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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울자울 [詩의 뜨락]

세계일보 기사제공: 2024-05-11 06:00:00

정우영

낡은 벤치에 앉은 할머니가
귤을 까먹다가 졸고 계신다.
귤 한조각이 아슬아슬,
손바닥 가장자리에 간당거린다.
귤 조각은 달아나려 애쓰는데
할머니 손끝은 잠결에도 맵다.
낚아채는 솜씨가 그야말로
수십년 조력(釣歷) 버금간다.
꽉 쥐여드리려다 물러선다.
할머니의 저 오랜 경륜을
귤 조각은 어떻게 빠져나갈까.
흥미로운 대치를 방관하기로 한다.
할머니 고개가 점점 더 숙어지고
손가락들도 한결 맥이 풀리자,
귤 조각이 순식간에 허공 긋는다.
할머닌 이 해괴한 탈선 어찌 대처하실까.
꿈 자락은 낙낙하게 품 벌리는 중인데.

-시집 ‘순한 먼지들의 책방’(창비) 수록

●정우영 약력

△1989년 ‘민중시’를 통해서 등단.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 ‘집을 떠나갔다’, ‘살구꽃 그림자’, ‘활에 기대다’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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