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킴 트리에 감독이 연출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한 여성이 두 남자와 벌이는 이야기이자 트리에 감독의 오슬로 트릴로지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의대를 다니던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는 문득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생각하며 학업을 중단합니다. 그리고 서점에 취직해 사서로 일합니다. 그러던 와중 파티에서 유명 만화가인 악셀을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집니다. 둘의 나이는 15살이나 차이가 나죠. 율리에는 29살, 악셀 44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무리 없는 연애 생활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악셀의 친구 커플들과 함께한 여행에서 율리에는 세대 차에서 나오는 생각과 시점에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율리에의 가족 간의 만남에서도 율리에의 아버지의 태도 때문에 악셀은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요.

악셀의 신작 발표회에 동행한 율리에는 지루함 때문에 그 곳을 나와 인근에서 치러지는 결혼식에 그냥 들어가 버립니다. 여기서 혼자 참석한 남자인 에이빈드에게 한 눈에 반하게 되지만 둘은 각자 연인이 있기 때문에 바람을 피지 말자고 다짐하며 아쉽게 헤어집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에이빈드가 자신의 연인과 율리에가 일하는 서점에 우연히 들리게 되고 에이빈드는 연인 몰래 율리에와 약속을 잡습니다. 그리고 둘은 불같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율리에는 악셀에게 이별을 고하고 에이빈드와 함께 살게 됩니다.

<라우더 댄 밤즈><델마>를 연출했던 노르웨이의 감독, 요아킴 트리에의 신작입니다. <오슬로, 8월 31일><델마>로 이어지는 오슬로 3부작 중 마지막인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독특한 구성의 작품입니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한 줄의 자막이 뜹니다. '프롤로그, 12개의 챕터 그리고 에필로그로 이 영화는 구성되어 있다' 라고요. 챕터마다 소제목이 붙는데 그것은 그 챕터의 키워드나 주제가 됩니다. 다른 독특한 점은 내레이션의 사용과 랜덤으로 변하는 시점들에 있습니다. 내레이션은 주인공이나 전지적 작가의 시점으로 진행되고 또 어떨 땐 등장인물과 내레이션 목소리가 겹쳐 들리기도 합니다. <델마>에서 보여줬던 독특했던 구성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그야말로 제목에 딱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불꽃같은 사랑의 시작과 함께 점점 더 시간이 지날수록 최악이 되어가는 커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율리에를 중심으로 두 남성과는 연애가 보이는데 항상 마지막은 최악으로 진행됩니다. 그 이유 중 핵심은 율리에가 느끼는 정체성의 공허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만화가가 연인이어서 어딜 가도 악셀에게 집중되는 상황에 율리에는 항상 자신이 조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에이빈드와의 연애에선 원치 않던 상황이 발생하면서 율리에는 혼란에 빠집니다.

세 주연 배우의 연기가 너무 좋은 작품입니다. 특히나 율리에를 연기하는 레나테 레인스베의 연기와 캐릭터가 정말 훌륭합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엄청 많지만 율리에와 같은 캐릭터는 거의 본적이 없을 정도로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연기한 레나테 레인스베의 간혹 보이는 행복함에 겨운 미소와 그와는 반대에 상황에서 보이는 분노는 캐릭터를 완전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작년 깐느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만한 연기였습니다.

유럽영화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요아킴 트리에 신작인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현재까지 나온 트리에의 작품 중 최고작이 아닌가 싶습니다. 멜로드라마로서 이렇게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꽤나 오래되었고 캐릭터 하나하나가 모두 잘 살아있는 작품이었습니다. 할리우드로 넘어가더라도 본인의 색깔을 꾸준히 지켜나가면서 작품을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