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에서 64억달러 보조금을 받고 4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한다.
기존에 알려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신설 투자 외에 추가로 생산시설을 더 짓고 패키징 및 연구·개발(R&D) 시설까지 선보이기 위해서다.
파운드리 경쟁사인 대만 TSMC가 미국에서 2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양산을 예고한 가운데 삼성전자도 동참, 인공지능(AI) 수요가 늘고 있는 현지에서 선단 공정 경쟁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미 정부는 15일(현지시간)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에 따라 삼성전자에 64억달러 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과학법은 미국에서 반도체 투자를 하는 기업에 보조금과 R&D 비용 등을 지원하기 위해 527억달러 규모로 2022년 제정된 법안이다.

미 정부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해당 보조금을 기반으로 2030년까지 현지에서 400억달러 넘게 투자한다.
현재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달러를 투자해 짓고 있는 파운드리 공장에 이어 해당 지역에 추가로 공장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첨단 패키징 시설과 함께 R&D 시설을 선보일 계획이다.
기존에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운영하고 있던 파운드리 생산시설도 확장한다.

삼성전자는 테일러에 들어서는 파운드리 생산시설을 통해 기존에 예고한 4㎚ 외에 추가로 2㎚ 공정 양산에 나선다.
기존에 짓고 있는 공장은 2026년부터, 두 번째 공장은 2027년에 본격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R&D 시설을 통해선 차세대 공정 구현을 위한 첨단 기술을 개발한다.
첨단 패키징 시설을 통해선 2.5D 및 3D 기반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생산할 예정이다.

오스틴 생산시설의 경우 항공·우주 및 국방, 자동차 등 미 핵심 산업 분야 지원을 위해 공장 규모를 늘린다.
미 국방·안보 연관 부처를 위한 맞춤 주문형 칩 양산 거점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게 미 정부 설명이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은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단순히 생산시설을 확장하는 것뿐 아니라 지역의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고 미국을 글로벌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공지능(AI) 반도체와 같은 미래 제품에 대한 미 고객의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전자 생산시설은 선단 공정 기술로 이뤄질 것"이라며 "미 반도체 공급망 안전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64억달러 보조금 외에 현지에서 추가로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 미 재무부에 관련 신청을 할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받는 보조금은 대출 지원을 제외한 순수 보조금 기준으로 미 반도체 기업인 인텔(85억달러), TSMC(66억달러)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이다.
투자액 대비 보조금 비율을 살펴보면 삼성전자(14%), TSMC(10.2%), 인텔(8.5%) 순이다.
미국 정부의 높은 신뢰와 한미 관계 등이 삼성전자 보조금 협의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실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 발표는 나의 미국 투자 아젠다와 한미 동맹이 미 곳곳에서 기회를 창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강조했다.
또 "(삼성전자가 선보이는 시설들이) AI와 같은 첨단 기술에 필수적이며 국가 안보를 강화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칩 생산을 지원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업계는 2㎚ 시대가 임박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미국 내 첨단 파운드리 사업 계획을 구체화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은 빅테크뿐 아니라 엔비디아와 AMD 등 굵직한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가 대거 모인 곳이다.
향후 몸집을 키울 AI 반도체 스타트업들도 있다.
최근 AI 효과로 선단 공정 수요가 커지다 보니 미국 내 수주 확보가 곧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으로 귀결될 수 있다.

삼성전자와 TSMC는 내년부터 2㎚ 양산에 돌입하며 향후 미국 내 선보일 생산시설을 통해 2㎚ 경쟁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인텔은 당장 올해 2㎚급인 20A(옹스트롬·1A=0.1㎚) 공정 양산을 예고한 상태다.
업계는 앞으로 빅테크와 주요 팹리스 안방인 미국에서 선단 파운드리 경쟁이 심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은 2030년까지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을 상대로 한 대규모 보조금 지원을 통해 세계 첨단 로직 칩의 20%가 자국에서 생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과 반도체 분야에서 패권 경쟁을 하고 있는 만큼 경제·안보 전략 일환으로 자국 내 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확대하려는 것이 미국의 주목적이다.

미 정부는 이번 삼성전자 투자로 향후 5년 안에 텍사스주 내 건설 분야 일자리가 1만7000개 넘게 늘고 고임금 제조업 일자리의 경우 4500개 이상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삼성전자가 받는 보조금 중 4000만달러는 반도체 인력 양성에 쓰일 것이라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삼성전자가 텍사스에서 제조할 반도체는 AI부터 고성능 컴퓨팅(HPC)과 5세대 이동통신(5G)까지 첨단 기술에 있어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될 것"이라며 "미국이 세계 무대에서 반도체 제조 분야 리더십을 키우는 데 있어 자금 지원이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