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약정 할인 제도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9월 15일 할인율이 20%에서 25%로 인상되면서 해당 제도를 선택하는 고객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24일 출시된 애플 '아이폰X(텐)'의 경우 거의 모든 고객이 선택약정 할인을 선택한 것으로 파악된다. /남용희 기자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지난 9월 15일, 지원금에 상응하는 선택약정 할인율이 20%에서 25%로 상향 조정됐다. 문재인 정부가 통신비 인하 공약 실현의 일환으로 이동통신사의 반발을 뚫고 인상안을 강하게 밀어붙인 결과다. 그로부터 70여일이 지났다. 할인율이 조정된 선택약정 할인 제도가 시행 된 뒤 이동통신 시장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 대세로 자리 잡은 선택약정 할인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 하반기 출시된 최신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구입한 고객 다수가 공시지원금 대신 선택약정 할인을 선택한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24일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X(텐)'은 이틀간 약 10만대가 개통됐는데, 거의 모든 고객이 선택약정에 따른 요금할인 혜택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8'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로 집계됐다.

'아이폰X'과 '아이폰8' 시리즈와 같은 고가 단말기는 원래부터 선택약정 할인 가입자 비중이 높았다. 공시지원금을 모두 이동통신사가 부담해 지원금 규모가 크지 않은 외산폰인 탓에 이러한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여기에 할인율이 인상되자 고가 단말기를 중심으로 '선택약정 쏠림'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업계는 현재 1400만명 수준인 선택약정 할인 가입자가 내년 말 2000만명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LG유플러스는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선택약정 할인 가입자 비중이 직전 분기보다 7.6% 포인트 늘어났다"고 밝혔다.

고객들이 선택약정 할인을 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아이폰X'을 예로 들어보자. '아이폰X'에 대한 이동통신 3사의 지원금 규모는 11만~12만 원 수준이다. 10만 원대 고가 요금제를 쓰더라도 지원금이 13만 원을 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반면 선택약정 할인을 선택할 경우 고객은 2년 약정 기준 3만 원대 요금제에서 19만7000원, 6만 원대 요금제에서 39만5000원, 11만 원대 요금제에서 66만 원을 통신료에서 할인받을 수 있다.

◆ "할인율 인상 부담" 이동통신사 실적 악화 예상

할인율이 상향되고 '선택약정 쏠림' 현상이 심해질수록 이동통신 3사의 실적 부담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지원금을 받지 않는 대신 요금을 할인해주는 선택약정 할인제는 전적으로 이동통신사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선택약정 할인율 인상에 따라 이동통신사 매출은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동통신 3사는 이번 3분기에 비교적 양호한 성적을 기록했다. 선택약정 할인율 인상 등 정부 규제가 본격적으로 반영되지 않아 타격이 작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4분기다. 업계는 4분기 실적부터 선택약정 할인율 인상에 따른 영향이 본격 반영돼 이동통신사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선택약정 할인 가입자가 늘수록 이동통신사는 더 부담을 느끼게 되는 구조"라며 "자칫 이러한 규제는 미래 기술 개발에 앞장서고 있는 이동통신사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선택약정 할인율이 인상되면서 이동통신사와 알뜰폰 간 요금 격차가 줄어들었다. 이에 '가입자 이탈'이 본격화되면서 알뜰폰 업계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이성락 기자

이동통신사가 재원 마련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공시지원금 정책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달 1일 기준으로 지원금 상한제가 폐지됐지만, 이동통신사는 큰 폭의 공시지원금 변화를 주지 않았다. 특히 최근 삼성전자 '갤럭시S8플러스'에 대한 공시지원금이 오르기 전까지는 프리미엄폰에 대한 지원금 수준은 그야말로 짠내가 났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이동통신사 재원으로는 할인율 25%에 상승하는 수준의 공시지원금을 제공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 선택약정 할인율 인상이 남긴 숙제는?

이동통신 3사는 선택약정 할인율 인상에 따른 수익 감소를 방어하기 위해 고가요금제 유치에 힘쓰고 있다. 실제로 LG유플러스에 따르면 선택약정 할인율이 올라가면서 5만9900원 이상 고가요금제 가입자 비중 또한 늘어나고 있다. 업계는 고가요금제 가입자가 늘면 할인율 인상에 따른 매출 감소 영향이 일부 상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이동통신 대리점과 판매점에서 고객의 선택권을 제한한 고가요금제 유도 사례가 발생해 논란이 되고 있다. 판매점이 판매 장려금(리베이트)이 높은 '프리미엄폰+고가 요금제' 가입자 유치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심현덕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판매점이 고가 요금제를 사용하도록 유도, 고객은 선택권이 침해된 상태에서 필요 이상의 데이터 요금제를 사용하게 된다. 결국, 불필요한 통신비 부담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선택약정 할인뿐 아니라 공시지원금에서도 고객이 고가요금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지원금 규모가 더 크기 때문이다"며 "요금제가 비쌀수록 지원금이 많아지는 '정률' 방식이 아닌, 요금제 규모와 관계없이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정액' 방식으로 바꿔야 고객들이 더욱 합리적인 판단 아래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뜰폰 업계에 불어닥친 위기의 바람을 막아내는 문제도 남아 있다. 선택약정 할인율이 인상되면서 알뜰폰의 최대 강점인 가격경쟁력이 낮아져 '가입자 이탈'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할인율이 인상된 지난 9월 이동통신 3사로 옮겨간 알뜰폰 가입자는 300여명이었지만, 지난달에는 1600여명으로 5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심현덕 간사는 "현재 알뜰폰 사업자는 40개가 넘는다. 통신비 문제가 통신 3사의 독과점 체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꼽히고 있는 만큼, 알뜰폰을 활성화해 40개가 넘는 통신사가 자율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면, 통신비 또한 자연스럽게 내려갈 것"이라며 "알뜰폰 업계가 위기를 겪고 있는데, 이런 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마련하는 게 정부의 숙제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