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논의를 오해할 경우 이런 식의 질문을 할 수도 있다. 그럼 관계가 규칙보다 우선하는가? 그렇다면 좋아하는 사람, 내 친구, 내 가족을 위한다면 규칙을 깨도 옳은 것인가?
간단히 말해 “세상 모두가 널 욕해도 난 널 믿는다.”, 혹은 “널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는 식의 가치관은 옳은 것인가? 극단적으로는 영화 ‘마더’의 어머니처럼 말이다.
-더 마더
당연히 극단적인 경우만을 언급하면 대다수가 옳지 않다고 할 것이나 그마저도,
“옳지는 않지만 이해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좀 더 유화적으로 물으면 아마 그렇다는 비율이 높아질 것이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라는 말을 덧붙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어머니를 동정하고, 동시에 부러워한다. 사랑에 목마른 인간의 속성상 짙은 사랑에 대한 동경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말로 그 어머니를 동정하는 걸까?
그 어머니를 동정하지 않는다. 그 사랑을 동정한다. 해서 실상은 사랑이 벌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신이 소망하는 것이 부서지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리만족이 되지 못하고 대리좌절이 되는 게 안타까운 것이다.
허나 사랑이 아니었다는 걸 알아야한다. 애초에 사랑도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부러워한다. 정말 그 어머니를 동정한다면, 아무 것도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을 동정해야 한다.
집착은 일방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집착은 상호적인 관계가 아니다. 하나에 집착하느라 아무 것도 사랑하지 못한, 혹은 아무 것도 사랑하지 못해서 하나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사람을 동정해야 하고 그런 교류밖에 주고받지 못한 그 주위 사람들을 동정해야 한다. 내 욕망이 투영돼 사랑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집착이 아니라…
그럴 때 비로소 이해한다고 할 수 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라는 말은 이렇게 이해할 때야 비로소 제 격을 찾는다. 이럴 때 그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게 설득력을 갖는다. 해서 이 말은 이른바 ‘나쁜 놈’은 물론이고 ‘좋은 놈’에게도 통용된다.
나쁜 놈이라고 나쁜 짓만 하고 살지는 않고, 좋은 놈이라고 옳은 일만 하고 살지 않기 때문이다. 연쇄살인마도 그러하고 성인군자도 그러하다. 나쁘다고 믿으니 나쁜 놈이 되고, 옳다고 믿으니 옳은 놈이 되는 건 곤란한 일이다. 말이 나쁘고 옳은 것이며 행동이 나쁘고 옳은 것이다. -믿음
믿으면 편하다. 효율적이다. 지고지순한 믿음은 옛부터 존경받는 가치였으며 현대에 들어선 사회자본이란 웃기는 타이틀도 덤으로 얻었으니 말이다. 허나 그건 앞서 왜곡된 모성애처럼, 믿음의 탈을 쓴 집착이다.
편하자고 믿는 건 곤란하다. 믿는다는 건 믿지않는 것만큼의 어려움을 수반할 때 가치가 있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이의 말을 믿는 건 쉽고 편한 일이다. 연쇄살인마의 말을 믿지않는 것 또한 쉽고 편하다.
어렵게 믿어야 하고 어렵게 믿지않아야 한다. 그렇게 믿어야 옳은 게 비로소 뭔지 알며 맹목이 신념으로 둔갑하지 않는다. 잘못을 인정할 줄 알며 책임을 떠넘기지 않는다. 믿음이 무너졌을 때 공황에 빠지지 않고 차분히 고민하며 새 길을 찾을 줄 알게된다.
그렇게 자유로운 사람이 된다. 진정 인류가 발전해가는 것이라면 그렇게 자유로우면서도 사회성이 무너지지 않는 식이어야하지 않겠는가. 그걸 우리는 어른이라고도 한다.
타인의 믿음에 구속되지 말자.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해서 내팽개치거나 반대로 맹신하지 말고 일단 유보하되 이해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이해를 하고 나의 것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버려도, 지켜도, 자유로워진다. 믿음에 구속되지 않는다. 내 몫이기 때문이다. 내 몫을 감당할 줄 알아야 한다.
다시 처음으로 가보자.
관계가 규칙보다 우선하는가? 그렇다면 좋아하는 사람, 내 친구, 내 가족을 위한다면 규칙을 깨도 옳은 것인가?
간단히 말해 “세상 모두가 널 욕해도 난 널 믿는다.”, 혹은 “널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는 식의 가치관은 옳은 것인가? 일단 종교가 된 규칙은 깨는 것이 옳다. 맹신을 강요하는 규칙은 깨져야만 한다. 게으른 믿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옳아야만 하기에 옳은 것이 되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런 규칙은 상당히 폭력적이며 일방적이다.
옳기 때문에 옳은 것어야 한다. 어렵게 믿은 규칙이어야 한다. 그럴 때 “옳은 것은 어떻게 해도 옳다.”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그럴 때야 비로소 누군가 “옳지않다, 틀렸다.” 라고 할 때 대화가 가능해진다. 그럼 옳은 규칙을 깨는 것도 ‘내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옳은 것인가?
옳지 않다.
규칙을 깨뜨려서 누구에게도 피해가 없다면 상관없지만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무고한 이에게 피해가 간다면 옳지 않다.
내 사람, 내 자식, 내 부모, 내 조국을 위해 행했기에 옳다고 해버리는 건 비겁한 합리화일 뿐이다. 잊으려고 해서도 안 되며, 되려 옳지 않은 일을 했다는 걸 부지런히 기억하려 애써야 한다. 자신이 행한 옳지 않은 일을 잊는 것, 그에 더해 옳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야 말로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나쁜 일을 옳은 일로 포장하지도 않고, ‘너’를 위한 희생이었다는 합리화나 원망없이 잘못을 오롯이 떠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용서가 존재할 수 있다. 용서가 필요없는 사회란 얼마나 엄혹한가.
옳은 것은 어떻게 해도 옳다.
그러기에 귀를 막지 않는다. 도망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윽박지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내가 틀려도 옳은 것은 옳다.
틀리는 것에 집착하지 않을 때 대화가 가능해진다. 진실이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 
등록안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