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겪어본 상황, 느껴본 감정. ‘레이스’가 공감을 자아내는 이유는 확실하다.
그리고 그 안에 배우 이연희가 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박윤조는 분명 응원하고 싶은 청춘이다.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되고 있는 드라마 ‘레이스’는 스펙은 없지만 열정 하나로 대기업에 입사하게 된 박윤조가 채용 스캔들에 휘말리며 다사다난한 직장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기를 그린다.
이연희는 열정 만렙의 대기업 계약직 박윤조로 분한다.
작은 홍보사에서 대기업 인하우스 홍보팀으로 들어가 격랑을 겪는 주인공이다.
류재민 역의 홍종현과 대비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극 중 박윤조와 류재민은 1990년에 태어난 일명 '끼인 세대'다.
하지만 박윤조는 '요즘 친구'라고 하기엔 특징적인 부분이 많다.
23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만난 이연희는 “가정환경이 힘들었고, 든든한 부모의 지원도 없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고 대학도 나오지 않은 채 직장 생활을 시작한 친구다.
힘들지만 캔디처럼 밝게 일어선다.
캔디 같은 친구를 더 응원하게 되지 않나. 주인공이 바라는 걸 이루기 바라며 보는 게 드라마다.
그래서 윤조를 응원해 주시는 것 같다”고 인물의 배경을 소개했다.
내 주변에도 있을 법한 인물들의 향연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상황과 인물이다.
지인들이 이연희에게 “회사 생활에 대한 공감이 많이 된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현실성이 묻은 ‘레이스’이기에 가끔은 무거운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유머러스한 부분들이 존재한다.
특히 오랜 우정을 쌓아가고 있는 윤조와 재민, 허은(김예은)이 유토피아에 모이면 그렇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직장인이다가도 유토피아에 모이면 또래의 친구들이 된다.
이연희는 “‘영꼰(젊은 꼰대)’들이 하는 말처럼 ‘너무 잘 자라서 너흰 몰라’하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 일찍 철 들어서 세상을 더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윤조에 공감했다.
응원하고 싶은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애정을 보였다.
홍보직군을 알아가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자세히 알기 위해 작가에게 홍보인들이 직접 집필한 책을 추천받아 읽었다.
홍보대행사에서 인하우스 홍보팀으로. 윤조를 연기하며 ‘홍보직’에 관한 이해도 높아졌다.
”처음엔 이렇게 힘든 걸 뭐가 그리 좋을까 생각했어요. 윤조도 이 일을 사랑하잖아요. 그게 어디서 나오는 걸까, 매력이 뭘까 생각했죠. 브랜드를 만들어서 많은 사람에게 알렸을 때의 성취감이 크더라고요. 브랜드이든 사람이든 그들은 ‘알리는 일’에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아요. 주변 홍보직 분들이 떠올랐고, 작품 홍보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극 중 박윤조는 1990년생이다.
어느새 이들은 나이가 너무 어리지도 않지도 않은 중간자가 됐다.
이연희는 “그 친구들이 받는 고충이 뭘까 생각해 봤다.
윤조처럼 이젠 자신의 입지를 보여줘야 할 때더라. 마냥 신입도 아니고 회사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아 승진도 되어 있는 자리다.
여기서 팀장급으로 가야 하니 부담을 가지는 친구들도 많이 봤다”면서 “자신의 가치관과 상사 가치관의 괴리에서 오는 고충도 있다.
그런 부분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고 주안점을 짚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그는 “모든 게 다 서툴렀다.
모르면 물어보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것도 못하고 혼자 끙끙대며 힘들어했다.
그걸 알아보고 친절하게 대해 주신 선배님들이 계셨다.
그분들 덕에 이 일을 계속해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꼰대’라는 단어가 나타나면서 스스로 ‘꼰대력’을 진단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10대에 데뷔한 이연희도 이제 ‘선배’ 대열에 꼈다.
그는 “친근하면서도 꼰대가 되지 않는 게 어려운 것 같다.
어쨌든 마음만 전해진다면 서로가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배려하고 존중하려 한다”고 했다.
2021년 연극 ‘리어왕’으로 무대에 올랐다.
배우 이연희에게 터닝포인트를 준 작품이었다.
설레고 재밌고 신났다.
연기가 좋아서 시작했던 마음을 다시 찾았다.
과거의 자신을 돌아본 이연희는 “예전엔 내게 잘 어울리는 걸 잘 몰랐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기대감으로 인한 부담감이 나를 억누르기도 했다”면서 “요즘은 더 오래 작품을 지켜보고 공감이 되어야 출발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힘들고 어려워진다.
좋고 싫은 게 분명해졌다”고 했다.
“연극 이후로 연기의 즐거움을 다시 찾게 됐다”는 이연희는 꾸준히 연기 공부도 지속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을까. 요즘 이연희의 관심사다.
그는 “작품을 선택할 때 이해되고 공감하는 걸 선택하게 된다.
내가 맡은 역할을 잘 표현해내서 모두가 인정하는 ‘믿고 보는 배우’ 타이틀을 얻고 싶다”고 바랐다.
2004년에 데뷔해 올해로 데뷔 20년 차다.
잠시 생각에 잠긴 이연희는 “오랜 기간 같아 보이지만 데뷔 이후 15년은 정말 정신없이 달렸다.
그런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 같다”고 했다.
배우라는 직업이 나와 맞는지 의심하기도 했다고. “생각해보면 (연예인이란 직업과) 안 맞았던 것 같다”고 털어놓은 솔직한 답변의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어릴 땐 안 그랬는데, 일을 하다 보니 오히려 주목받는 게 겁날 때가 있더라. 마냥 배우라는 직업을 위해 태어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더 노력하는 직업이기도 하다”는 설명이었다.
이어 그는 “15년 동안은 일에 치여서 달렸고, 최근 5년 동안 배우라는 직업이 재밌구나, 내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답했다.
결혼이 가져온 변화도 이런 생각에 영향을 줬다.
2020년 비연예인 신랑과 부부의 연을 맺은 이연희다.
그는 “이제 나 혼자 고민하지 않고 누군가 함께할 수 있다.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자체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든든한 조력자가 있다 보니 한결 편하게 내려놓고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긍정적인 변화를 전했다.
이미 촬영을 마친 ‘레이스’는 이연희에게 오랜 동료, 존경하는 선배들과 함께 연기할 수 있는 행복한 작품이었다.
나아가 구이정 역 문소리의 한 마디에 큰 위로를 받았다.
“어릴 땐 그냥 하시는 말씀이구나 싶었던 말들이 요즘은 힘이 되더라. 쫑파티에서 문소리 선배님이 ‘윤조 고생 많았어’라며 안아주셨는데 그 자체로 위로가 됐다.
배우로서 서로 존중해주고 격려해주는 게 힘이 됐다”고 따듯한 기억을 되새겼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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