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서윤 기자] 김학동 포스코 대표이사 부회장과 안동일 현대제철 대표이사 사장은 생일이 4일 차이 나는 동갑내기, 동기다.
1959년 5월 27일, 23일 태어나 1984년 포스코에 나란히 입사했다.
두 사람은 2015년 포스코 핵심인 포항제철소장과 광양제철소장을 역임했다.
2년 뒤엔 서로 자리를 맞바꿔 김 부회장이 광양제철소장을, 안 사장이 포항제철소장을 맡았다.
포스코 조직문화는 전우애가 넘칠 정도로 끈끈하다.
동기끼리는 더 잘 뭉친다.
철강업계 최고경영자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이제 말을 아낀다.
주변에서는 비슷한 경력을 지닌 두 사람을 라이벌이라 말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인정하지 않는다.

쇠 금(金) 배울 학(學) 아이 동(童), 쇠를 배우는 아이로 태어나 평생을 쇠 만드는 데에만 매진했다.
강원 춘천고를 나와 서울대에서 금속공학과를 거쳐, 미국 카네기맬론대 대학원에서 재료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시절 금속공학을 배우면서 철에 매력을 느꼈다.
“철이 내 운명이구나 싶었다.
그 운명이 천명이 되고 천명이 소명이 되고 인생이 됐다.
” 온 가족이 포스코와 연관돼 있다.
아들과 딸 모두 포항제철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아내는 철강 반전문가다.
집에서 김 대표의 통화 내용을 30년 넘게 듣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한다.

직원들이 말하는 그의 취미는 ‘포스코’다.
간단히 말해 취미를 즐길 시간 따위는 없다.
김 대표가 가장 편하게 여기는 장소도 휴일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이다.
직원들에게 부담이 갈까 봐 알리지 않고 몰래 간다.
밀린 일도 하고 책도 본다.
불멍도 자주 때린다.
제철소 주 업무 중 하나가 용광로 쇳물 모니터링이다.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주말에도 긴급하게 제철소로 튀어 나가야 한다.
집에서 대기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그럴 바에는 아예 사무실로 출근해 쭉 모니터링하던 게 습관이 됐다.

꾸준함이 비범함을 만든다는 게 그의 평소 지론이다.
사소한 것에도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세상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위기 상황에서 그의 지론이 빛을 발한다.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로 냉천이 범람해 포항제철소를 덮쳤고 하반기 이익이 1조3000억원가량이 날아갔다.
'일회성 비용'이란 건조한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참사였다.
사상 초유의 제철소 가동 중단에 김 부회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현장으로 달려간 것이었다.
포항제철소에 상주하다시피 지냈다.
작업복을 입고 임직원들과 물을 퍼냈다.
주말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정상화에 1년 이상 걸릴 것이란 예상을 깨고 침수 135일만에 복구작업을 마쳤다.
최근엔 비상경영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원가절감과 수익성 강화,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포스코그룹은 2022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30년 만에 부회장직을 부활시켰다.
포스코 역사상 부회장은 2명뿐이다.
초대 부회장은 1990년 3월 선임된 황경노 회장, 2대 부회장은 1992년 10월부터 재임한 정명식 회장이다.
부회장을 지낸 사람은 어김없이 회장에 올랐다.
그룹은 3대 부회장 자리를 김 대표에게 마련해줬다.
지난해 포스코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철강 사업 자회사를 신설했을 때도 첫 대표 자리는 그의 몫이었다.
계열사 대표 중 유일하게 지주사 포스코홀딩스 비상무이사도 겸직한다.

제철소장 출신이지만 치열한 '경영 승부사'기도 하다.
탄소중립을 기회로 승화시켰다.
철강업은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업종이다.
‘기후깡패’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전환하기 위해 발 빠르게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을 세웠다.
원료부터 투자, 에너지, 기술개발에 걸쳐 탄소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법을 짜낸 것이다.

