뽐뿌 뉴스
IT/테크 입니다.
  • 북마크 아이콘

"내 손을 거쳐간 회전익만 150기"

1970년대 한국은 엄청난 안보 위기를 맞았다.
미국은 ‘자신의 안보는 자신이 지켜라’는 ‘닉슨 독트린’을 내세우며 주한미군 지상군 1개 사단을 철수하더니 아예 주한미군 전체를 빼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 군은 6·25전쟁 이후에도 소총 한 정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1971년 12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방과학연구소(ADD)에 극비 메모를 전달했다.
사업명은 ‘항공공업 육성 계획 수립 지시’라는 위장 사업명이었다.
이 사업을 시작으로 우리 군은 국산 미사일에 이어 전차, 항공기까지 개발을 이룬다.
국산 무기 개발에는 K 방산 1세대들이 주축이 됐다.
국산 무기가 전력화된 지금 유지·보수·정비(MRO)에는 방산 2세대들이 포진하고 있다.
방산 수출에 이어 MRO 시장에 활약하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설계도를)정확히 본다, (설계도를) 정확히 이해한다, (설계도대로) 정확히 시행한다.
정비는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합니다.
” 미군과 한국군 회전익(헬리콥터) 정비를 맡은 유동준 대한항공 군용기사업부 차장의 말이다.
그는 국내 회전익 최초 정비사이자 최장수 정비사다.
대한항공은 1989년에 입사했다.
부산공고에서 판금을 배우고 졸업한 직후다.
당시 국내 방산기업은 회전익에 걸음마 수준이었다.
대한항공이 항공기 제작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한진그룹 창업자인 고 조중훈 회장이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항공기 생산사업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같은 해 대한항공은 ‘군용 항공기 정비·조립·생산 군수업체’로 지정됐다.



유 차장은 입사 1년 만에 육군 항공작전사령부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오니 대한항공은 변해있었다.
대한항공은 1991년부터 중형헬기인 15인승급 UH-60을 제작해 우리 군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시코르스키사에서 미 육군을 위해 개발한 중형 다목적 헬기인 UH-60은 1974년부터 현재까지 약 3000기가 생산돼 약 30개국에서 운용 중이다.
대한항공은 지금까지 30기를 면허생산했다.


35년 전 입사 때만 해도 걸음마 수준

유 차장은 정비의 현장을 보여주겠다며 기자를 안내했다.
1976년 설립된 대한항공 테크센터는 부산 김해공항에 인접해 있다.
대지 총 70만7866㎡, 연건평 26만6180㎡ 규모로 항공기 생산에 필요한 각종 시설을 완비하고 있다.
1만 9000종 이상의 치공구와 6백여 종의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다.
면적이 너무 방대해서 사무실 사이를 이동할 때는 골프장에서는 사용하는 카트나 자전거를 이용해야 한다.
정비동에는 A-10, CH-53, F-15, F-16, CH-47 등 미군 항공기들이 줄을 서서 정비받고 있었다.
지금까지 대한항공은 태평양 전역에서 운용 중인 미군 항공기 3700대를 정비했다.
유일한 미군 항공기 종합정비 수리창 역할을 하고 있다.



유 차장은 정비를 받고 있는 UH-60을 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제대를 하자마자 처음 맡은 것은 UH-60 동체 제작”이었다며 “당시 생산라인에는 미군도 있었는데 생산직 직원들이 소통에 어려움을 겪어 ‘일은 일대로, 영어는 영어대로’ 공부해야 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미군은 처음 보는 설계도를 내밀기도 했다.
미군 헬기는 하늘에서 급유를 받을 수 있는 공중급유시스템이 장착되어 있었다.
김 차장은 당황했다.
밤새워 공부해야 했다.
정비일은 180일로 정해졌지만 150일로 앞당기기로 했다.
당시 4살, 2살인 어린 딸들도 볼 여유가 없었다.
회사 휴게실에서 쪽잠을 자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처음 보는 문제점도 해결해야 했다.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嘉手納) 공군기지에서 날아온 주일미군 헬기에는 온통 염분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심각했다.
계기판까지 모두 들어내 코팅작업을 했다.


처음 보는 설계도에 당황해 밤샘 작업

회전익의 수명은 비행 8000시간이다.
비행을 2000시간 할 때마다 창정비(부품 완전 분해·검사·수리)를 받아야 한다.
그는 “창정비를 마친 회전익에 문제가 발생한 적이 없다”며 “오히려 8000시간이 도래해도 골격 등을 교체해 수명을 연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35년 동안 그의 손에 거쳐 간 회전익만 150기가 넘는다.
미군과 한국에 보급된 UH-60과 미 공군이 사용하는 HH-60G 모델이 주를 이룬다.
한국군의 헬기는 정비를 마치면 20시간의 시험비행을 하게 되는데, 유 차장은 항상 동행 비행을 했다.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의 비행시간만 2000시간이 넘는다.


미국 6개 해외기지서 헬기 정비 요청

유 차장의 정비 열정은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2005년엔 미군이 알래스카에서 운용하던 HH-60G 모델의 엔진에 문제가 발생했다.
미 본토에서 정비를 받으려면 1년이 넘게 걸렸다.
미군은 초대형 군 수송기 C-17에 HH-60G를 싣고 대한항공을 찾아왔다.
유 차장을 비롯한 팀원들은 밤샘 작업을 이어갔다.
미군과 약속한 180일 만에 모든 정비를 마쳤다.
미군조차 혀를 차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후 해외군 사이에서 입소문이 타면서 대한항공 문을 두드르기 시작했다.
미군은 6개 해외기지에서 헬기를 가져왔다.
미 공군은 영국 레이큰 히스(Laken heath)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헬기를 수리해달라고 했다.
이렇게 맡은 해외 회전익정비만 76여대다.


UH-60 성능개량 사업 앞두고 수주 기대감

우리 군은 UH-60(육군 특수전·24대), HH-60(공군 탐색구조용·12대)의 성능개량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예산만 9613억 원이다.
대한항공은 항공전자, 전자전, 통신 장비를 개발하고 있는 방산기업 LIG넥스원과 손잡고 이 사업에 뛰어든다는 계획이다.
유 차장도 기대가 크다.
최근에는 퇴근 후에 영상을 만드는데 시간을 모두 할애한다.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담기 위해서다.
성능개량을 거치다 보면 설계가 변경되고 문제점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데, 후배들이 겪을 어려움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유 차장은 “저와 대한항공은 UH-60의 태생부터 지켜봤다”며 “30년이 넘는 노하우는 어느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며 자부했다.



양낙규 군사 및 방산 스페셜리스트 if@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뉴스 스크랩을 하면 자유게시판 또는 정치자유게시판에 게시글이 등록됩니다. 스크랩하기 >

0
추천하기 다른의견 0
|
첨부파일
  • newhub_2025040209381393451_1743554293.jpg
  • newhub_2025040209384493453_1743554324.jpg
  • 알림 욕설, 상처 줄 수 있는 악플은 삼가주세요.
짤방 사진  
△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