측정 불가입니다.

가민 수치 중에 인상 깊은 건 488층 올라갔다는 데이터였습니다. gps 기록만으로 총 상승 1777m로 뜹니다.

이건 굳이 안 돌아도 되는 코스를 추가한 저의 오기가 반영된 것이기도 합니다. (사량도 트랭글 배지 한번에 도장 깨기)

날씨는 최고 온도 5도로 냉장고에서 제로콜라 꺼내 먹기 좋은 온도입니다. 등산하기 딱 좋지요. 게다가 바람도 다리, 대교 지날 때와 내지 하산 외에는 거의 불지 않았답니다.

칠현봉 오르면서 나온 데크 계단(용두봉)에서 7시 방향의 섬을 찍어 봤습니다. 거북이 머리 같기도 한 게 돌산 금오봉이 생각나네요.

대기질은 아주 좋은 편이라 생각합니다만, 좀 더 새파랗거나 더 뚜렷이 멀리 보이는 겨울의 느낌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

망봉으로 오르기 전, 용두봉을 뒤돌아 찍었습니다. 용머리의 용두봉인지 모르겠습니다.

망봉 가는 길에서의 조망입니다.

오른쪽 끝은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곳이지만 뷰 맛집인 고동산입니다.

가는 동안 십 원에 열두 개에 판다던 전설의 아이템 염소똥을 무더기로 봅니다.

모종의 이유로(아마도 식용이겠지요?) 섬에 들어왔다가 사량도와 함께 운명을 하게 된 염소들입니다. 천적인 사람이 관심 없으니 온 데가 똥판이네요.

하도의 가운데, 칠현봉의 정상을 향하고 있습니다. 무색에 가까운 도화지가 한 달만 지나면 어떻게 칠이 덮일까요? 등로의 왼쪽은 진달래 같고 오른쪽은 철쭉 같습니다.

망봉을 지나 칠현봉 앞까지 왔습니다.

이정표와 함께 검은 비석이 멀리 보입니다.

트랭글에선 여기가 망봉으로 뜹니다. 비석은 칠현봉으로 박혀 있네요. 지도상으로는 여기서 더 가야 칠현봉입니다.

그나저나 7봉우리 중에 여기가 제일 높긴 합니다.

지도상의 칠현봉을 지나 갈림길에 왔습니다. 정주행하면 쉽게 상도로 갈 수 있지만... 한큐에 트랭글 배지를 다 따 보기로 마음먹고 왔습니다.

대곡산으로 향합니다. 지도상의 대곡산은 1km도 안 되지만, 트랭글로는 2km를 가야 합니다. 왕복이니 4km네요.

통포, 능양항이라고 되어 있는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그래도 정상 부근이 정비는 되어 있는 거 같습니다. 데크가 보이네요.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길이 뭉개져 있거나 숭악한(?) 돌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도상으론 여기가 대곡산입니다. 500m 정도 온 거 같습니다. 돌아갈까 싶지만 능선을 쭉 타서 11시 방향에서 12시 방향으로 더 진행해야 합니다.

안내판의 추도, 욕지도, 두미도 등이 다 보이는 것을 보면 날이 좋은 건 맞나 봅니다.

안내판을 지나... 하염 없이 가다가 뒤를 문득 돌아봅니다. 칠현산의 봉우리가 7개 보이네요. 상도에선 얘네들이 선명히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뒤통수에서 봐야 7봉이 제대로 보입니다.

살살 화가 나려고 하면 데크가 나왔다가 돌길이 나왔다가 흙길이 나왔다가... 템포를 어지럽힙니다.

능양항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입니다. 정면이 능양항입니다. 여기선 항구가 봉우리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트랭글의 대곡산 배지를 획득했습니다.

처참한 이정표의 상황입니다. 칠현봉까지 2km라고 계산되는데 이정표는 1.6km라고 하네요.

하산길로 조금 더 내려가 보면 능양항이 그래도 보입니다. 너무 뷰가 없어서 여기를 왜 배지 처리해 뒀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시그널 띠도 하나 달려 있었습니다. 이제 돌아가야 합니다.

한숨이 나옵니다. 하도를 아직 내려오지도 못했는데 초반부터 체력이 빨간불 느낌입니다.

갈림길로 돌아오니 약 1시간 15분 정도를 소모했습니다. 약 4km를 넘어 왕복한 것으로 가민에서 측정됩니다.

산 중턱에서 하얀 연기가 보입니다. 이건 바다 건너 멀리 삼천포의 화력발전소에서 나는 겁니다. 불 난 게 아니에요.

이제 하도의 하산길입니다. 사람들이 그래도 다니는 길이라 넓고, 그냥 문명의 세계에 온 느낌마저 듭니다. 좌측으로 상도가 펼쳐져 있습니다. 내려가야 할 사량대교가 보입니다.

분명히 내려가는 길이 조기에 나왔는데 이상하게 오르막이 있어서 데크 계단으로 올랐더니 하산길이 더 길어졌습니다.

길은 살짝 미끄럽고 정리는 안 되어 있고, 두 번 미끄러지고..;;

그나마 여기로 와서 하나 건진 게 리허설 중인 진달래와 상도의 한 컷입니다. 

어찌저찌 내려왔습니다.

대교를 지나 상도에 다다르니 시계는 1시 30분을 가리킵니다.

네, 하도에서 2시간 30분을 보냈습니다.

대교가 끝나는 지점에서 고동산을 오르느냐, 문명에 안겼다가 옥녀봉으로 오르느냐 기로입니다.

