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홀릭]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길은 반드시 바른 길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오랜 법적 투쟁 끝에 회사에 쏟아졌던 모든 법적 리스크와 혐의를 벗어버리고 글로벌 바이오로직스 업계 평정의 길을 힘차게 내달리게 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적 회계 분식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2018년 금융당국이 부과한 과징금 80억원과 징계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14일 나옴으로써 그그간 끓여온 가슴앓이를 모두 벗어버리게 됐다. 소송이 시작된지 5년 9개월 만에 나온 첫 법원 판단이다. 늦어도 너무 늦픈 판결이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도 사실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최수진)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80억원 과징금 및 징계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해 내린 과징금과 징계를 모두 취소하고 소송 비용도 금융당국이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금융당국의 처분 사유 일부는 인정되지 않고, 남은 사유만으로 내린 이 사건 과징금 및 징계 처분은 위법하다”고 했다.

1심 법적 무죄 판단... 모든 비판과 공격 잠재울 판결

원래 이 사건은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가 2018년 11~12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4조5000억원 규모의 분식 회계를 저질렀다면서 과징금 80억원과 대표이사 및 회계 임원을 해임하라는 등의 중징계 부과처분을 한 것이 발단이 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2년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해 설립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했다. 이 회사의 지분가치를 장부가액(2900억원)에서 시장가액(4조8000억원)으로 바꿨는데 뚜렷한 근거 없이 이뤄졌다는 것이 금감원의 판단이다.

금감원에서 사건을 넘겨받은 증선위도 이 같은 행위를 분식회계로 보고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표이사 해임을 권고하고 과징금 80억원을 부과하는 처분을 내렸다. 또 회계처리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금융당국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 회사에서 관계 회사로 전환해 2015회계연도에 이 회사 지분가치를 근거 없이 바꾸는 등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 기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고의로 기준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은 이에 반발해 지난 2018년 11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2년 미국의 제약회사인 바이오젠과 함께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만든 후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재무제표를 작성·공시하는 과정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 회사’로 처리해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분식 회계 사건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한 후 검찰에도 형사 고발했다. 검찰은 분식 회계 고발을 바탕으로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 수사에 착수했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을 기소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월 이 회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회계 부정 의혹에 대해서도 “혐의 없음” 결론을 내렸다.

당시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나스닥 상장 준비를 서둘러왔는데 결국 이를 포기하고 국내로 돌아섰다가 분식회계 소동이 벌어진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당시에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은 2015년 7월 1일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로직스 2공장에서 열린 기업설명회를 통해 "바이오 분야에서 가장 전문성이 있는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을 추진해 한국 시장의 한계점을 벗어나 가치평가를 받고 싶다"고 밝혔을 정도로 해외 시장에서 경쟁을 해 보고 싶어한 것이 사실이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법적 분쟁에 들어가자 당시에 경제단체 관계자들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의 쟁점은 기업가치를 고의적으로 부풀리기 위해 회계기준을 변경했고, 이를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사후 타당성과 상장 당위성을 짜맞추려 했는지 여부가 아닌가”라면서 “만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증권선물위원회의 결론처럼 지배력 변경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회계기준을 변경해 기업가치를 부풀렸다면 해외에서 상장 제안을 하려 한 것이 전혀 타당한 일도 아니고 설득력도 없다”고 반박한 바 있었다.

또 당시에 적잖은 언론과 법조인들, 경제원로들이 우려를 표했지만 기울어진 여론과 검찰의 독자 행보를 바꿀 수는 없었다.

이 재판이 벌어지면서 회계기준과 금융당국 및 검찰의 지나친 유권해석이 도마에 올랐지만 일부 시민단체가 여론을 주도하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는 일파만파 복잡해지고 회사에 불리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심지어 검찰 내부 관계자들도 삼바 수사에 대해 의문점을 표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2023년 12월6일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난 신성식(58·사법연수원 27기)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도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당시 수사에 의문점을 표한 바 있었다.

신 위원은 당시 상황을 돌이키며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측이 2020년 6월2일 검찰의 기소 타당성을 판단해달라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던 것을 상기시켰다. 그는 당시에 검찰이 이틀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면서 “아무리 들여다봐도 허점이 너무 많았다”고 술회했다.

한편 재계에서는 기업의 회계자율성을 확대하는 국제회계기준(IFRS)의 혼란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을 내놓은 바 있었다.

법조문의 과도한 해석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금융당국의 자의적인 해석이라는 지적이 나왔음에도 검찰은 무리하게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엮어 넣었다.

결국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약 4조5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번 재판에서 명암이 엇갈렸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2~2014년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 회사로 처리한 것은 재량적 판단으로, 회계 처리 기준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근거 없는 처분이라고 했다.

아울러 “금융당국의 처분 사유가 일부 인정되더라도, 기초 사실을 오인하거나 법 위반 정도를 초과하는 제재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면서 “처분을 모두 취소하고 소송 비용은 피고가 부담하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형사사건 1심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기준 위반이 증명되지 않았고 공시 경위에 비춰 이 회장 등의 고의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2014년 당시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은 실질적인 권리가 아니어서 회계기준에 비춰 반드시 공시돼야 하는 정보라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금융권에선 6년이나 걸려 판결이 바뀌는 과정에서 상처입은 기업 이미지 실추는 보상받기 어려운 수준이라면서 금융당국과 검찰이 이번 판결을 계기로 시장에 대한 이해도를 더욱 높이고 전문가를 양성해 글로벌 경쟁에 들어가 있는 기업들을 도와주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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