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온 세상이 하얗다]를 보고(스포)

김지석 감독이 연출한 <온 세상이 하얗다>는 알콜성 치매를 앓고 있는 남자와 습과적으로 거짓말을 일삼는 여자의 자살(?)로드 무비입니다.

자살을 시도하려고 철물점에서 목매달 밧줄을 사지만 술을 먹고 깨어나면 자신이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리는 심각한 알코성 치매를 앓고 있는 김모인(강길우)는 동네 슈퍼마켓에서 혼자 술을 먹다 집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우연하게 그의 앞에는 슈퍼에서 술을 사가지고 나오는 류화림(박가영)이 있습니다. 그녀는 대뜸 모인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하고 모인은 집으로 가는 길에 괜한 오해를 받고 화림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받습니다.

그런데 둘은 길을 걷다가 떨어져 있는 오만 원을 줍고 그 돈으로 함께 술을 마시게 됩니다. 그렇게 3일 동안 모인의 집에서 딴짓(?)은 하지 않은 체 술만 먹는 둘. 모인에게 불청객이 찾아오고 화림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녀 앞에 그녀를 스토킹하는 남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간신히 남자를 뿌리치고 다시 모인의 집으로 돌아간 화림은 모인의 부모가 남기고 간 태백의 집을 팔기위해 함께 떠납니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

아주 심각한 '자살'이라는 키워드가 메인 모티브가 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처음 받은 인상은 밝고 유쾌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각 캐릭터가 안고 있는 내부적인 문제가 있긴 하지만 둘이 함께 있을 땐 그 문제가 사라집니다. 이는 습관적으로 거짓말하는 화림의 캐릭터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이는 받아들이는 모인의 캐릭터의 특징인 알코성 치매가 더불어져 그 효과가 나타난 결과이기도 합니다.

1부 모인의 집 , 2부 태백(으로 가는길)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은 긴 롱테이크 장면이 꽤나 있는 편인데 태백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나누는 둘의 대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별'에 대한 이야기나 특히 중국과 티베트를 언급하는 화림의 매력이 폭발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이어지는 어떤 목적을 위한 산행은 같은 목적의 또 다른 사람을 만남으로써 주인공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예측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다른 인물의 등장이 거의 없이 모인, 화림 두 캐릭터가 영화 전체를 이끄는 작품입니다. 강길우 배우의 경우 작년에 개봉했던 <정말 먼 곳>에서 보여줬던 인상적인 연기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고 박가영 배우의 경우, 이번엔 처음 접했는데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배우였습니다. 촬영을 하다가 회차가 진행될수록 목이 쉬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것이 캐릭터와 잘 받아 떨어지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무거운 소재의 무겁지 않은 톤의 작품이라 좀 더 신선했던 <온 세상이 하얗다>는 영화의 제목처럼 눈 덮인 태백과 그 겨울을 영상으로 충분히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속 두 캐릭터가 어떤 선택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선택이 자신의 행복으로 이어졌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