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체를 가지고 있는 한 폭력은 숙명이다.
"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는 '휴머니즘과 폭력'에서 인류가 살아가면서 폭력은 숙명적으로 자행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폭력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숙명이라면 폭력의 의미와 미래에 대해 성찰하고 최소한의 폭력을 선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쏟아지는 음식물 쓰레기와 이로 인한 기후 변화가 가속화하면서 유럽 사회는 최소한의 폭력을 선택하는 방법으로 푸드 업사이클링에 주목하고 있다.

유럽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책과 규제를 강화하며 업사이클링 기업이 태동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하고 있다.
특히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은 유럽 내 경제활동을 추구하는 모든 대기업과 상장 중소기업이 환경 및 사회적 영향 활동에 대한 정기적인 보고서를 발행하도록 요구하는 유럽연합(EU)의 법률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EU 내 약 5만개의 기업이 보고 의무를 가지며, 환경보호와 사회적 책임, 인권 존중 등의 내용이 보고서에 포함된다.

아비아야 리만-안데르센(Aviaja Riemann-Andersen) 서큘라 푸드 테크놀로지 대표는 "새로운 CSRD 규정에는 식품 기업이 부산물을 환경 친화적으로 관리하고 처리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푸드 업사이클링 기업들이 확대되고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아직까진 자발적인 규정들이 많지만 점차 강제력을 강화하면서 지속가능성에 저해되는 기업에 대한 처벌 수위도 높여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제 독일은 CSRD 규정을 이행하지 않은 기업에 대해 1000만 유로, 연간 총매출액의 5%, 미준수로 인해 얻은 이익 또는 회피한 손실의 2배 중 가장 큰 금액을 벌금으로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다양한 인증제도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형성됐다는 점도 유럽에서 다양한 푸드 업사이클링 기업이 부상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현재 유럽에는 푸드 업사이클링에 특화된 인증 제도는 존재하지 않지만, 관련 기업은 식품 안전과 품질 등에 관한 다양한 인증 획득을 기업의 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로렌조 티렐리(Lorenzo Tirelli) 리듀스드 연구·개발(R&D) 총괄은 "유럽은 책임 있게 생산된 식품에 대한 인식이 매우 높아 인증제도가 높은 실효성을 갖는다"며 "리듀스드도 식품안전시스템인증(FSSC22000) 취득을 올해 회사의 최우선 목표 중 하나로 설정했고, 이를 위해 다양한 시설과 관리 기준 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식품기준인증(IFS)을 받은 서큘라 푸드 테크놀로지의 리만-안데르센 대표도 "인증은 우리의 제품이 안전하고 모든 규정을 준수한다는 것을 소비자와 거래처 모두에게 보증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말하는 것이 거짓이 아닌 사실임을 믿고 안전하게 느끼게 하는 방법인 동시에 '그린워싱(실제로는 환경적 효과가 없음에도 있는 것처럼 위장해 광고하는 것)' 제품을 거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EU에서 푸드 업사이클링과 관련한 표준화된 인증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이는 향후 업사이클링 산업의 성장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덴마크는 식품 인증 제도가 소비자의 수요와 시장 확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덴마크는 1987년 세계 최초로 유기농법을 도입하고 관련 인증제를 실시해 유기농 제품에 대한 품질 관리와 보증에 나섰다.
덴마크는 유기농 제품에 대해 가공과 포장, 라벨링 등 준수 목록을 엄격하게 규정해 통제하는데, 위반 시 벌금은 물론 제품의 유통 자격을 박탈한다.
엄격한 인증 절차를 거친 제품에는 빨간색 'Ø-라벨'이 부착되고, 해당 라벨이 부착된 유기농 제품은 소비자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덴마크의 유기농 인증은 유기농 제품을 생산하고 가공하는 농부와 기업, 정부 간 협력의 산물로 덴마크 소비자에게 유기농에 대해 설득하는 데 결정적인 성공 요인이 됐다.
덴마크의 전체 소매 식품시장에서 유기농 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기준 13%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덴마크는 현재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해 유기농 재배 면적 확대를 비롯해 관련 산업 육성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덴마크의 유기농 시장 규모는 2022년 34억달러(약 4조5400억원)에서 2028년 76억달러(약 10조15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덴마크 통계청은 예상하고 있다.

유기농법을 비롯한 다양한 친환경 정책과 제도는 덴마크가 친환경 식품 산업에 대해 높은 관심과 이해도를 갖게 되는 배경이 됐고, 근래에는 다양한 푸드 업사이클링 기업이 탄생하고 성장할 수 있는 토양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토양을 토대로 산학연의 협력도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덴마크에서 산업계와 학계의 푸드 업사이클링 협업은 기업이 대학에 연구 과제를 부여하면 대학은 해당 과제를 수행해 피드백을 제공하고, 기업은 다시 이를 토대로 제품화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다만 이 과정에서 소요되는 자금은 연구용역을 제공한 기업이 아닌 정부 또는 민간 기금을 통해 마련된다.
기업이 해결 과제에 대학을 참여시켜 프로젝트를 구성한 뒤, 지원기관에 자금을 신청하는 방식이다.
이는 대부분의 푸드 업사이클링 기업이 자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이고, 이들이 덴마크의 높은 인건비를 직접 감당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덴마크의 대학교는 전부 국립으로 운영되는 만큼 특정 회사의 이익만을 위한 구체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자금 지원기관에 해당 연구의 수익성과 사회적 가치를 설득하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 푸드 업사이클링의 사회적 가치와 사업성이 정부와 민간 기금 모두에게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덴마크내 활발한 산학연 협력의 동력이 되고 있다.
비베카 올린(Vibeke Orlien) 코펜하겐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덴마크 사람들은 사회와의 연결을 중시해 상점에 있는 식품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며 "이런 맥락에서 원래 버려지거나 낭비될 것을 다시 식품 사이클에 넣어 사람들이 실제로 먹을 수 있게 만드는 푸드 업사이클링 기술은 자원 최적화에 많은 관심을 가진 투자자와 소비자를 설득하는 강력한 배경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푸드 업사이클링이 다른 푸드테크 사업과 비교해 유인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정밀발효나 대체육류 등의 신기술이 포함된 푸드테크 사업은 유럽식품안전청(EFSA)의 '신식품' 인정을 받아야 하는 반면, 대부분 인공화합물 없이 건조와 혼합, 발효 등 상대적으로 간단한 기술을 활용하는 푸드 업사이클링 식품은 신식품 승인 과정이 생략돼 단기간 내 투자금 회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리만-안데르센 대표는 "EU는 1997년부터 '상당한 수준'으로 이용되지 않은 식품 혹은 식품 성분을 신식품으로 규정하고, 시장 출시 전 EFSA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신식품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최소 3~4년 이상의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 투입이 불가피한 만큼 이미 식품으로 인정받은 원료와 기술을 사용하는 푸드 업사이클링은 상대적으로 빠른 수익 확보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