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가랜드 감독이 연출한 <멘>은 한 여성이 영국의 한 작은 마을에서 며칠 간 머물다가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남편을 잃은 후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시골 마을로 내려온 하퍼(제시 버클리)는 집주인 제프리(로리 키니어)의 안내로 2주 동안 살기로 한 집을 안내받습니다. 자신의 맘에 딱 드는 집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 하퍼는 집 인근을 산책하다가 더 이상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터널로 들어가게 됩니다. 거기서 소리를 치자 메아리로 그 소리가 돌아오는 것을 신기해하던 와중 건너편 입구에서 누군가가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하퍼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녀를 쫓아온 남자는 나체 상태로 그녀의 숙소를 기웃거리다가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하나 먹더니 대문의 편지함에 손을 집어넣는 듯 위협 아닌 위협을 가합니다. 놀란 하퍼는 경찰에 신고하고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인지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 다투던 기억이 스멀스멀 다시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남편 제임스에게 이혼을 통보한 하퍼는 평소에도 폭력을 가해보였던 제임스가 무섭다는 내용의 문자를 친구에게 보내던 와중 이 문자를 제임스에게 들키게 되고 분을 참지 못한 제임스는 하퍼에게 주먹을 날립니다. 하퍼는 제임스의 폭행에 이혼을 원치 않았던 그의 의견이 더 이상 가치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집 밖으로 그를 쫓아내면서 더 이상 얼굴을 보지 말자 합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제임스는 끔찍한 결말을 겪고 맙니다.

하퍼는 나체 남자가 다시 경찰서에서 풀려났다는 소식을 듣고 공포에 떨면서 숙소로 돌아옵니다. 혼자 2주를 지내려고 했던 하퍼는 4시간 거리에 있는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마을로 와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 하퍼는 환영인지 실제인지 모를 남자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며칠 간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던 남자들이 한 명씩 나타나게 되는데 다행히 제프리가 숙소로 오면서 이 위기를 벗어난 듯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전개가 이어집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가 있습니다. 하퍼와 목사가 나누는 대화입니다. 하퍼가 교회에서 자신의 울분을 삼키고 교회 앞에 앉아있는데 목사가 다가와 하퍼의 남편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목사는 남편의 폭행을 비난하기 보다는 하퍼에게 남편이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을 줬느냐고 물어봅니다. 팩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퍼는 이런 사실 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심정적으로 극단에 놓인 그녀는 목사의 이 말이 폐부를 찌르지만 스스로가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관객들도 아마 이 장면에서 혼란을 있을 듯 합니다. 목사의 말이 사실이지만 하퍼의 입장에 놓인 어떤 누구라도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목사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이 영화의 백미는 역시나 마지막 10분입니다. 영화 역사상 이런 이미지의 향연은 없을 듯 합니다. 굳이 그 이미지를 묘사하기 보다는 자신의 눈으로 보는 편이 좋을 듯 합니다. 하지만 비위가 약한 분들은 아마 두 눈으로 이 장면을 보긴 힘들 것 같네요. 왜 이 영화의 제목이 <men>일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장면이 제 눈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시 재회하는 두 인물의 대사에서도 관객들은 어느 편에 서야 할지 혼돈이 올 것 같기도 하네요.

전작 <엑스 마키나>를 통해 널리 알려진 알렉스 가렌드 감독의 신작입니다. 굳이 전작과 비교해 손을 들어주자면 개인적으론 <엑스 마키나>가 아직 맘에 더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너무 현학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거라 약간의 거부감이 없지 않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영화적 이미지라는 측면에선 한 번 볼 만한 작품임엔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