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 골라 공격하는 표적 항암치료 기술이 이제 일반 약물을 넘어 방사능 약물까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항체·약물접합체(ADC)가 글로벌 항암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비슷한 기전을 활용한 방사성의약품(RPT) 중 방사성약물접합체(RDC)가 차세대 항암제로 주목받으면서 국내외에서 활발한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SK바이오팜은 최근 RPT 후보물질인 FL-091을 홍콩 풀라이프테크놀로지스로부터 기술 도입했다.
계약 규모는 최대 5억7150만달러(약 7921억원)다.
계약금 850만달러(약 118억원)에 마일스톤 기술료가 포함됐다.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의 미국 내 성장에 힘입어 올해 연간 흑자 전환을 목표로 하는 SK바이오팜이 차세대 3대 성장동력으로 내세운 RPT, 표적단백질분해(TPD), 세포·유전자치료제(CGT) 중 RPT가 처음으로 구체적인 파이프라인까지 가시화한 것이다.

RPT는 현재 주로 RDC 형태로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이는 일명 '암 잡는 유도미사일'로 불리며 최근 항암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ADC를 한층 더 강화한 개념의 약물 플랫폼이다.
ADC는 정상세포에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암세포에는 주로 나타나는 특정 바이오마커(생체표지자)에만 붙는 항체가 레이더 역할을 해 암세포를 찾아내면 결합해 있던 세포독성약물(페이로드)이 암세포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암을 죽인다.
유방암 등의 치료에 쓰이는 엔허투가 대표적이다.

ADC가 유도 미사일이라면 RDC는 공격력을 한층 더 강화한 일종의 '유도 핵미사일'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일반 독성약물 대신 방사선을 방출하는 RPT를 활용해 효능을 더 끌어올렸다.
레이더 역할 면에서도 항체만을 활용하는 ADC와 달리 단백질 등 더 다양한 물질을 활용할 수 있다.
이 경우 반감기가 2~3주에 달해 몸속에 지나치게 오래 머무르면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었던 항체 활용의 문제를 극복할 것이란 기대다.
SK바이오팜도 항체보다는 더 다양한 탐지물질을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FL-091도 대장암, 전립선암 등의 세포에서 과도하게 발현되는 뉴로텐신 수용체(NTSR)1 단백질에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기전이다.
이동훈 SK바이오팜 대표는 "RPT는 생각보다 안전한 약물"이라며 "항체는 위험성이 있지만 다른 붙이는 물질에 대한 혁신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RPT의)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계약은 SK그룹과의 시너지도 기대된다.
FL-091은 암세포를 공격하기 위해 방사성 동위원소 악티늄-225(225Ac)를 활용한다.
SK바이오팜은 SK㈜가 투자한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업 테라파워를 통해 225Ac의 아시아 내 권리를 확보한 만큼 안정적 기반을 갖춘 상태다.

이 같은 RPT 시장은 2021년 65억달러에서 연평균 6% 성장해 2030년에는 112억달러(약 15조5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노바티스가 202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전립선암 치료제 플루빅토를 시장에 내놓으며 가장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 연 매출 9억8000만달러(약 1조3583억원)로 전년 대비 262%의 매출 성장세를 기록, 블록버스터 치료제로의 도약을 예고하고 있다.

다른 빅 파마들도 기술 확보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일라이릴리는 지난 1일 RPT 개발사 라디오네틱스를 최대 10억달러(약 1조386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도 포인트 바이오파마를 14억달러(약 1조9404억원)에 사들인 데 이어 연이어 RPT 투자에 나서고 있다.
브리스톨 마이어스-스퀴브(BMS)도 최근 레이즈바이오를 41억달러(약 5조7000억원)에 인수하는 등 활발한 인수합병(M&A)이 진행되고 있다.

이외에도 국내에서는 퓨처켐이 오는 10월 완료를 목표로 전립선암 치료제 FC705의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기도 했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진단 제품으로도 쓰이는 만큼 전립선암 진단을 위한 FC303도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듀켐바이오 , 셀비온 등이 RPT를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