친환경 브랜드를 만들어 회사 정체성을 세웠다.
'이 오토포스(e Autopos)' '이노빌트(INNOVILT)' '그린어블(Greenable)'이란 브랜드를 만든 것. 특히 이 오토포스는 전기차 배터리 케이스 경량화와 원가 저감을 통해 고객사 찬사를 끌어냈다.
친환경차용 철강·이차전지 소재 제품, 고객 맞춤 솔루션 등을 제공하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안동일 대표는 '경쟁업체 출신'이지만 현대에서 인정을 받아낸 인물이다.
사장 취임 한 달 만에 대표이사로 내정받고 빠르게 조직에 적응했다.
그는 포스코 재직 시절 후판, 열연, 냉연을 만드는 모든 공정과 설비 관련 여러 부서를 다 돌았다.
제철소의 전체적인 설비 흐름을 꿰고 있다.

충북 청주고와 부산대 생산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캐나다 맥길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다.
무슨 일이든 한번 시작하면 될 때까지 한다.
쉽게 흥분하는 성격도 아니다.
좋아하는 사자성어는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직원들은 그를 “상대방 처지를 헤아려 주시려고 한다”고 평가한다.
오랫동안 탁구를 즐겨왔다.
실력이 아마추어 선수급이다.
현대제철 각 사업장에 있는 탁구 동호인들과도 함께 경기를 뛰기도 한다.

자전거 타기로 기초체력을 관리한다.
시간 날 때마다 탄다.
집 주변 도로를 50km 넘게 달린다.
체력 관리도 기분 전환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쌓일 땐 책을 읽는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따로 메모한다.
그렇게 정리한 좋은 문구를 동료들에게 공유한다.

안 사장은 '역지사지'를 경영으로 보여준다.
형식에 얽매인 업무 관행, 보고, 회의 등을 간소화하라고 지시했다.
조직 문화를 수평적으로 쇄신했다.
산업재해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작업장 안전을 개선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2021년 사장 직속 사업부급 '안전보건총괄' 조직을 만들었다.
안전보건분야 업무 처리 전문성과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안 사장은 평소 "안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라며 "고위험 작업 관련 개선 활동을 통해 안전한 작업환경을 조성해야 하고 임직원 모두 안전 활동을 실천하는 자율안전문화를 정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회사에 오자마자 품질 향상, 분사, 조직 개편 등 실적을 냈다.
'중국 등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당진제철소 등의 생산, 연구개발(R&D), 기술품질, 특수강 경쟁력을 높이라'는 회사의 미션을 훌륭히 완수했다는 평가다.
냉연강판, 특수강 등 회사의 핵심 제품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현대제철이 만드는 자동차 강판과 액화천연가스(LNG) 후판 등은 품질이 높다고 업계에 정평이 나 있다.

경영 효율화를 위해 사업 분리, 설비 중단 같은 굵직한 구조 개편을 거침없이 해냈다.
2020년 4월 금속 주조·자유단조 제품 생산과 판매 부문을 분할하고 단조전문 자회사 '현대 IFC'를 출범시켰다.
수주 물량이 급감해 운영이 어려워진 당진제철소 전기로 박판 열연공장 가동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상업생산을 시작한 지 15년만이었다.
매몰비용을 줄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평가다.
지난해엔 STS 냉연 사업을 현대비앤지스틸에 양도했다.
현대제철은 손을 뗐지만 그룹 차원에서는 이 사업을 일원화해 결과적으로 국내 스테인리스 냉연시장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그는 '지속성장 가능한 친환경 철강사'를 만든다는 방침을 세웠다.
품질 개선을 통해 수익성과 미래 성장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복안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안 사장은 '규모의 성장'을 지향해왔던 철강 업계의 관습을 벗어던지고 '지속성장할 수 있는 철강사'란 기업 정체성을 확고히 구축하려 한다"며 "'철, 그 이상의 가치 창조'란 회사 비전과 이어지는 부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