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사업재편의 핵심인 SK온이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C레벨(분야별 최고 경영자)’ 전원의 거취를 이사회에 위임했다.
또 올해 ‘분기 흑자전환’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모든 임원의 연봉을 동결하기로 했다.

SK온은 1일 오전 8시 전체 임원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최고생산책임자(CPO),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C레벨 전원의 거취를 이사회에 위임했으며 CAO(최고관리책임자), CCO(최고사업책임자) 등 일부 C레벨직을 폐지했다.
이와 함께 성과와 역할이 미흡한 임원은 연중이라도 보임을 수시로 바꾸기로 했다.

올해 분기 흑자전환에 실패할 경우 내년도 임원 연봉은 동결된다.
임원들에게 주어진 각종 복리후생 제도와 업무추진비도 대폭 축소한다.
현재 시행 중인 해외 출장 이코노미석 탑승 의무화, 오전 7시 출근 등도 지속할 예정이다.

이 같은 방침은 지난 주말 1박2일간 이어진 SK 경영전략회의 이후 계열사 차원에서 나온 구체적인 조치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회의에선 변화된 경영환경을 반영해 조직을 효율화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업무 영역과 진행절차, 그에 따른 자원 배분부터 일하는 방식까지 변화가 필요한 모든 영역을 과감하게 바꾸기로 했다.
위기상황에 책임감을 강화하고 극복 의지를 대외에 천명하기 위해서다.

이석희 CEO는 이날 회의를 마친 뒤 전체 구성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경영층을 포함한 구성원 모두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각오로 각자의 위치에서 최고 성과를 만드는 데 힘을 모으자"며 "현재의 위기는 오히려 진정한 글로벌 제조 기업으로 내실을 다지는 기회다.
‘자강불식(自强不息·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음)’의 정신으로 패기 있게 최선을 다하자"고 밝혔다.

SK온은 다만 핵심 경쟁력을 지속 확보하기 위해 연구·개발 투자는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고객사에 대한 상시적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영업 조직을 권역별로 분리·강화하기로 했다.

SK온의 비상경영 선언은 사실상 ‘배수진을 쳤다’는 평가다.
배터리 업황·재무 구조 악화와 이에 따른 그룹 차원의 배터리 투자 속도조절 등이 결정되면서 경영진 스스로 위기의식을 고취하고 흑자전환 등 재무 구조 개선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SK그룹이 내세운 ‘운영 개선(Operation Improvement)’ 강화와 포트폴리오 재조정 등을 통한 재원 확충 방안의 구체적인 이행방안이라는 평가다.
2021년말 출범한 SK온의 연간 설비투자(CAPEX) 규모는 2022년 5조원, 2023년 6조8000억원, 2024년 7조5000억원까지 늘어났다.
올해까지 약 3년 동안 19조3000억원 가량을 썼는데 여전히 10조원 이상의 설비투자가 추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아직 적자 상태는 벗어나지 못했다.
누적 적자 규모는 2조5876억원에 이른다.

그룹의 신규 투자가 AI·반도체에 집중되면서 SK온은 신규 증설 보다는 현재 가동을 계획한 공장의 내실을 다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와 내년 북미를 중심으로 대규모 공장이 잇달아 완공되는 SK온은 이들 공장의 수율·가동률 향상에 회사의 명운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1~2년이 SK온의 마지막 ‘보릿고개’라는 평가도 나온다.
내년부터 공장 건설은 대부분 마무리되고 장비 투입 정도만 남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설비 투자 규모가 올해 대비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SK온의 향후 투자 금액 역시 대부분 확보됐다고 보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는 재고 소진과 전기차 신차 출시 확대에 따른 출하량 증가로 실적 반전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 SK온 북미 공장 가동률 회복 여부가 적자 축소에 가장 큰 변수"라며 "북미 공장 판매량은 하반기로 갈수록 점진적 증가가 예상되고, 영업적자도 축소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