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이끄는 마틴 그룬버그 의장이 조직 내 만연한 성희롱, 직장 괴롭힘 문제에 책임을 지고 결국 자리에서 물러난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현지시간) 그룬버그 의장이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그는 "2005년8월부터 FDIC에서 일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면서 "최근 상황을 고려해 후임자가 확정되면 물러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어 후임 선임 전까지 "FDIC의 직장 문화 변화를 포함한" 자신의 책임을 계속 수행하겠다고 확인했다.

이러한 발표는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성희롱 등을 이유로 FDIC에 새 리더십을 촉구한 지 몇시간 만에 나왔다.
백악관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곧 새 FDIC 의장을 지명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샘 미셸 부대변인은 "바이든 대통령은 행정부가 품위, 청렴의 가치를 반영하고 모든 직원의 권리와 존엄성을 보호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WSJ는 선거가 치러지는 해에 새로운 의장을 인준하는 것 자체가 의회에 어려움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너무 온건하지도, 너무 진보적이지도 않은 후보자를 찾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앞서 FDIC는 직장 내 만연한 성희롱, 괴롭힘, 차별 등이 드러나며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보도된 사례에는 한 남성 책임자가 여직원을 포함한 직원들을 스트립 클럽에 모이게 하고, 한 남성 선임조사역이 여성 동료에게 자신의 음부 사진을 휴대전화 메시지 등으로 보낸 사실 등이 포함됐다.
사내에서 과음을 조장하고 음주를 강요하는 문화도 확인됐다.
이로 인해 여성 직원들이 다수 퇴사한 반면, 논란을 일으킨 남성 직원들은 계속 FDIC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됐다.

이후 FDIC로부터 의뢰받은 로펌 클리어리 고틀리브는 이달 초 234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통해 이러한 성희롱, 괴롭힘 등 위법 행위에 대한 FDIC 경영진의 대응이 불충분하고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보고서에 포함된 조사 사례 중에는 심각한 위법 행위도 확인됐다.
일례로 한 직원은 고위급 심사관으로부터 쌍욕이 포함된 음란 메시지와 사진을 일방적으로 받는 등 6년간 성희롱을 당했다고 전했다.

또한 해당 보고서에는 경영진을 포함한 다수의 직원이 그간 그룬버그 의장과 '극도로 어렵고 불안한' 상호작용을 경험했으며, 그룬버그 의장을 '분노하고 성질을 조정할 수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WSJ의 보도를 재확인하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지난주 그룬버그 의장이 출석한 의회 청문회에서는 양당 의원들로부터 비판이 쏟아졌다.
민주당의 아야나 프레슬리 하원의원은 "그룬버그 의장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없다"고 꼬집었다.
공화당 소속 존 케네디 상원의원은 "당신(그룬버그)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WSJ는 현재 FDIC 내에서 직원 상당수는 성희롱, 직장 괴롭힘에 대응해 더 많은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것에 분노하고 있다면서 이사회 메일, 의회 지지 등을 통해 그룬버그 의장의 사임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FDIC 의장 출신인 공화당 소속 셰일라 베어 의원은 "FDIC에는 변화가 절실하다"면서 새 의장이 확정되면 즉각 사임할 것을 촉구했다.
FDIC는 미국 은행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감독하고 부실 은행문제를 해결하는 임무를 맡고 있으며 직원수는 6000명 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