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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는 한반도에 있었다. 그럼 지금 설명 안되는 많은 기록이 설명이 됩니다
분류: 한국사
이름: 한팩트


등록일: 2020-09-27 15:28
조회수: 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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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세세한 연도차이나 오류는 있지만 대략 이런 추세로 왜가 열도로 밀려난거라고 생각 됩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열도의 왜가 한반도 남부를 침략, 지배한것이 아닌 한반도 왜가 주로 신라와 백제등과 한반도 남부에서 패권을 다투다가 결국 밀려난 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 민족의 주류라는 부여계는 먼 북만주 바이칼호에서 출발 남하하면서 남만주의 부여와 고구려, 그리고 한반도 남부의 백제로 계속 남하하면서 새로운 터전을 찾아 자리를 잡아 왔듯이

 

처음 한반도 남부에 있던 왜는 북방에서 내려온 백제나 신라와 대결하면서 점차 한반도 남부에서 버티기 힘들어 점차 일본 열도로 이주해 갔고 한반도 남부에선 결국 완전 축출되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리고 동이전의 기록도 보면, 과연 왜의 언제적(1세기 왜냐 3세기 왜냐 5세기 왜냐) 왜를 기록한 건지 애매할 뿐 아니라 대충 전시대를 두루뭉실하게 왜의 판도를 설명한 것이라 보면 됩니다. 그렇다 보니 마한의 남쪽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고 하다가 대마도 남쪽으로 몇천리다 그런 기록이 뒤섞이게 된거죠.

 

ebs 에서 방송했던 한반도에 왜가 있었다 라는 방송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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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 영산강 유역의 옹관묘는 일본열도의 옹관묘와 연관성이 가장 깊고 (식민지 시절 일본측 학자가 발굴 했을 때 이건 왜인의 무덤이다 라고 기록) 

 

영산강 반남면 옹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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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요이시대 최대유적이라는 요시노가리 유적의 옹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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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특정 유전형이 영산강 유역과 북규슈에서만 집중적으로 나오는 것도 이 두지역의 연관성을 말해주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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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삼국사기에 왜에 기근이 들었다고 수천명이 신라국경에 온다거나 수시로 왜인, 왜병과 신라가 대치하고 전쟁하는 것만 보더라도 수천리 바닷길을 헤치고 올 수 없는, 신라와 근거리에 왜가 있었다는 많은 증거가 남아 있는데, 이를 열도의 왜로는 설명이 힘들었는데 한반도 왜를 가정하면, 모든 기록과 유물이 다 설명이 되어  버리는거죠. 

 

"마한은 반도의 서쪽 54나라로 북쪽은 낙랑군과 경계, 남쪽은 왜와 붙어 있다" 변진은 동쪽 12나라이며  남쪽은 왜와 경계"

 

 

개략적으로 추정한 한반도 왜의 시대별 판도를 그려본다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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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나라 영역에 부여계로 보이는 라마동 고분, 이 라마동 고분과 금관가야 고분의 유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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