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녹색광선]을 보고(약스포)

에릭 로메르 감독이 연출한 1986년 작 <녹색광선>은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이자 에릭 로메르의 대표작이기도 합니다.

파리에서 살고 있는 델핀은 여름 휴가철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휴양지로 떠납니다. 하지만 이내 다시 파리로 돌아온 델핀은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를 통해 노르망디에 있는 집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게 됩니다.

노르망디에 도착한 델핀은 해수욕장에서 우연히 만난 스웨덴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합니다. 하지만 이 여성들에게 접근한 남성들로 인해 델핀은 또 다시 그 자리를 박차고 파리로 돌아가려 합니다.

파리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대합실에 있는 델핀의 눈에 잘생긴 남자가 나타나 그녀에게 말을 겁니다. 그리고 그 동안 그녀에게 접근한 남자에게 철벽을 치던 델핀은 함께 바닷가로 향합니다. 델핀은 지인에게 '녹색'이 그녀에게 행운을 줄거라는 것을 떠올리며 낙조 될 때 수평선을 바라봅니다.

<녹색 광선>은 큰 사건과 갈등이 있는 작품이라기보다는 델핀이라는 여성을 통한 다층적인 심리를 보여주는 캐릭터 무비입니다. 20여년 만에 다시 본 이 작품 속의 델핀은 참고 봐주기엔 좀 짜증(?)스러운 인물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이러한 상황에 처할 수 있고 현대질병 중 하나인 우울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기도 합니다. 타인과 섞이기도 힘들고 자신의 행복이 미적인 것에 대한 지독한 추구와 더불어 자연현상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유럽은 특히 여름휴가가 길고 이 휴가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굉장히 많습니다. ㅇㅇㅇ의 여름 등의 작명으로 굉장히 많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최근 들어 가장 유명한 작품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될 것 같네요. 그 만큼 유럽인들에겐 이 시간적 배경이 중요하고 일을 떠나 재충전의 시간이 됩니다. 일에 쫓겨 자신을 돌아보기 힘든 순간 휴가가 시작되면 드디어 스스로가 어떤 것을 갈망하고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 시간 자체를 유희로 보내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요.

영화 속에서 노인들의 대화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이 모습을 델핀은 몰래 엿 듣고요. 그 대화는 쥘 베른의 소설 <녹색광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동명 소설이기도 한데요. 특히 델핀의 경우, 자신에게 녹색이라는 색깔이 중요한 의미로 느껴진 이후에 듣는 이야기라 그녀에겐 굉장히 중요한 변곡점이 되기도 합니다.

프랑스 남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휴양지의 아름다운 모습도 볼 수 있지만 한 캐릭터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깊게 관찰하고 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