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겨울

때는 고등학교 2학년 겨울.

고 2에서 고 3으로 올라가는 나는 각오가 남달랐다.

모범생 출신이였지만 ,

노는 부류에도 속하고 싶어했던 나에게도

수험생 타이틀은 다시 한번 공부를 시작해야겟다는 

생각을 갖게하기에는 충분했다.

그 무렵 성적이 점점 떨어져서 

읍내에 살던 나는 도보로 10분 걸리는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기숙사로 들어갔다.

기숙사에 들어가면 단체 생활에 갇혀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겠지 하는 마음에

부모님이 강제로 넣어주셨다.

배경은 각설하고 , 기숙사의 야간 일과를 설명하겠다.

학교 수업 끝나면 6시.

석식을 먹고 잠시 쉬다가 7시부터 2층 건물에 있던 독서실에서 밤 9시까지 자습을 했다.

보통 7시에서 8시까지 하고 10분 쉬었다가 9시까지 자습하는 2교시 형식이였다.

보통 기숙사생은 1층을 일반 학생들은 2층을 사용했다.

2층은 일반 학생 중에서도 3학년만 출입이 가능했다.

10년 전 쯤 2층의 비품실에서 여학생이 목을 메고 자살했다는 이야기는

기숙사생 전원이 알고 있엇지만 ,

이제 막 수험상애 되는 우리에게 그런 과거는 그저 먼 옛날의 공포이야기 정도로밖에 안느껴졌고

그저 먼 옛날의 확인 안 된 헛소문으로 여겼다.

3학년이 수능을 본 날 저녁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1층 자습실에서 자습을 시작했고,

난 늘 그렇듯이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모의고사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한참 집중을 해서 풀고 있는데,

갑자기 우당탕 소리가 들리면서 친구들이 밖으로 달려나갔다.

시간은 7시반 밖에 안됐었기 때문에

난 밖에 무슨 싸움이라도 나서 애들이 싸움 구경을 하러 나간줄 알았다.

물론 그 재미있는 구경을 나도 놓칠 순 없었다.

뒤늦게 나가보니 싸우는 애들은 없었고,

애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발을 동동 구르길래 한 친구를 붙잡고 물어봤다.

"야 , 뭐 때문에 이 난리야?"

"너 2층에서 소리 나는거 못들었어?

그그그극 하면서 의자 끌리는 소리?"

"오늘 수능날이라 3학년 없잖아?"

"그러니까 다 이러지 ,

뭐 있나봐 진짜"

주인없이 비어있는 2층에서 분명히 의자로 바닥을 긁는 소리가 5초정도 났다고 한다.

독서실 의자 다리 끝엔 소음 방지용 고무가 덧대어 본딩되어 있는데,

고무가 시멘트 바닥을 긁을 때 나는 그 

그그그극극

하는 소음을 아는 사람을 알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사감이 고 3들 단속하는데 

학생 주임이랑 같이 나가서 우리들 뿐이였다.

애들이 10분 넘도록 밖에서 떠들고 있기만 하고 들어갈 엄두를 못내길래

내가 호기롭게 나섰다.

평소에 딱히 겁내는 것도 없었고 바닥 긁히는 소리도 이어폰 덕분에 듣지 못했던 나였기에

다녀와서 애들한테 호들갑 떨지말라고 욕을 한바가지 퍼부어볼 요량으로 으스대며 총대를 맸다.

올라온 2층 자습실은 의자들이 어수선하긴 했다.

불도 켜지 않고 , 주황색의 가로등 불빛만으로도 식별이 가능했기에

첫 줄부터 삐져나와있는 의자들을 책상 안으로 집어넣어 대충 줄을 맞춰놓고는

다 집어넣은걸 확인하고 밖으로 나오면서 

계산한대로 애들한테 욕을 퍼부었다.

"아 사내놈들이 뭔 소리가 난다고 그러냐

가보니까 아무것도 없더만 !"

"와 저 XX 겁도없다.

불도 안키고 들어간거 실화냐?"

뭐 이런 종류의 반응에 내심 어깨를 으쓱으쓱하며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애들도 하나 둘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5분정도 시간이 흐른 후 나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그르르르르그그르르륵

끄르르르르극

끄르르를그극

시멘트 바닥에 고무 닳는 그 소리가 분명 천장을 뚫고 내 귀에 들어왔다.

동시에 친구들은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어나갔고,

나도 뒤늦게 나갔는데,

소리를 직접 듣고 나니 마음이 무거웠다.

불과몇분 전 큰소리를 쳤는데 또 확인하러는 못가겠다고 말할 수 없었으니까.

애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오들오들 떨고 있엇다.

사감 올 때까지 기숙사로 돌아가자는 놈도 있었고

그랬다가는 또 운동장 뺑뺑이를 돈다는 놈이 반대했고,

그렇게 우리끼리 난리법석 떠는걸 지켜보다가

"내가 다시 가볼게.

기다려."

이렇게 말을 뱉을 수 밖에 없었다.

마른 침을 삼키며 아까와는 달리 살금살금 2층 계단을 오르는데

눈 앞에는 헛것도 보이는 것 같고 

잠깐 잠깐씩 이유없이 소름이 돋는데 

다시 돌아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몇백번은 들었다.

자습실까지는 또 왜이리 먼건지 ..

문을 열고 불을 켰는데 하필 불도 안켜졌다.

다급한 마음은 그야말로 절망이였다.

그냥 그대로 돌아나왔어도 되는데 뭐에 홀린 듯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며 첫줄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아까 정리해둔대로 의자들은 다 들어가있었고

의자가 움직였던 흔적이 전혀 없음을 확인하며

마지막 줄에 다다랐을 때 ,

그리고 그것을 보았을 때,

온 몸의모든 털이 솟구쳐 솟아올랐고,

뒤로 돌아서 허겁지겁 문도 못닫고 내려왔다.

내가 본건 귀신도 아니였고,

동물도 사람도 아니였으며,

그저 아까 내가 집어넣어 둔 마지막 줄의 의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