저는 배지를 따야 하므로, 도로를 따라 내려간 뒤 금평항에서 배지를 따고, CU에서 게토레이 한 병을 원샷 하고 사량도 파출소 샛길로 바로 고동산으로 가는 고개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금평항입니다.

게토레이를 한 병 비우고 바로 출발합니다. 하필 오늘 여기에 약국이 문을 열었네요. 이 사잇길이 대교에서 고동산 올라가는 고개로 진입하는 길입니다. 

오르면서 그냥 내려갈까 생각도 해 봅니다.

약수터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고, 일단 고동산 오르는 길은 맞습니다.

바닥은 이미 봄입니다. 쑥까지 보였습니다. 한 달만 지나면 여긴 초지에서 밀림이 될 듯합니다.

이 길로 하산할 때는 몰랐는데 역방향으로 오르다 알바를 했습니다. 바윗길이 가로막으면 우측, 그다음 바윗길은 좌측인데, 하여튼 알바했습니다... ㅠㅠ

통영이란 글귀를 섬의 모양으로 만든 비석입니다.

217m라 금방 오르기는 합니다. 근데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정상엔 데크 조망대와 벤치도 있습니다. 이 두 개는 꼭 봐야 할 뷰라 생각합니다.

고동산에서 지리산 방향 뷰

고동산에서 사량대교와 하도 뷰

사량도의 사는 뱀 사라서 상도와 하도 사이를 흐르는 물의 흐름이 뱀과 같다고 해서 지어졌다고 합니다.

저는 S자로 종주해서 뱀 모양으로 종주를 한 느낌이군요.

옥녀봉으로 향하는 고동산 하산길은 오히려 좋습니다.

유일하게 매화를 본 구간입니다.

아스팔트 길을 조금 걷다가 정자가 나오고 주차장에서 급격한 경사를 찍으면 옥녀봉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날이 좋아 망정이지 땡볕 여름이나 축축한 습기가 있으면 아찔해지는 곳입니다.

상도에서는 아이스크림 파는 분이 두 분 계십니다. 옥녀봉과 달바위, 지리산 사이 내리막 갈림길 구간입니다. 오늘은 두 분 다 안 계셨습니다.

아이스크림이 필요 없는 계절이기도 했습니다. 적당히 추웠으나, 반장갑을 낀 채로 등산해도 한기가 들지는 않았거든요.

출렁다리 두 개와 여러 암릉을 지납니다.

진행 방향 우측에 보이는 대항입니다. 비즈공예를 하는 듯 양식이 한창입니다.

멀어져 가는 이 돌삐들을 보면서 안도와 함께 비경을 즐겨봅니다.

저 계단 구조물이 없을 땐 도대체 어떻게 오른 것일까요?

가마봉(달마봉)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정말 둘이서 동시에 오르내리기 힘든 Y자 계곡과 같습니다. 이 와중에 우측으로 올라갈 때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과 부닥치면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에 욱하게 됩니다.

계속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종주는 끝이 나겠지요?

달바위(불모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위를 일부러 이렇게 만들라고 해도 못 만들겠습니다.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살아서 무사히 내려오겠다는 생각만 해서 살벌한 바위군락을 찍지 않았습니다.

도착했습니다. 건너편 화력 발전소가 부지런히 기염을 토합니다.

달바위는 사실 우회로로 가야 그 이름이 지어진 연유를 알 수 있습니다. 바위 아래에 상현인지 하현인지 달모양의 구멍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년 전엔 안개와 똥바람으로 갈 용기도 못 냈지만 결국 여길 통과하고 있습니다.

이제 대망의 지리산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2km 이상을 가야 합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봤던 하도의 거북이 머리가 보입니다. 

돈지항입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건지 물결이 저 상태로 수분째 멈춰 있었습니다. 게임의 그래픽 같았습니다.

두 번째 아이스크림 구간입니다. 여긴 막걸리와 안주도 팔았던 곳입니다. 지리산까지 오르는 길과 하산길을 피해 빤스런 할 수도 있는 마지막 찬스입니다.

하산지점 내지항이 보입니다.

오르막이 버겁긴 하지만 그럭저럭 결국 도착했습니다.

오늘 단 것인지 태극기가 달려 있습니다.

바위엔 인증 낙서가 있었네요.

안개로 곰탕이었던 뷰를 드디어 직접 확인합니다.

지리산 방향으로도 찍어봤습니다. 정면인지 정면에서 살짝 우측 방향에 보이는 희미한 자락이 지리산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잘 안 보이니 괜히 화력발전소에 심술이 납니다.

그냥 다시 돌아가서 아이스크림 갈림길에서 내지를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집으로 돈지 방향의 내지항 하산을 감행했는데... 오를 때도 참 무슨 이런 산이 다 있나 싶었는데 내려갈 때는 더 심했습니다.

깨알같이 왼쪽의 하도의 산 능선이 희한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가래떡 같기도 하고... 

하산하러 가는데 헬기가 지나갑니다.

돈지항을 다시 찍어봅니다.

남해군 방향입니다.

진짜 삐끗하면 굴러떨어질 듯한 암벽인데 무슨 여유인지 계속 뒤를 돌아봤습니다. 예전에 어떻게 올라갔나 싶어서...

돈지항 내려가는 길목에 떡하니 나무 하나가 서 있는 암봉이 유난히 인상 깊습니다. 이런 여유를 느낄 때가 아닌데...

하염 없이 돌 구간을 내려오며 중환자실로 보낸 산티아고 로우가 그립습니다. 5만 원짜리 네파 뽐뿌 등산화로는 여기는 오면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무사히 마쳤지만 체력 고갈로 더 이상의 사진이 없습니다. 

봄날의 사량도, 상도 코스로 가볍게 추천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