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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3
분류: 한국사
이름: 달아달아밝은달아


등록일: 2022-01-09 18:56
조회수: 1585 / 추천수: 0





김유신 [金庾信, 595~673]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장군. 소정방이 이끈 당나라 군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당나라 군과 함께 고구려 정벌에 나서 여러 번 실패했으나 결국 성공하였다. 이후, 당나라 군사를 축출하는 데 힘써 한강 이북의 고구려 땅을 수복해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져 놓았다.

 

본관 김해(金海)이다. 아버지는 소판(蘇判)·대량주도독(大梁州都督)을 역임한 서현(舒玄), 어머니는 숙흘종(肅訖宗:葛文王 立宗의 아들)의 딸 만명(萬明). 본래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12대손이다. 증조부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해왕(仇亥王:仇衡王이라고도 함)이었고 조부는 신주도 행군총관(新州道行軍摠管)을 지낸 명장 김무력(金武力)이었다. 김유신은 609년(진평왕 31) 화랑이 되어 용화향도(龍華香徒)라 불린 낭도(郎徒)를 이끌고 화랑정신을 길렀고, 611년과 이듬해 중악(中嶽)과 인박산(咽薄山)에서 삼국통일을 기원(祈願)하고 무술을 닦은 뒤 국선(國仙)이 되었다.

629년(진평왕 51) 8월 이찬(伊湌) 임영리(任永里) 등이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공격할 때 중당(中幢)의 당주(幢主)로서 출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때 적군의 역습을 받은 아군의 사기가 떨어져 싸움이 불리해지자 아버지 소판 서현에게 "제가 벼리와 옷깃이 되겠습니다" 하고 홀로 적진으로 돌진하여 적장의 머리를 베어 옴으로써 승리의 기틀을 잡아 대승을 거두게 하였다. 642년(선덕여왕 11)압량주(押梁州:지금의 慶山) 군주(軍主)가 되었고, 644년 소판 벼슬에 올랐다. 같은 해 9월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백제의 가혜성(加兮城) 등 7개 성을 쳐 이기고 이듬해 1월에 개선하였다.

그런데 왕을 알현하기도 전에 매리포성(買利浦城:居昌)이 백제군의 맹공을 받고 있다는 파발에 곧장 상주(上州:尙州) 장군이 되어 출전, 요격하여 크게 무찔렀다. 647년(진덕여왕 1) 1월 여왕을 폐하려고 난을 일으킨 귀족회의의 수뇌인 상대등(上大等)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의 반군을 토벌하였고, 10월 무산(茂山:무주) 등 3개 성을 공격해 온 백제군을 보병·기병 1만으로써 크게 격파하였다. 이듬해 압량주 군주로서 전날 백제에게 빼앗긴 대량성(大梁城:합천)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이어서 악성(嶽城) 등 12개 성을 빼앗았으며, 그 공으로 이찬 벼슬로 승진하고 상주행군대총관(上州行軍大摠管)이 되었다.

649년 8월에는 석토성(石吐城) 등 7개 성을 공격해 온 백제의 장군 좌평(佐平) 은상(殷相)을 무찔렀다. 654년 3월 진덕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재상으로 있던 이찬 알천(閼川)과 의논하여 이찬 김춘추(金春秋:太宗武烈王)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이듬해 9월 백제의 도비천성(刀比川城:忠北 永同郡의 飛鳳山城)을 공략하였으며, 이때 백제왕의 문란한 정치를 보고 백제를 멸할 것을 왕에게 건의하였다. 660년(태종무열왕 7) 1월 상대등에 올랐고, 7월 신라 정예군 5만과 소정방(蘇定方)이 이끈 당나라군 13만이 연합하여 사비성(泗沘城)을 함락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661년(문무왕 1) 7월 나당 연합군과 함께 고구려를 정벌하러 가는 도중인 9월 옹산성(瓮山城:대전시 鷄足山城)에 있는 백제의 잔적(殘賊)을 토벌하고, 12월 당나라군의 군량미를 실어다 주었으나 당나라군의 철수로 고구려 정벌은 실패로 돌아갔다. 663년 8월 백제의 부흥군(復興軍)을 두솔성(豆率城:周留城)에서 대파하였고, 665년 당나라 고종으로부터 봉상정경평양군개국공(奉常正卿平壤郡開國公)에 봉해졌다.

667년(문무왕 7) 왕을 따라 당나라군과 함께 고구려 정벌에 나섰으나 실패하고 11월 환군하였다. 이듬해 9월 나당 연합군으로 평양을 칠 때 연합군 대총관이 되었으나 왕명으로 금성에 남아 국방을 도맡았다. 고구려 정벌 직후 태대각간(太大角干:太大舒發翰)의 최고직위에 오른 후 당나라 군사를 축출하는 데 힘써 한강 이북의 고구려 땅을 수복함으로써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져 놓았다. 673년(문무왕 13) 7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금산원(金山原:경주시)에 장사지냈고, 835년(흥덕왕10) 흥무대왕(興武大王)에 추존되고 경주 서악서원(西嶽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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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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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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