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버호벤 감독이 연출한 <베네데타>는 17세기 수녀원을 배경으로 한 여성의 히스테릭한 집착과 더불어 한 소녀와의 사랑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독실한 부모와 자신의 뜻으로 수녀원에 들어온 베네데타(비르지니 에피라)는 입소 날부터 우연에 의한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성인이 된 베네데타 앞에 바톨로메아(다프네 파타키아)라는 소녀가 수녀원 안으로 도망치듯 들어옵니다. 그녀 뒤에 아버지 양떼를 이끌고 있고요. 폭력과 강간을 일삼는 아버지를 피해 수녀원으로 들어온 그녀를 베네데타와 그녀의 부모가 지참금을 주고 품습니다.

베네데타는 바톨로메아가 수녀원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네데타는 잠을 자면서 예수를 만나게 되고 심지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그리고 실제로 깨어나니 그녀의 손과 발엔 못 자국과 함께 피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교회는 이를 보고 예수가 베네데타의 몸을 빌어 이곳으로 왔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월계관 자국이 없다는 이유로 원장 수녀(샬롯 램플링)는 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베네데타 이마에 상처 자국이 보이고 마치 누군가에 빙의한 것처럼 굵은 목소리를 내며 원장 수녀를 꾸짖습니다. 그렇게 이를 인정한 교회와 신부는 베네데타를 원장 수녀로 위촉하게 됩니다.

영화 홍보에선 17세기 레즈비언 커플이라는 데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만 그 보다도 베네데타가 원장 수녀에 오르는 과정과 이를 지키기 위한 과정이 더욱 더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시대와 그 배경이 되는 곳을 염두해둔다면 베네데타와 바톨로메아의 관계는 상당히 자극적입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의 수위도 꽤 세고요. 이런 소재의 연출은 폴 버호벤이 전작들에서 잘 보여줬기 때문에 이번에도 꽤 긴장감 있는 연출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쇼걸>과 함께 봐도 흥미로운 작품일 것 같습니다. 계급상승과 권력에 대한 욕망을 탐하는 여성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 그러한데 결론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그리고 베네데타의 이야기는 실화이기도 하고요.

비르지니 에피라의 엄청난 연기가 빛을 발하는 작품입니다. 혼란스러운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했고 신인급인 다프네 파타키아와의 케미스트리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바로 원장 수녀 역을 맡은 샬롯 램플링이었습니다. 영화 전체의 중심을 잡아줌과 동시에 후반부에 터지는 폭발력은 여전했습니다.

80살이 넘은 노장 감독이 할리우드를 등지고 고향으로 돌아가 만든 작품들이 모두 다 좋고 청년의 에너지까지 품어내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엘르>때도 그러했지만 <베네데타>도 그에 못지않은 아니 그 보다 더한 에너지를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