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역사포럼 입니다.

저는 1960년대생입니다. 50대이지요.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해서 10대를 꽉 채울 때까지 

대통령은 오로지 박정희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국민학교 3, 4학년 무렵인 열살 전후에 저는 심한 불면증을 앓았습니다.

새벽 3시까지 잠을 못 잤습니다. 잠을 자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으니까요.

깜깜한 방에, 창호지 바른 창문으로는 남산에서 쏘아대는 

야간경고등 불빛이 360도로 회전하면서 왔다갔다 했습니다. 

잠만 자면 전쟁이 일어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청계고가가 무너지고 거리는 폭격을 당해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부모를 잃고 울부짖었고, 사람들은 우왕좌왕 거리를 헤맸습니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나는 꿈속에서 늘 전쟁을 체험했습니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알았습니다. 그것이 반공 교육의 휴유증이었음을.

국민학교 복도 한 쪽을 일년 내내 장악했던 끔찍한 반공 포스터들.

그 포스터들 가운데는 어린 학생들이 고사리같은 손으로 그려낸 것들도 있었습니다.

붉은 피와 늑대로 묘사된 공산당, 근육이 도드라진 팔뚝, 총과 대포....

어린 학생들이 어찌 그리 포악한 그림들을 그려낼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의아할 정도입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했다가 혀를 잘린 이승복 어린이의 사례가 

어린 나에게 너무나 무서웠던 겁니다.

밤마다 전쟁 꿈을 꿀 수밖에 없는, 국가가 조장한 공포 마케팅 환경 속에서

살아야 했던 겁니다.

최근에 <실미도의 '아이히만'들>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참 끔찍하면서도 눈을 크게 뜨고 읽어야 할 내용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긴 표지의 책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실미도 사건은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김신조 사건 이후 북한을 응징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북파 특수임무부대입니다.

실미도 훈련병들은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 신분이었구요.

국가가 약속한 이들에 대한 대우는 거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3년 4개월간 살인적인 훈련을 받던 중 31명 가운데 7명이 사망했습니다. 

생존한 훈련병 24명은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실미도를 탈출하여

청와대로 가던 중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군대와 대치했지요.

일부는 그 자리에서 자폭했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재판을 거쳐

사형을 당했는데, 그 유해는 아직도 가족들에게 인도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연실색할 노릇이지요. 더구나 이들 가운데는 깡패나 사형수, 전과자가 아닌

평범한 시골 청년들, 곡예사, 요리사 등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왜 그토록 비참하게 삶을 마감해야 했는지 누구도

아직 그 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작가인 안김정애 선생님은 묻습니다. "당신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다시 반공 교육과 공포 마케팅으로 돌아갑니다.

안김정애 선생님은 증오와 혐오. 자별의식의 원천을 공포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인간의 존엄성을 굳게 믿고 실천하는 건강한 공동체 의식의 구축이라고 보았습니다.

공포의 극복, 인간이 존엄한 존재임을 굳게 믿고 실천하는 길...

솔직히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문장만은 내내 가슴 속에 심어두렵니다.

나 스스로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