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개발공부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19

틈틈이 눈팅만 하거나 필요한 정보만 검색해서 보다가 처음으로 글 한번 써봅니다.

재밌지도 않지만 꽤나 긴 글입니다. 시간 여유되시는 분만 읽어주세요.

졸업 후 전공 살려서 활동하다가 금전사정 안좋아지면 몇달간 다른 일하다가 그만두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어영부영 29살이 되자 계속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과감하게 예체능을 포기했습니다.

10년 넘게 그 일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갑자기 사라지자 허전함을 채우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해외로 떠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혼자하는 여행을 좋아해서 새벽까지 술마시다가도 떠나고 싶으면 첫차타고 목적지 없이 돌아다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는데

막상 해외는 한번도 가본적이 없어서 막연하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몇날 며칠을 해외 이민관련해서만 알아봤는데 역시나 현실은 쉽지 않아 보이더군요.

그나마 요리사라는 직업이 취직하기 쉽고 비자 스폰해주겠다는 사람이 많아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쓸모는 없지만 없는거보단 낫겠다 싶어서 조리기능사 자격증 3개 따고 인천공항 인근 기내식 제조업체에 취직했습니다.

주5일 07-16시 근무 월급 160, 파견2년 이후 운좋으면 자체 계약직 전환가능, 또 2년 후 운 정말 좋으면 정규 전환

조건 자체도 최악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셔틀을 5시50분에 타야했고 퇴근하고 집에오면 5시가 넘었습니다. 

일도 정말 쉽지 않더군요. 요리라기보다는 큰 통에 식재료 몇백키로 때려붓고 소금 다시다넣고 삽으로 뒤적거리는게 하루 일과였죠.

그만두고 일식집에 취직했는데.. 주6일 12시간 세전 180, 연차나 대체휴무, 공휴일휴무, 수당 전무

심지어 첫주는 들어온지 얼마 안됐으니 그 하루마저 못쉬게 하더군요. 조리사의 룰이라나 뭐라나..

1달도 안돼서 사장이랑 참치 집어던지면서 거칠게 파이트하고 그만뒀습니다.

그 후 몇 달간은 인력소 통해 택배 상하차랑 컨테이너 하차일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렇게 돈을 모아서 2주간 유럽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현지인들의 생활을 보려고 노력하며 돌아다녔습니다.

마트나 시장에선 항상 물가를 확인했고 부동산 시세나 일자리별 임금도 알아보고 다녔습니다.

현지에서 생활하는 한인들도 만나서 얘기를 하다보니 현실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그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였습니다.

요리는 적합하지 못한 기술이었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이공계 학위를 따는것에 큰 무게를 두고 있었는데 현실상 쉽지 않더군요.

일단 편입은 가능성도 낮았고 성공한다 하더라도 공부할 분량을 맞출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금전적인 지원을 받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학업을 병행할 수 없겠다고 판단을 했었죠.

(그 당시 계획은 라보를 한대 사서 저녁이랑 주말에 퀵이랑 원룸이사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면서 경우의 수를 지워나가다보니 결국 남는게 별로 없더군요.

개발자에 관해서는 주변에서 보고 들은 부정적인 얘기들이 많아서 배제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지인이 컴공과 졸업 후 박사과정중이었는데

그 지인 얘기로는 컴공과 내에서도 정작 개발을 할줄 아는 사람은 10% 이내이며

그 10% 이내의 사람들은 과제나 졸작을 대신 해주고 받은 돈으로 생활한다는 얘기도 들었고

알바하면서 만났던 사장들 중에 이상하게 개발자 출신이 많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선택폭이 점점 좁아지면서 직업군별로 해외 취직 후기를 찾아봤는데

압도적으로 개발자 직종에서 해외에서 무사히 정착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개발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개발이라곤 초딩때 워드 자격증따고나서 거만해져서 비주얼베이직 책 샀다가 몇페이지 보고 냄비받침으로 쓴 경력 뿐인데..

그렇게 고민 끝에 방통대 편입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전공은 불어불문학과로 하되 컴퓨터 과학과 수업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방향이 정해지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일단 공부할 시간을 확보하고 주말엔 시험을 보기 위해 일반 기업에 취직했습니다.

주5일 빨간날 다 쉬고 근로기준법 준수하는 중소기업, 출근일 중 1/3은 야근하되 8시30분까지만, 식대 및 OT 포함 연봉 2600

입사하자마자 회사 바로 앞건물 오피스텔로 이사했습니다. 출퇴근 포함해서 2분 이내

월세는 55만원으로 비싼 편이지만 점심을 집에서 해결하니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휴대폰번호를 바꾸고 가족과 정말 친한 친구 제외하고는 연락을 끊었습니다.

남은 친구들도 2월 이후로는 한번도 안만났습니다.

술을 좋아해서 일주일에 4~5일은 마시는 편이었는데 

현재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금요일 저녁에만 숙취없을 만큼만 마십니다.

이렇게 살다보면 스트레스 풀 길이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할부로 100만원 초반대 로드를 질렀습니다. 

스트레스 받는 날에는 퇴근 후 두세시간 정도 타고 들어오는데 후회 안하는 선택 중 하나입니다.

방통대 수업은 프랑스어 3과목, 개발 3과목을 신청했습니다.

근데 문제가.. 시험 일정이 겹치지 않으려면 타과의 같은학년 수업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프랑스어와 컴퓨터 둘다 입문자였기 때문에 1학년 수업을 들었어야 했는데 그럴 수가 없는거죠.

프랑스어2학년 수업은 도저히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보여서 결국 개발을 2학년 수업으로 신청했습니다.

HTML, Visual C++, 이산수학

다행히 HTML은 기본 구조자체는 알고 있어서 나름대로 편하게 배우고 있는것 같습니다.

또 코드를 넣어보면서 바로바로 결과물을 볼 수 있으니 매우 편하더군요.

책에 나와있는 코드들 하나씩 적어보고 결과물보고 했더니 자연스레 외워져서 중간고사에서도 만점을 받았습니다.

근데 Visual C++은 참... C도 안배웠고 C++도 안배웠는데 Visual C++을 시작하니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더군요.

뭘 자꾸 선언을 하고 헤더파일은 왜 따로 있으며 프로시저가 콜백인데 운영체제를 통해서 뭘 받는다고는 하는데... 하아

이해 안되더라도 하다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싶어서 HTML처럼 무작정 받아쓰기 하듯이 써봤는데

괄호하나만 안써도 구현자체가 안되고 그놈의 지정자는 뭐길래 자꾸 찾을수가 없고

오류를 찾다 찾다 너무 갑갑해서 아예 새 프로젝트 열어서 다시하기도 하다보니 이제는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산수학은.. 음... 마치 밀당을 하는 느낌입니다.

처음 보면 난생 처음듣는 용어들로 가득해서 물음표 백만개 떴다가

막상 풀어 헤쳐놓으면 정말 쉬운 내용인것 같다가

다시 문제 풀다보면 내가 여태 뭘봤는지 모르겠고...

물론 이산수학 공부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이 글을 쓰고있는건 아닙니다.

갑자기 현실을 직시했네요.

전 다시 이산수학 공부하러 가보겠습니다.

모두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