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여든을 바라보는 어느 노(老) 감독의 영화 한 편이 차갑지만 따뜻하게 슬프지만 유쾌하게 화가 나지만 감동적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늘 정의가 짓밟히는 것에 대한 그 고통의 외침을 들려주었던 정지영 감독.

이젠 그의 나이는 세월을 따라 저만치 흘러가고 있지만 그의 작품은 오히려 더욱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다. 

영화 '소년들' 은 이제는 여러 경로를 통해 전 국민이 거의 들어봤을 1999년 전북 완주에서 벌어졌던 삼례나라슈퍼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당시 경찰과 검찰이 죄 없는 3명의 청년을 범인으로 뒤집어 씌워 억울하게 옥살이를 시키고 사회에서도 살인자로 낙인찍히게 만든 사건 속 또 다른 사건이다. 이 영화 같은 실화 속 울분을 풀어줄 해결사로 감독이 택한 배우는 가상의 캐릭터 황준철이란 형사반장 역으로 분한 설경구다.

어쩌면 설경구를 캐스팅 한 것이 아니라 강철중을 캐스팅 했다고 싶을 만큼 그 옛날 소위 설경구가 날아다니던 시절 공공의 적에서 보여줬던 강철중 형사의 시퀄 같은 모습이 펼쳐진다. 그래서일까 보는 내내 설경구의 전성기를 보는 듯 그의 연기에서 에너지가 넘쳐난다. 돈키호테처럼 오로지 직진만 하며 불의와 맞서는 그의 모습은 강철중이었고 현실에 부딪혀 고뇌하는 모습은 박하사탕의 김영호였다. 최근 설경구의 영화 중 가장 작품에 잘 녹아든 모습 같았다. 정지영 감독의 강철중 소환은 마치 치트키를 누른 것처럼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 외에도 블랙머니에서 함께한 조진웅, 허성태를 비롯해 유준상,염혜란, 진경 등 화려한 캐스팅만큼 빛나는 연기들로 꽉 채워져있다.

영화 소년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된다. 자칫 잦은 플래시백이 영화의 흐름을 방해할 만도 하지만 이 영화에선 오히려 리드미컬하다. 어찌 보면 정지영 감독의 영화치곤 좀 더 상업영화스럽다고까지 느껴졌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동안 영화는 관객에게 철옹성 같은 권력의 부조리를 켜켜이 쌓아 보여준다. 영화 시사회를 보러 온 몇몇 관객들의 탄식이 그것을 반증했다. 그 탄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대한 감독의 메타포를 읽어낸 관객들의 탄식이 아니었을까? 

언제부턴가 정지영 표 영화는 흥행에 목표를 둔 것보다 권력에 무기력해지는 소시민을 대변하는 역할을 자처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시사회를 보고 나서 느낀 점은 이번엔 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한국 영화시장 최악의 암흑기에 최고령 감독이 구원투수가 될 것 같은 예감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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